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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된 도가니찜 집서 냄비 바닥을 휘젓다 든 생각

산야초 2018. 1. 7. 23:46

40년 된 도가니찜 집서 냄비 바닥을 휘젓다 든 생각

[Why] 도가니찜 마지막 국물을 떴다… 뜨거웠다

  • 시인 박준  

    입력 : 2018.01.06 03:02

    [시인 박준의 酒방] 쇠냄비 밑에 활성탄
    이 집의 40년 전통이다 냄비 바닥을 휘젓다번뜩 떠오르는 해탈
    "세상에 쓸모없는 건 아무것도 없다네"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와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단 두 권으로 예외적 인기를 얻고 있는 젊은 시인 박준(35)이 소주 한 잔 즐길 수 있는 노포(老鋪) 탐방을 시작한다.

    문학잡지를 발간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나는 자주 충무로에 있었다. 모세혈관같이 구석구석 뻗어 있는 충무로의 작은 골목들에는 인쇄소며 제본소가 줄지어 있었다. 그곳에서 내가 한 것은 인쇄되어 나오는 잉크 채도가 적절한지 혹은 책의 32쪽 다음에 33쪽이 바르게 제본되는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를 번갈아 맡으며 종일 뛰어다니면서도 나는, 스스로가 무용하게만 여겨졌다. 그것은 매번 작업 과정에서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쇄되어 나오는 색은 처음 설정된 색과 같았고 32쪽 다음에는 33쪽이, 그리고 장을 넘기면 34쪽이 사이좋게 놓였다. 책 제작 과정에서 사고가 생기지 않는 것은 물론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쓸모를 발견할 수 없는 일과가 더없이 지루하게 생각되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유용한 존재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오기도 했는데, 바로 일을 마치고 저녁밥을 핑계 삼아 반주로 술을 마시는 순간이었다.

    함께 일하던 직장 선배는 충무로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가주었다. 유난히 노포가 많았고 또 어느 집은 간판도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아 문을 열고 들어가서야 무엇을 파는지 알 수 있는 식당도 있었다. 술잔이 한 순배 돌듯, 충무로 인근 식당을 한 번씩 모두 가보았을 무렵, 나는 머릿속으로 가장 좋았던 식당 순위를 매기기 시작했다. 새로 떠오르고 또 제외되는 식당 가운데에서도 늘 내가 첫째로 꼽는 집이 있었다.

    황소집. 도가니탕, 도가니찜<사진>, 생등심. 단 세 메뉴만 파는 집. 메뉴는 세 가지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도가니찜을 먹는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찜'과 달리 황소집의 도가니찜은 국물과 함께 나온다. 탕보다는 조금 적고 전골보다는 한참 많은 진한 사골 국물. 먼저 대파와 간 마늘이 흐드러진 이 국물을 몇 번 떠먹게 된다. 그다음에는 도가니와 '스지'를 건져 소스에 찍어 먹는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자작하게 남아 있는 국물에 소면을 말아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절차다.

    40년이 넘게 이어진 황소집 도가니찜의 전통은, 활성탄을 피우고 그 위에 두꺼운 쇠 냄비를 올려 끓여가며 먹는다는 것이다. 직화 구이나 훈제도 아닌데 활성탄을 쓴다는 것. 언뜻 무용한 일이라 여길 수도 있다. 나 역시 처음 그 광경을 보며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냄비 바닥을 휘저어 뜬 마지막 국물 한 숟가락을 넘기며, 어쩌면 지금 당장은 무용해 보일 수 있어도 끝까지 무용한 것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내가 그랬던 것처럼. 혹은 마지막으로 떠먹은 국물 한 숟가락이 여전히 뜨거웠던 것처럼.

    황소집(02-2273-0969), 일요일 휴무, 도가니탕(1만원), 도가니찜(1인 1만8000원), 생등심 구이(3만2000원), 면사리(2000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05/20180105015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