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4개월간 공석이었던 주한 미국대사에 해리 해리스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이 지난 18일(현지시간) 공식 지명됐다.
태평양사령관 출신 주한 미 대사
P-3 초계기 기술장교로 정찰 임무
개인 자동차 번호판도 ‘IFLYP3’
2011년 카다피 축출 작전에도 참여
내달 북·미 회담 직전 부임할 수도
미 백악관은 지난 2월 주호주 대사로 지명했던 해리스 사령관을 자리를 바꿔 주한대사로 재지명한다고 발표했다. <중앙일보 5월 17일자 1, 3면>
상원 인준 절차를 거쳐 7월께 부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미 주호주 대사 지명자 자격으로 상원에서 검증작업이 상당 부분 진행돼 있는 만큼 인사청문회를 거쳐 이르면 다음달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조기 부임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해리스 대사는 역대 주한 미국대사 중 전직(前職) 기준으로 최고위급에 해당하는 인사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신뢰하는 군 출신인 데다 현재 북·미 협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는 각별한 관계다. 그런 점에서 해리스 대사는 ‘중량감 및 권력과의 친밀함’을 동시에 갖춘, 현시점에서 주한 대사로는 최고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해리스가 주호주 대사 지명자에서 극히 이례적으로 주한 대사로 바뀌게 된 데는 폼페이오 장관의 강한 추천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3월 31일 당시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당시 CIA 국장)가 평양으로 향하던 도중 중간 기착지인 하와이에서 해리스 사령관과 면담해 주한 대사직을 건의했다고 한다. 해리스는 폼페이오 장관에게 “한국에서 근무하는 것은 좋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건 내가 일본계(모친이 일본인)라는 점”이라며 한국 내의 반일 감정을 우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깊은 신임을 들어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리스 지명자는 지금까지 주한미군을 휘하에 둔 태평양사령관으로서 한·미 동맹의 유지·관리에 관여해 왔다는 점 때문에 비록 외교관 경험은 없지만 업무 공백 없이 바로 대사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한미군사령관에 내정된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력사령관과 마찬가지로 매우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이라 지금까지의 한·미 외교 방식과는 다소 차이가 날 가능성도 있다. 일단 지금까지 해리스의 발언들을 살펴보면 북한에 대해 상당히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 3월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선 북한이 핵 보유를 통해 한반도를 적화통일하려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는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하면 그(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는 승리의 춤을 출 것으로 믿는다. 우리가 한국·일본과 동맹을 파기한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해리스의 부친은 해군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하고 한국에서 복무도 했던 인연이 있다.
해리스는 또 중국과 주변국들의 영토분쟁이 진행 중인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조성하는 중국을 향해 “‘모래 만리장성’을 쌓고 있다”고 비난하는 등 중국의 패권 확장을 견제하는 발언을 반복해 왔다. 이 때문에 해리스 지명자가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견제 전략인 ‘인도-태평양 구상’에 한국이 동참토록 강한 압박을 가하고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리스는 해군사관학교 입학 당시 전투기 조종사를 꿈꿨다. 하지만 시력이 나빠 조종사 대신 해군항공장교로 성장했다. 냉전 시대에는 기술장교로서 P-3 대잠초계기에 탑승해 소련 잠수함을 정찰하고 추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하와이 근무 때 개인 차량 번호판이 ‘IFLYP3’일 정도로 P-3 탑승 임무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2011년에는 리비아 수반인 카다피 축출 작전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해군 내에서 가장 오랫동안 근무한 현역이다. 지금까지 비행시간은 4400시간이다. 오바마 행정부 때는 합참의장 보좌관을 맡아 정무 감각도 익혔다는 평가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서울=유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