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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 겨울 나그네 Winterreise D.911 (Op.89)

산야초 2018. 3. 4. 23:26

 


슈베르트 / 겨울 나그네 Winterreise D.911 (Op.89)

프란츠 슈베르트 / 겨울 나그네 


슈베르트가 그의 말년에 빌헬름 뮐러(Wilhelm Müller)의 시에 붙인 연가곡집이다. 슈베르트는 이미 1824년에도 뮐러의 시에 붙인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출판했었기 때문에, 슈베르트는 뮐러의 시에만 두 개의 연가곡집을 남긴 셈이 되었다. 총 24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슈베르트는 이 곡이 출판되기 1년 전인 1827년에 작곡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슈베르트의 말년의 가장 어두운 정서를 보여주는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다.





Schubert - Winterreise | Jonas Kaufmann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

〈겨울 나그네〉는 하나인가, 둘인가?


빌헬름 뮐러

오늘날 우리는 〈겨울 나그네〉를 자연스럽게 연가곡집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 연가곡집은 그것의 탄생과 관련된 복잡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우선, 〈겨울 나그네〉가 처음부터 하나의 단일체로 계획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겨울 나그네〉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두 부분이 각각 따로 쓰였고, 출판도 따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제1부와 제2부는 각각 12곡씩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일부의 학자들은 〈겨울 나그네〉가 하나의 연가곡집이 아니라, 두 개의 독립된 연가곡집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뮐러의 시다. 뮐러의 〈겨울 나그네〉가 출판되었던 때는, 슈베르트가 한참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작곡하고 있었던 1823년이었다. 1827년 슈베르트는 (현재의 1부에 해당하는) 12개의 시에 음악을 붙였다. 그러나 그 사이 뮐러는 처음의 〈겨울 나그네〉의 12개의 시에 또 다른 12개의 시를 덧붙여서 1824년에 개정증보판의 〈겨울 나그네〉를 내놓았다. 1827년 10월, 슈베르트가 개정된 〈겨울 나그네〉를 접했을 때, 그는 총 24개의 〈겨울 나그네〉 시들 중에서 자신이 이전에 작곡하지 않은 나머지 12개의 시에 곡을 붙였다.



프란츠 슈베르트



슈베르트가 새로 구성한 〈겨울 나그네〉의 노래 순서

연가곡집에서 각각의 노래들이 어떤 배열로 구성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뮐러가 개정판의 〈겨울 나그네〉에서 시들의 순서를 바꾸었지만 슈베르트는 그 새로운 순서를 따르지 않았다. 그 결과, 슈베르트는 뮐러가 배열해놓은 시의 순서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구성의 〈겨울 나그네〉를 만들어 냈다. 뮐러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에서 시 배열에 대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슈베르트는 뮐러의 6번째 시 〈우편마차(Die Post)〉를 2부의 첫 번째 곡(13곡)에, 23번째 시 〈용기(Muth)〉를 2부의 10번째 곡(22곡)에, 20번째 시 〈환영의 태양들(Die Nebensonnen)〉을 2부의 11번째 곡(23곡)에 사용하였다.

시인의 입장에서는 주인공이 도시를 떠난 뒤에 바로 연인의 편지(‘우편마차’)를 기다리는 것이 더 타당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이야기의 통일성 이외에도 더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슈베르트가 ‘환영의 태양들’과 ‘용기’의 순서를 뒤바꿔놓고 ‘환영의 태양들’을 마지막 노래 바로 앞에 둔 것은 아마도 감성적으로 보다 강렬하고 서정적인 피날레를 만들기 위했던 것이었으리라 추측된다. 2부의 10번째 곡 ‘용기’는 ‘이 세상에 신이 없다면 우리가 바로 신이다’라는 거짓된 용기를 노래한다. 11번째 곡, ‘환영의 태양들’은 반대로, 세상의 모든 빛이 시인의 삶에서 사라졌다는 수수께끼 같은 라멘트이다. 슈베르트의 순서에서, 피날레 전에 위치하는 곡으로써 ‘환영의 태양들’은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가 들려주는 끝도 없는 절망에 대한 보다 명상적인 ‘서주’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겨울 나그네〉가 들려주는 이야기

〈겨울 나그네〉가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는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의 이야기와 비슷한 점이 많다. 두 연가곡집의 주인공 모두, ‘방랑자’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단지, 〈겨울 나그네〉의 주인공은 (아마도 그가 사랑했던 이로부터 거절을 당한 뒤) 한밤중 아무도 모르게 자신이 사랑하는 이의 집을 막 떠나고 있는 참이다. 그의 여행은 강물을 따라 가다가, 한 마을로 이어진 가파른 길을 오른다. 겨울의 춥고, 어둡고, 황량한 풍경들은 주인공의 마음속 풍경을 그대로 드러낸다. 여행길에서 많은 사람들과 사물들을 만나다가 그가 결국 맞닥뜨리는 것은 죽음을 동경하고 있는 자신이다. 결국, 주인공의 겨울여행(Winterreise)은 주인공의 마음이 겪는 은유적인 여행이기도 한 것이다.




