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신 옥황상제·남악부인 정상에 모셔…
항상 짙은 운무로 능선 조망 힘들어
2015년 1월 31일 중국 오악을 취재하기 위해 가장 위도가 낮은 남악 형산(1,300.2m)으로 향했다. 형산 입구에 도착한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추운 겨울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정상 축융봉(祝融峰)에 오르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한국에서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산에 오르는 인파보다 훨씬 많았다. 모두의 손에는 어김없이 향을 들고 있었다.

짙은 운무에 한 번 더 놀랐다. 별로 높지도 않은 산인데 짙게 내려앉은 운무는 한치 앞을 못 보게 했다. 가시거리는 10m도 채 안 되는 듯했다. 축융봉 정상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사람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정말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또 날씨는 왜 그리도 추운지…. 위도 27도라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1시간여 기다리다 도저히 올라갈 수 없다고 판단, 아쉬움을 뒤로한 채 축융봉 등산을 포기하고 형산 입구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되돌아왔다.

중국 오악 시리즈는 한국 사상의 기반이 되는 중국 문화의 깊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 기획했다. 오악에 스며든 무궁무진한 중국문화와 사상은 도저히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산에서 시작된 문명은, 특히 중국에서는 오악에 유불선(儒佛仙) 3교의 사상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중국 오악 시즌2’로 다시 한 번 더 시리즈를 시작한다. 지난해와는 또 다른 깊이와 문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

장수무병 기도객들로 넘쳐
4월 18일 형산 입구에 도착했다. 짙은 안개로 주변을 볼 수 없었던 지난해 방문을 떠올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기다리던 줄이 생각나며 입구까지 제법 거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한 해가 지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포기하고 잘 내려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난해만큼은 아니었지만 올해도 축융봉에 올라가려는 사람은 많았다. ‘왜 그럴까’ 궁금했다.
가이드는 “새해부터 춘(추)절까지 장수무병을 기원하는 기도객들로 형산 정상 축융봉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몰린다”고 말했다. 지난해 춘절(우리의 설날)은 2월 19일. 새해부터 시작된 장수무병 기도객이 계속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1년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그 엄청난 인파가 바로 그 기도객들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형산 입구 곳곳에 목숨 ‘壽’자가 새겨진 비석과 현판이 세워져 있다.

