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양념한 부추 한 가득… 그 아래 부드러운 주꾸미
입력 : 2018.01.26 04:00
[정동현의 지금은 먹고 그때는 먹었다] 한결같은 '꾸이꾸이돼지촌…'
형은 하얀 셔츠 바람이었다. 그날 오후 결혼식 다녀온 차림 그대로였다. "오랜만에 밥이나 먹을까 했다"는 형의 말 한마디에 나는 집을 나섰다. 약속 없는 토요일 저녁이었다. 형이 큰소리쳤다. "옛날에 자주 가던 집이 있다."
차는 공항 근처 김포로 향했다. 길눈 어두운 형은 자기가 자주 찾던 집을 간답시고 여러 번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 그러면서도 내비게이션은 켜지 않았다. "좀 자존심 상한다 아이가."
아무리 잔소리해도 고쳐지지 않는 이상한 고집이었다. 길 찾기뿐만 아니라 다른 데서도 마찬가지였다. 손해를 보고 무리가 가는 일이 확실해도 '의리' '자존심' '도리' 같은 구식 단어를 들먹이며 형은 꼭 하고야 말았다. 그러고 나면 여지 없이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이 들었다. 굳이 한 끼 먹겠다고 공항 근처 방화동까지 가는 상황 역시 낯설지 않아 나는 혼자 밖을 보며 웃었다.
사람 하나 없이 어두울 뿐인 방화동 뒷골목은 서울 같지 않았다. 파랗고 큰 간판을 단 주꾸미집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꾸이꾸이돼지촌쭈꾸미'라는 촌스러운 옥호에 또 웃음이 났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능가."
볼이 빨갛고 눈이 작은 주인장은 형을 보자 먼저 알은척을 했다. 전라도 사투리를 쓰던 그녀는 '잠시만 기다리라'는 눈빛을 보낸 뒤 우리 자리로 와 주문을 받았다. 주인장 남편도 앞치마를 입고 형에게 인사했다. 아들과 며느리도 함께 가게를 지켰다.
"그럼 어무이, 쭈꾸미 구이 이인분 시킬게예."
형은 공손한 사투리로 주문을 넣었다. 이 집 아들은 매일 아침 수협에 가서 일일이 주꾸미를 큰 놈으로 골라 온다고 했다. 국산 주꾸미를 쓰는 집은 오랜만이었다. 주방에서 잠시 복작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금세 주꾸미 한 접시가 나왔다.
차는 공항 근처 김포로 향했다. 길눈 어두운 형은 자기가 자주 찾던 집을 간답시고 여러 번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 그러면서도 내비게이션은 켜지 않았다. "좀 자존심 상한다 아이가."
아무리 잔소리해도 고쳐지지 않는 이상한 고집이었다. 길 찾기뿐만 아니라 다른 데서도 마찬가지였다. 손해를 보고 무리가 가는 일이 확실해도 '의리' '자존심' '도리' 같은 구식 단어를 들먹이며 형은 꼭 하고야 말았다. 그러고 나면 여지 없이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이 들었다. 굳이 한 끼 먹겠다고 공항 근처 방화동까지 가는 상황 역시 낯설지 않아 나는 혼자 밖을 보며 웃었다.
사람 하나 없이 어두울 뿐인 방화동 뒷골목은 서울 같지 않았다. 파랗고 큰 간판을 단 주꾸미집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꾸이꾸이돼지촌쭈꾸미'라는 촌스러운 옥호에 또 웃음이 났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능가."
볼이 빨갛고 눈이 작은 주인장은 형을 보자 먼저 알은척을 했다. 전라도 사투리를 쓰던 그녀는 '잠시만 기다리라'는 눈빛을 보낸 뒤 우리 자리로 와 주문을 받았다. 주인장 남편도 앞치마를 입고 형에게 인사했다. 아들과 며느리도 함께 가게를 지켰다.
"그럼 어무이, 쭈꾸미 구이 이인분 시킬게예."
형은 공손한 사투리로 주문을 넣었다. 이 집 아들은 매일 아침 수협에 가서 일일이 주꾸미를 큰 놈으로 골라 온다고 했다. 국산 주꾸미를 쓰는 집은 오랜만이었다. 주방에서 잠시 복작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금세 주꾸미 한 접시가 나왔다.
흔히 보던 주꾸미 구이와 모양새가 전혀 달랐다. 주꾸미 위에는 부추가 한 가득 올려져 있었다. 버너에 가스불을 켜고 지글지글 끓이듯 볶아 먹는 것도 아니었다. 주꾸미가 이미 주방에서 익어 나왔기에 가스불을 켜는 이유는 단지 주꾸미가 식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가장 달랐던 것은 주꾸미의 식감이었다. 양념 범벅을 하고 끓이듯 익히다 보면 주꾸미는 자연히 질겨진다. 질긴 주꾸미를 쫄깃하다며 먹는 것은 무지(無知)다. 질 낮은 수입 냉동품을 쓰고 조리법마저 다르니 맛이 있을 수가 없다. 이 집은 주꾸미를 살짝 익혀 부드러운 감각이 선명했다. 여기에 고춧가루로 양념한 부추를 올려 먹으니 남자에게 좋은 줄 알면서도 말 못 하는 강장 음식이 여기 있었다.