카사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교회가 있는 풍경〉(1811)


1곡 안녕(Gute Nacht)

〈겨울 나그네〉는 작별인사를 의미하는 ‘안녕(Gute Nacht, Good-bye)’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였던 소녀와, 많은 꽃이 피었던 5월과, 결혼 이야기를 꺼냈던 소녀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과거의 기억이 되어버린 채, 일정도 없이 어둠 속에서 혼자 쓸쓸히 낯선 길을 시작한다. 그 길을 떠나면서 주인공은 애인의 집 문에다가 ‘안녕(Gute Nacht)’을 써놓는다.

곡은 길을 나서는 나그네의 무거운 발걸음을 묘사하듯 같은 음을 연타하는 8분음표의 반주형으로 시작된다. 이 음형은 이 곡에서 일관되게 지속된다. 4절로 이루어진 유절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중간에 d단조에서 D장조로 바뀐다.





에드바르드 뭉크, 〈도로에 내리는 눈〉(1906)




5곡 보리수(Der Lindenbaum)

슈베르트의 리트를 통틀어서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이다. 한겨울 사랑하는 여인의 집을 떠나 방랑길에 오른 황량한 여행길의 중간에서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던 보리수에 다다른다. 보리수가 제공하는 모든 것은 주인공의 심리와는 정반대이다. 심장(마음) 모양의 잎사귀들, 나무 그늘아래 꿈꾸는 아름다운 꿈들, 그가 사랑의 단어를 아로새겼던 나무껍질...때는 한밤중, 나뭇가지들은 바람에 바스락거리며 그에게 말한다. “오라, 나의 오랜 친구여, 여기서 쉬게나.” 그러나, 곧 강풍이 불어와 그의 모자를 벗기고, 몇 시간 후 그는 보리수를 떠올리면서 마치 “너는 여기에서 쉬었어야 했어”라고 말하는 듯 느낀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의 시냇물이 주인공에게 그러했듯이, 보리수가 말하는 달콤한 ‘쉼’은 곧 죽음이다. 첫 번째 곡부터 네 번째 곡까지 단조에 머물러왔던 음악은 다섯 번째 곡 ‘보리수’에 이르러 비로소 장조로 바뀐다. 노래는 변형된 유절형식으로 세 개의 절과 이와 대조를 이루는 부분으로 구성된다. 전주는 여름날 미풍에 가볍게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온화하게 속삭이는 셋잇단음표로 시작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그의 얼굴에 부는 차가운 바람을 이야기할 때, 음악은 갑자기 단조로 전환된다. 이 곡에서 장조와 단조는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주인공이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릴 때는 장조가, 그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가 질 때는 단조가 등장한다. 또한 중간에 강풍이 불어 그의 모자가 날아갈 때, 음악은 피아노에서 스포르찬도까지 넓은 영역의 다이내믹 변화를 보이면서, 이와 동시에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음을 음형적으로 묘사한다.

11곡 봄꿈(Frühlingstraum)

주인공은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는 꽃들로 가득차고 새들이 지저귀는 5월의 들판을 걸어가고 있다. 하지만, 수탉이 우는 소리에 그는 눈을 뜨고 만다. 그는 다시 꿈을 꾼다. 이번에는 그가 사랑하는 소녀가 나와 그에게 키스를 한다. 그가 사랑의 기쁨을 꿈꾸고 있을 때, 다시 수탉이 울고, 그는 홀로 앉아있는 자신을 본다. 이렇게 봄은 그에게 아름다운 자연과 아름다운 그녀를 떠올리게 해주지만, 현실은 차갑기 그지없다. 그는 다시 잠을 청한다.

뮐러의 시가 꿈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명확하게 대조되는 것처럼, 슈베르트도 이 두 세계를 조성을 통해 명확하게 구분한다. 아름다운 봄날을 꿈꾸는 첫 부분에서 음악은 가벼운 리듬을 타고 부드럽게 움직인다. 그러나 주인공이 꿈에서 깨었을 때, 혹은 이 모든 광경들이 ‘환영’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음악은 갑자기 단조로 변하고 속도는 빨라지고, 흐르는 듯한 선율은 사라진다. 선율이 나와야 할 성악 성부에서는 선율 대신 주인공의 외침이 있을 뿐이다.

24곡 거리의 악사(Der Leiermann)

마을의 끝에서 주인공은 한 백발의 노인이 맨발로 허디거디(중세의 현악기. 손잡이를 돌려 현을 울린다.)를 연주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추운 겨울날 노인은 꽁꽁 언 손으로 허디거디의 손잡이를 돌리지만, 아무도 노인의 음악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노인이 돈을 받기 위해 마련한 접시에는 동전 한 닢도 없다. 개만 이 노인을 보고 짖는다. 주인공은 이 노인과 함께 하자고 건의를 한다.

〈겨울 나그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곡은 사실상 전체의 스토리에서 벗어나 있다. 하지만 이 곡 자체는 전체에 대한 일종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은 자신의 처지와 같은 사람을 만난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고독’임을 받아들인다.

슈베르트의 ‘거리의 악사’는 슈베르트가 작곡한 수많은 리트 중에서도 가장 절망적인 감성을 담고 있다. 성악가는 선율을 노래한다기보다는, 거의 낭송조로 읊조려야 한다. 피아노는 3음이 없는 완전5도를 공허하게 울리며 허디거디의 음향을 재현한다. 이 완전5도의 음향은 노래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겨울 나그네〉의 끝은 그렇게 끝도 없는 절망에 빠진 방랑자의 모습과 거리의 악사를 오버랩하며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