남악묘 주변엔 전부 향을 파는 상점들이다. 전체 가게의 80% 이상은 되는 듯했다. 그만큼 향 수요가 많다는 반증이다. 형산에 올라가는 사람이 연평균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중국인들만 연 300만 명 이상 된다고 한다. 외국 방문객까지 포함하면 500만 명은 훌쩍 넘길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일행들도 축융봉에서 장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향을 샀다. 축융봉을 향해 출발이다. 입구에 목숨 ‘壽’자를 붉은색으로 새긴 비석이 있다. 유심히 살펴보니 한 군데가 아니고 여러 곳에서 보인다. 축융봉과 장수,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우선 축융봉이란 글자 자체에 의미가 있다. ‘祝’자는 알려진 의미로는 ‘기리다’, ‘축하하다’는 뜻이지만 중국에서는 ‘오래되다’, ‘지속되다’는 의미를 지닌다. ‘融’은 우리에게는 융합의 의미이지만 중국에서는 ‘광명’이란 뜻이 강하다. 따라서 ‘축융’이란 의미는 ‘오래 지속되는 광명’ 또는 ‘광명이 지속되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결국 목숨을 오랫동안 유지하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불교의 무량수전과도 뜻이 통한다. 무량수전(無量壽殿)은 아미타불과 그 국토의 백성들의 수명이 한량없는 것을 말한다. 형산을 옛날부터 ‘수악산(壽岳山)’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 고대의 천문역법을 기술한 중국의 <성경(星經)>에 남악 형산은 28진성(軫星)을 나타낸다고 돼 있다. 이 28진성이 바로 인간의 목숨을 관장하는 별이다. 이는 칠성신앙의 다섯 번째 별인 염정성과 관련 있다. 이 염정성이 인간의 수명을 주관한다. 이렇게 봉우리 이름과 관련해서도 많은 사상이 담겨 있다. 염정성은 또한 오행에서 화체(火體)의 산을 가리킨다. 화체는 산 정상의 암석이 톱날같이 날카롭게 생겼으며, 산이 갈라지고 절벽을 이룬 마치 불꽃같은 형상을 하는 적흑색을 이룬 산을 말한다. 금강산이나 대둔산, 도봉산·월출산과 같이 돌로 된 정상 봉우리가 톱날처럼 또는 불꽃처럼 날카롭고 높이 솟아 있는 형국이 이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축융봉이란 이름 자체가 예사로 지어진 게 아니다. 그 안에는 무궁무진한 사상이 담겨 있다. 이를 머리로 음미하면서 유심히 보며 ‘아, 그게 그렇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 무심코 지나치면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엔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면서 동양사상을 포괄하는 오악을 통해서 사상의 깊이를 한층 더 느끼게 된다.
목숨 ‘壽’자가 새겨진 바위에는 어김없이 붉은색으로 덧씌워져 있다. 이는 오방색과도 관련 있다. 오방은 남쪽을 가리킨다. 그러니 남악이다. 또한 남악은 오색에서 붉은색을 나타내며, 오수로는 주작(朱雀)을 상징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방위를 나타내는 남 주작이 바로 이와 맥이 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머리에 넣고 주변을 살펴보니 온통 붉은색과 목숨과 남악이란 방향과 산형세가 눈에 들어왔다. 이를 느끼는 순간 속으로 감탄과 함께 ‘어떻게 이렇게 맞아떨어질 수 있나’ 하는 그 사상적 깊이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남악은 화체의 산이자 붉은색과 통해
일행 중에 한 명이 “실제로 이 마을 주민들은 오래 사느냐?”고 가이드에게 물었다. 가이드는 “주변 주민들의 평균 수명이 80세가 넘는다”며 “100세 넘는 사람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남악묘 입구 안내판엔 형산에 관한 소개글이 있다.
‘후난성(湖南省) 남쪽 중앙에 위치한 형산(난유산이라고도 부른다)은 중국에서 유명한 오악 중의 하나다. 오악독수(五岳獨秀·The Ranking Mount of Big Five), 문명오구(文明奧區·Cultural Mecca), 중화수악(中華壽岳·Mount Longevity), 종교성지(宗敎聖地·Religious Sanctum) 등으로 유명한 산이다. 모두 72개의 봉우리가 있으며, 그 중 44개가 난유산에 있다. 난유산의 주요 봉우리는 주롱봉(Zhurong Peak·축융봉)으로 해발 1,300.2m다. 형산은 긴 역사와 찬란한 문화, 엄청난 유적지와 황홀한 경관을 보유하고 있다. 불교와 도교의 공동 성지(co-shrine)이며, 후시앙학파(Huxiang School of Thought·湖湘學派)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경관은 계절마다 화려하면서 경탄스럽고, 심오하면서도 우아하게 변한다. 우뚝 솟은 봉우리 사이로 흘러 다니는 구름은 환상적이다. 중국 국가5A경관지구와 국가 주요명승지로 지정돼 있다.’
참고로 호상학파는 창시자는 호굉(胡宏)으로, 과거 유학의 경전을 통해 인간 심성의 원리를 깨닫고 이상적인 사회제도를 찾고자 했던 주희 이전의 유학의 큰 흐름이다. 특히 성(性)을 가장 중요한 만물의 이치이자 천하의 근본으로 여기며, 이(理)와 기(氣)의 근원으로 파악한다. 안내문에 있는 내용만 꼼꼼하게 파악하더라도 중국 사상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울같이 중심에 자리 잡아 형산으로 명명
이제 형산으로 올라간다. 지난해 그냥 돌아갔던 케이블카 승강장까지 버스를 타고 간다. 차창 밖으로 형산의 풍경이 얼핏 얼핏 지나간다. 구불구불한 산길은 형산을 제대로 살필 기회를 주지 않는다. 날씨는 맑은데 가끔 안개가 끼었다 걷혔다 반복한다. 지난해에는 새해와 춘절 사이 왔기에 기도를 하기 위한 많은 인파로 성시를 이뤘다고 하지만 올해는 평일인데도 그 당시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역시 명산은 명산인가보다. 또 역시 사람은 장수에 관심이 많은가보다.
가이드는 “남악 형산은 도가에서는 제3 소동천(小洞天)이라고 부른다”고 말한다. 동천은 도교에서 신선이 사는 곳이다. 그만큼 신비하고 자연이 살아 있는 곳이라는 의미다. 물론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구역이다. 중국 국가중점풍경명승구, 국가5A급 관광구, 국가자연보호구 등으로 지정된 곳이다. 자연만으로도 세계와 중국이 인정했다는 의미다. 주변엔 수많은 명승과 고찰이 있어 사계절 내내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형산이란 이름의 유래가 궁금했다. 왜 저울 ‘衡’자를 썼을까? 이것은 산의 형세와 관련이 있다. 뾰족한 산들의 중앙에 우뚝 솟은 산이 중심을 잡아 저울추 같은 형세를 이루고 있다고 해서 명명됐다고 한다. 정상 축융봉의 봉우리는 안개로 볼 수 없지만 인근의 봉우리들은 불꽃같이 우뚝 솟지는 않았지만 봉긋봉긋 솟은 형국이다. 그 중앙에 축융봉이 자리 잡고 있다. 마치 저울같이 중앙은 솟아 있고 주변은 나지막한 봉우리들이 중앙을 향해 읊조리듯 속삭이는 형국과 같아 보인다.
형산은 72개의 봉우리로 유명하다. 축융봉은 72개의 봉우리 중의 최고다. 축융봉을 포함한 자개봉(紫盖峰), 운밀봉(云密峰), 석름봉(石廩峰), 천주봉(天柱峰) 5개의 봉우리는 특히 신령한 봉우리로 알려져 있다. 축융봉을 중심으로 4개의 영봉이 각 방향으로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다. 동쪽에 있는 자개봉은 붉은 석양이 봉우리를 뒤덮는 형국과 같아 화개봉(華盖峰)이라고도 부른다. 서쪽은 천주봉, 남쪽은 운밀봉(연하봉이라고도 지칭), 북쪽은 석름봉(벽하봉이라고도 지칭)이 축융봉을 중심으로 저울추를 이루고 있다.
산은 봉우리가 많을수록 골이 더욱 깊다. 도교의 수련은 골 깊은 절벽에 집을 짓거나 동굴에서 행해진다. 형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도교에서는 36동천(洞天)과 72복지(福地)가 있다. 동천은 신선이 사는 이상향과 같은 곳이고, 복지는 일종의 명당과 같은 개념이다. 남악엔 제3 동천인 주릉 태허(朱陵 太虛)가 있다. 복지는 4군데 있다. 제20 복지 동진허(洞眞墟), 제21 복지 청옥단(靑玉壇), 제22 복지 광천단(光天壇), 제25 복지 동영원(洞靈源)이다.