'이게 본래 주꾸미 맛이다'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조용한 식당에 객은 우리뿐이라 들을 사람도 없었다. 나는 여물 먹는 소처럼 말없이 주꾸미 한 판을 비웠다. 내친김에 삼겹살 일인분, 주꾸미 일인분을 섞어 시켰다. 동물성 기름이 섞여 고소한 맛이 더했고 해산물로 차지 않은 윗배도 든든해졌다.
"배불러도 볶음밥은 묵어야지."
주인장은 큰 양푼 그릇에 신 김치와 김, 참기름을 넣고 쓱쓱 비비더니 철판에 올리고 가스불을 댕겼다. 굳이 열을 올려 바싹 굽지 않아도 신 김치의 묵은 맛 덕분에 숟가락질이 가벼웠다.
"건물 주인이 가게를 비워달라고 해가꼬 작년 9월에 옮겼지라. 그래도 어찌 잘 찾아왔네잉."
가게가 커졌다는 형 말에 주인장이 손사래 치며 답했다. 우리가 한 상 싹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 주인장은 마치 오랜만에 찾아온 자식 대하듯 형의 양손을 붙잡고 나에게 말했다.
"이 삼촌 참 좋은 사람이요. 잘될 것이요. 참말 그래야제."
좋은 것은 대체로 미련하고 어리석기 마련이다. 15년째 국산 주꾸미만 고집하면서도 쫓겨가며 장사하는 이 집이 그랬고, 이곳을 찾아 한 시간을 달린 형이 그랬다.
■꾸이꾸이돼지촌쭈꾸미: 부추 꾸미 1만2000원, 삼겹살 1만1000원, 곰장어 1만1000원, 산 낙지 시가, 반건조 우럭 싱건탕 3만·4만5000원, 볶음밥 2000원, 잔치국수 3000원. 서울 강서구 초원로 77, (02)2662-3450
가장 달랐던 것은 주꾸미의 식감이었다. 양념 범벅을 하고 끓이듯 익히다 보면 주꾸미는 자연히 질겨진다. 질긴 주꾸미를 쫄깃하다며 먹는 것은 무지(無知)다. 질 낮은 수입 냉동품을 쓰고 조리법마저 다르니 맛이 있을 수가 없다. 이 집은 주꾸미를 살짝 익혀 부드러운 감각이 선명했다. 여기에 고춧가루로 양념한 부추를 올려 먹으니 남자에게 좋은 줄 알면서도 말 못 하는 강장 음식이 여기 있었다.
'이게 본래 주꾸미 맛이다'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조용한 식당에 객은 우리뿐이라 들을 사람도 없었다. 나는 여물 먹는 소처럼 말없이 주꾸미 한 판을 비웠다. 내친김에 삼겹살 일인분, 주꾸미 일인분을 섞어 시켰다. 동물성 기름이 섞여 고소한 맛이 더했고 해산물로 차지 않은 윗배도 든든해졌다.
"배불러도 볶음밥은 묵어야지."
주인장은 큰 양푼 그릇에 신 김치와 김, 참기름을 넣고 쓱쓱 비비더니 철판에 올리고 가스불을 댕겼다. 굳이 열을 올려 바싹 굽지 않아도 신 김치의 묵은 맛 덕분에 숟가락질이 가벼웠다.
"건물 주인이 가게를 비워달라고 해가꼬 작년 9월에 옮겼지라. 그래도 어찌 잘 찾아왔네잉."
가게가 커졌다는 형 말에 주인장이 손사래 치며 답했다. 우리가 한 상 싹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 주인장은 마치 오랜만에 찾아온 자식 대하듯 형의 양손을 붙잡고 나에게 말했다.
"이 삼촌 참 좋은 사람이요. 잘될 것이요. 참말 그래야제."
좋은 것은 대체로 미련하고 어리석기 마련이다. 15년째 국산 주꾸미만 고집하면서도 쫓겨가며 장사하는 이 집이 그랬고, 이곳을 찾아 한 시간을 달린 형이 그랬다.
■꾸이꾸이돼지촌쭈꾸미: 부추 꾸미 1만2000원, 삼겹살 1만1000원, 곰장어 1만1000원, 산 낙지 시가, 반건조 우럭 싱건탕 3만·4만5000원, 볶음밥 2000원, 잔치국수 3000원. 서울 강서구 초원로 77, (02)2662-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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