◐...먹거리

반찬 사러 왔다가 김밥 먹고 가지요~

산야초 2017. 5. 31. 23:12

반찬 사러 왔다가 김밥 먹고 가지요~

    입력 : 2017.05.31 08:00

    [서민식당 발굴기]
    서울 금호동 <더건강찬>

    자연주의 건강 불고기 김밥

    외식업 관련 사업을 하다 보면 조리 분야 전문가들과도 두루 알고 지내게 된다. 이들은 주로 메뉴나 음식을 개발하고, 교육기관의 피교육자나 창업예정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한다. 간혹 개인 연구소나 점포를 보유한 이들도 있다. 나름 솜씨와 실력이 업계에 알려진 ‘요리 선생님’들 가운데는 고명한 스승 밑에서 수학한 분들도 있지만 독학파들도 더러 있다.

    서울 금호동 반찬가게 <더건강찬> 주인장 음연주 씨도 조리 공부를 자득한 독학파다. 앞서간 스승의 가르침대로 배우는 건,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스스로 깨우치는 것보다 학습효율은 월등하다. 그러나 앎의 깊이는 스스로 깨우친 지식이 더 깊을 것이다. 음씨는 한의학의 주변 학문인 음양오행이론이나 본초학 등을 비롯해 여러 음식들의 조리법을 스스로 익혔다.

    그의 음식은 자연스레 사람의 체질과 자연의 순리에 거스르지 않는 건강지향성을 띄게 되었다. 김밥 메뉴인 이 집의 매실소불고기(4500원)도 그런 음식이다. 이름처럼 매실액을 듬뿍 넣은 호주청정육 목심을 재워두었다가 불고기로 볶아서 김밥 재료로 쓴다. 양념은 최소화했다는데 불고기가 맛있다.

    이 불고기를 저울에 달아 김밥 한 줄에 100g씩 넣는다. 그 대신 햄과 어묵을 넣지 않는다. 여기에 무항생제 달걀 지단, 색소가 아닌 치자로 물들인 단무지, 취나물, 우엉, 당근 등이 함께 들어간다. 밥은 가마솥과 비슷한 압력으로 지은 쌀밥이다. 일반인이 보기엔 김밥이 비싸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필자가 보기엔 원가가 높아 남는 것도 거의 없을 것 같다.

    마침 한 주부가 저녁 반찬을 사러왔다가 매실소불고기도 샀다. 외교관인 남편과 함께 세계 7개국에서 생활하다 왔다고 한다. 여러 나라 음식을 먹어봤지만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기도 한 자신에겐 이 집 음식이 가장 입에 맞는다면서 살짝 웃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 완성된 매실소불고기는 무척 두툼했다. 일본식 후토마끼를 연상케 했다. 함께 간 직원과 하나씩 먹어봤다. 소불고기 맛이 압도하는 가운데 깻잎 향이 은은했다. 조금 전 다녀간 주부의 말처럼 질리지 않았다.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맛이다. 양도 많아 한 줄이면 웬만한 중년 남성들 한 끼 식사로 너끈하다.

    김밥은 원래 이 집에서 취급하지 않았다. 처음에 단골손님 부탁으로 김밥을 만들었다. 그런데 또 부탁을 해왔다. 한 번은 두 번이 되고, 두 번은 세 번이 됐다. 그러는 사이 부탁해오는 사람이 늘었다. 만드는 김에 좀 더 여유 있게 만들어 다른 손님들에게도 팔게 되면서 김밥은 이 집 주력 메뉴가 됐다.

    손님들이 싫증내지 않고 꾸준히 매실소불고기를 사랑하는 이유를 주인장 음씨는 오행(五行)과 결부시켜 설명했다. 김밥재료들을 오장(五臟)인 간심비폐신(肝心脾肺腎)에 대응하는 오색과 오미로 구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우리 몸이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장이 직접 순리대로 만든 코다리

    이 집은 본시 반찬가게여서 각종 나물, 무침, 조림, 튀김, 장아찌 등이 많다. 그중 참기름과 번데기가 눈에 띤다. 참기름은 음씨가 참깨로 직접 방앗간에서 짠 것이다. 고향이 충북 괴산인 음씨는 어렸을 적 누에를 키우던 잠실에서 얻은 번데기 맛을 평생 잊을 수 없단다. 그 맛을 재현한 번데기도 안줏감으로 인기리에 팔고 있다.

    주인장의 음식철학이 반영된 메뉴 중엔 코다리(1마리 7000원)도 있다. 그는 조리과정에서 이미 가공된 원재료의 개입을 극히 꺼린다. 코다리를 익히기 전에 마늘을 넉넉히 넣는데 직접 절구에 마늘을 빻아서 넣는다. 시중에서 파는 빻은 마늘은 쓰기 편하지만 맛이 제대로 나지 않고 청결도 신뢰할 수 없단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자기 손으로 코다리 조리과정을 오로지하고자 한다. 음씨는 마르크스가 우려했던 노동생산물로부터의 소외를 당할 염려가 전혀 없다. 육수도 직접 낸다. 다시마, 표고버섯, 대파, 양파, 무 등을 넣고 끓여 얻은 국물이다. 이 육수에 각종 양념을 섞어 코다리 소스를 배합한다.

    팬에 소스와 코다리를 넣고 한참 치대면서 익힌 다음 청양고추와 대파를 순차적으로 넣어 향미를 증진시킨다. 코다리 자체가 살집이 두툼해 먹을 게 많다. 보통 코다리에 비해 덜 딱딱하면서도 조리 과정에서 살이 떨어져나가거나 뭉개지지 않고 원형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 동네 주부들이 쉴 새 없이 가게에 드나들면서 “식구들이 집에서 제가 만든 음식으로 알아요!”라고 계면쩍어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이 집 음식은 맵고 짜고 단 맛을 순화시킨 편이다. 코다리 역시 그렇다. 담백하면서도 적당히 맵고 짜지 않아 좋다.

    코다리는 팩으로 포장해 판다. 두 팩을 주문해 함께 갔던 직원과 각각 한 팩씩 나눴다. 아내 역시 나만큼이나 코다리를 좋아한다. 가게를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지출(2인 기준) 매실소불고기(4500×2인) 9000원+코다리(7000×2인) 1만4000원 = 2만3000원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외식콘텐츠마케팅 연구소 (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콘텐츠 개발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월간외식경영 발행인,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는 저렴하고 인심 넉넉한 서민 음식점을 일상적인 ‘식당밥일기’ 형식으로 소개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