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교수 저녁에는 요리사, 하지만 10년 넘게 단골이
안주 삼아 술도 먹는 요리 중심 선술집
입력 : 2017.01.06 08:00
[맛난 집 맛난 얘기] 까치둥지
강호 무림은 넓고 숨은 고수는 많다. 외식업계도 마찬가지. 가끔 숨은 고수급 셰프들을 조우하면 깜짝 놀라곤 한다. 방송에 나오거나 팬들을 거느리진 않았지만 그들의 수준 높은 내공은 인기 셰프 못지않다. 대구 장기동 <까치둥지>는 부담 없이 찾아가는 요리 중심 선술집이다. 이곳 주인장 김현기(54) 씨는 만만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다.
낮과 밤이 다른 교수님의 이중생활
<까치둥지> 조리실 입구 벽면에 훈장이 걸려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훈장이 아니라 주인장의 조리기능장이었다. 그는 이학박사이자 조리기능장 보유자다. 젊어서 서양요리를 전공한 뒤 30년 동안 조리인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면서 틈틈이 학업에도 정진했다. ‘도토리 차의 제조 방법에 따른 품질특성과 기능성에 관한 연구’로 받은 박사학위는 그가 일군 학업의 성과 중 하나였다.
요즘에는 경북과학대학교를 비롯한 대구 인근의 세 군데 대학에 강의를 나가 후학들을 지도한다. 김 교수가 학생들을 가르친 지도 꽤 오래됐다. 그의 지도를 받고 일선 외식업계에서 활약하는 조리인도 적지 않다. 김 교수가 낮에 학교에서 강의를 끝내면 다시 출근하는 곳이 있다. 바로 <까치둥지>다.
이 집은 대구시내 서편의 ‘장기동 막걸리촌’에서 고참급 가게에 속한다. 어느새 개업한지 11년이 넘었다. 주변에 적지 않은 점포들이 생겼다가 사라졌지만 <까치둥지>는 여전히 꿋꿋하게 까치(?)들을 맞고 있다. 90% 이상이 단골 까치들이다. 학교에서 가게로 출근하면 김 교수는 김 대표가 된다.
단골들이 10년 넘게 이 둥지를 찾는 이유는 주인장이 손수 조리한 손맛 나는 음식 때문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장인의 솜씨를 기대하고 찾아오는 이들이 대부분. 얼핏 퓨전 이자카야 느낌이 나는데 1차를 끝내고 2차 장소로 활용하는 손님들이 많다. 선술집이긴 하지만 안주만 먹고 가는 손님도 적지 않다. 그야말로 술을 안주 삼아 요리를 먹는다. 일반음식점 허가를 받은 곳이어서 주말에는 가족단위 손님 입장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치즈 풍미 넘치는 돈가스와 감자 요리
메뉴가 다양해 선택의 폭이 넓은 점도 고객들이 이 집을 찾은 이유. 한식 중식 일식 양식을 망라하고 ‘육 해 공군’을 모두 먹을 수 있다. 보통 2~3인분 분량의 요리 한 접시에 1~2만 원대이고, 비싼 음식도 3만 원대를 넘지 않아 음식 가격이 수준에 비해 저렴하다. 손님이 오면 일단 기본 안주로 겉절이, 샐러드, 손두부 이렇게 세 가지를 내온다. 일본에선 ‘오토시’라고 불리는 덧거리다. 번데기나 팝콘에 익숙한 눈에는 꽤 고급스럽다.
술보다 안주에 무게중심이 있는 집이어서 그런지 이 집은 여성고객이 많다. ‘치즈 돈까스와 통감자 치즈구이(2만원)’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돼지 등심을 튀긴 돈가스, 그리고 감자를 오븐에 구워 직접 만든 소스를 바르고 치즈를 얹은 뒤 다시 한번 더 구워낸 것으로 구성했다. 국내산 감자로는 원하는 모양과 맛을 낼 수 없어 수입산 감자를 쓴다. 무를 꽃 모양으로 깎은 ‘무꽃’과 감자를 가늘게 잘라 튀겨서 새집 모양으로 엮은 ‘까치둥지’로 데커레이션을 했다. 접시 위에 생동감이 넘친다.
‘치즈 돈까스와 통감자 치즈구이’는 우월한 치즈 풍미에 파삭하고 달콤한 감자 맛이 일품. 맥주와 아주 잘 어울린다. 그러나 여성들이 저녁시간에 술 없이 식사대용으로 즐겨 주문하는 메뉴이기도 하다. 여럿이 왔을 경우, 여기에 돌솥누룽지탕(1인분, 3000원)이나 해물누룽지탕(2~3인분, 1만7000원)을 주문해 함께 나눠먹기도 한다.
고급스런 전가복과 탕수육, 중국집보다 저렴
<까치둥지>에서 가장 가성비 높은 메뉴는 전가복(3만3000원)과 등심살 탕수육(1만9000원)이다. 주인장이 본래 양식 전공자이지만 30년 내공으로 조리하는 그의 중식엔 정통 중식에서 느낄 수 없는 개성과 색깔이 감지된다.
전가복에는 해물이 다양하다. 전복과 해삼을 비롯해, 새우, 소라, 오징어 등이 들어간다. 여기에 표고버섯, 새송이, 팽이버섯 등의 버섯류와 부추, 브로콜리 등 다채로운 채소가 합류한다. 미리 만들어놓은 육수에 재료들과 함께 감자 전분을 넣고 웍 작업을 한다. 되직한 국물에 여러 가지 맛난 재료들을 골고루 맛볼 수 있다. 소주나 맥주 안주로 역시 나무랄 데가 없다. 중국집 전가복 가격에 비하면 엄청 저렴하다. 탕수육은 대한민국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메뉴. 이 집에서도 인기가 높다.
등심살 탕수육(1만9000원)은 적당하게 자른 돼지 등심에 달걀노른자를 풀어 넣은 뒤 전분 반죽을 입혀 튀겨낸다. 양파, 당근, 적상추, 피망을 팬에 볶아 불맛을 충분히 입혀 먼저 튀겨놓고, 곧바로 돼지 등심을 튀겨 합친다. 돼지고기를 1인분씩 소포장으로 냉장 보관했다가 즉석에서 썰어 튀겨 원육 신선도가 높다.
조리가 끝나면 큼직한 배 모양의 도기에 먹음직스럽게 차려낸다. 배에 무꽃과 까치둥지 데커레이션을 하고 채소 샐러드도 넉넉히 실었다. 맥주나 생맥주와 어울리지만 소주 안주로 먹는 손님도 있다.
하룻강아지임을 뻔히 아는 데 자기 음식이 대한민국 최고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너무 일찍 성공한 사람일수록 그런 경우가 많다. 30년 경력의 조리기능장 김현기 씨의 고백은 그래서 의외였다.
“요리는 할수록 겁납니다. 손님의 입맛 수준이 갈수록 높아져요. 식재료와 음식 맛에는 절대 한계치가 있습니다. 조리하는 사람이 노력하면 어느 정도 접근이 가능하지만 누구도 그걸 넘어설 수는 없어요.”
<까치둥지> 대구시 달서구 용산로 56 053-522-8551
글 이정훈(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사진 변귀섭(월간외식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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