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현지시간) B-1B 랜서 전략폭격기 1개 편대(2대)가 북한 턱밑까지 전개한 것은 이전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때와 비교해 몇가지 점에서 차이점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미 국방부는 이날 B-1B 랜서 2대가 F-15C 전투기 6대의 호위를 받으며 비행했고, B-1B 랜서 폭격기는 미국령 괌에 있는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F-15C 전투기는 일본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에서 각각 발진했다고 밝혔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심야 출격이다. 이전까지 미군이 B-1B 등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한 시간대는 대부분 주간이었다.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서 보여준 미군의 공습이 주로 야간과 새벽시간대에 이뤄진 점에 비춰 실제 북한에 대한 공습을 가정한 훈련이 아니었느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국제법 위반을 고려해 영해는 침범하지 않았으나, 북한 공해상으로 미 전략무기가 진출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동안 미군 전략폭격기와 전투기들의 한반도 전개 경로는 괌 앤더슨 공군기지를 출발해 동해상으로 진입한 뒤 우리 군 훈련장에서 가상폭격 훈련을 하고는 오산 미군기지에 착륙하거나, 곧바로 괌으로 복귀하는 절차를 밟았다. 이에 따라 미군 전략자산이 비무장지대(DMZ) 인근까지 비행한다거나 북한 영해와 가까운 공해상으로 접근하는 일도 없었다. 따라서 이번 작전은 북한을 보다 직접적으로 자극하려는 의도가 크다는 분석이다. 도발에 대한 대응이란 기조아래 우리 군이 취하고 있는 다소 ‘소극적인’ 방어 전략과는 다소 상반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지난 4일 국회 국방위에서 지난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때 미국 폭격기가 DMZ 인근까지 접근하지 않도록 요구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군 소식통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 연설 이후 북한에 대한 무력시위의 모습이 변모하고 있다”면서 “여차하면 미국이 군사적 옵션을 가동, 북한을 정밀폭격 내지는 불시에 기습공격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자신을 원색적으로 비난하자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방금 북한 외무상의 유엔 연설을 들었다”면서 “만약 그가 ‘리틀 로켓맨’(김정은)의 생각을 되풀이한 것이라면 그들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22일에도 김 위원장을 ‘리틀 로켓맨’이라고 부르며 조롱한 뒤 그를 처리하겠다고 위협했다.
우리 군이 빠진채 미군이 단독작전을 펼친 점도 궁금증을 낳는다.
B-1B가 한반도에 전개할때는 늘상 우리 공군의 F-15K가 호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일미군기지에 있던 F-15C가 B-1B와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으로 진입해 북쪽 공해상으로 날아갔다.
대북 군사옵션 사용시 미군 단독으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드러낸 것이다.
합참 관계자는 “B-1B가 북한 공해상을 비행하는 사실을 미국으로부터 사전에 통보를 받았고, 상황을 공유하고 있었다”면서 “우리 군이 배제된 것이 아니라 대남 비난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한 조치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이번 작전은 미군의 대북 군사옵션 사용의 전조(前兆)로 봐야 한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 NBC 방송은 지난 8월 복수의 고위 미군 관계자와 퇴역 장성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공격명령을 내리면 괌에 배치된 B-1B가 선두에 나설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모양이 백조를 연상시켜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B-1B는 B-52, B-2 ‘스피릿’과 함께 미국의 3대 전략폭격기로 불린다. 유사시 적진을 융단폭격할 수 있는 가공할 파괴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최대 폭탄 탑재량은 기체 내부 34t, 날개를 포함한 외부 27t 등 61t에 달해 B-52나 B-2보다 많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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