도교의 제3 동천과 4개의 복지 있어
형산의 풍광을 발아래 내려다보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밑으로는 걸어가는 사람들도 간혹 보인다. 중국에서도 도교인들은 대부분 걸어서 다닌다고 한다. 역시 이들에게는 몸을 움직이는 수련이 중요시되는 것 같다.
케이블카 하차지점엔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간식을 파는 조그만 가게도 제법 있다. 한국에서 본 포장마차 같은 점포들이 호객행위를 한다. 사람을 태워서 나르는 가마꾼들도 있다. 앞 뒤 두 사람이 대나무를 어깨에 메고 가운데 의자에 사람을 앉혀 실어 나르는 가마꾼이다. 일행 중에 한 명이 다리가 아파서 못 가겠다며 가마꾼에게 얼마냐고 묻는다. 마침 그 사람은 키에 비해서 체중이 제법 나가는 체형이다. 가마꾼이 그 사람 아래 위를 훑더니 “원래는 300위안인데, 체중이 많이 나가서 600위안이다. 너무 무거워”라고 답을 한다. 전부 한바탕 웃는다. 가마꾼도 따라 웃는다.

정상 축융봉은 안개가 짙게 깔려 보이질 않는다. 다행히 바람이 불어 안개를 몰고 간다. 어렴풋이 봉우리가 보인다. 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누르지만 뚜렷하지 않다. 정상을 향해 눈을 뗄 수 없다. 언제든 안개만 걷히면 봉우리를 렌즈에 담을 기세로 걷는다.
운무 사이로 어렴풋이 등산로가 보인다. 등산로라기보다는 일종의 도로다. 원체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다보니 정상까지 차가 다니도록 포장을 했다. 우리같이 등산화를 신고 산을 오르내리는 게 아니라 구두를 신고, 치마를 입고 정상을 가는 사람들도 많다. 산에 가는 목적 자체가 우리와는 크게 다른 느낌이다. 우리는 단순히 산이 좋아서, 또는 건강을 위해서 가는 사람이 주류를 이루지만, 중국에서는 특히 오악과 같은 명산에서는 만수무병과 자녀의 출세, 남편의 승진을 위해 기도하러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 사람들 틈에 끼여 같이 오른다. 남천문이 나온다. 오른쪽엔 운행(雲行), 왼쪽엔 우시(雨施)란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역경(易經)>에 나오는 말로, 구름을 움직여 비를 내리게 한다는 뜻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을 법한데 이 정도밖에 알 수 없다.

남천문은 중앙 축융봉으로 올라가는 주요 통로이면서 남쪽 운밀봉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남천문은 산 입구인 시내에서 9㎞나 되지만 여전히 등산로는, 아니 길은 도로다.
사자암 바위가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길 옆에 석탑같이 겹쳐 있는 바위가 앉은 사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명명됐다. ‘무사(舞獅)’란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다. 춤 추는 사자 같지는 않은데….
마침 안개가 살짝 걷히더니 우뚝 솟은 봉우리와 능선을 잠시 보여 준다. 화체의 산이라지만 능선은 여느 산과 별로 다르지 않다. 단지 정상 봉우리는 우뚝 솟아 있다. 주변 암벽들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옹용대아(雍容大雅)’가 눈에 띈다. 마음이 화락하고 조용하며 훌륭하고 고상한 상태를 말한다. 산 속에 들면 편안하고 고상한 상태에 빠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 옆에는 나무아미타불이 아닌 ‘남악아미타불(南岳阿彌陀佛)’이라고 새겨져 있다. 절묘한 조어가 아닐 수 없다.
절이 없을 수 없다. 상봉사가 그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원래 도교의 동굴이 있던 자리에 절을 지었다고 소개한다. 수나라 황제가 이곳에 처음 왔다고 한다. 황제가 누군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해발 1,200m 지점이다. 100m만 올라가면 정상 축융봉이다. 길이 완만해 별로 힘들지 않다.
우왕성(禹王城)이라는 비석이 눈에 띈다. 우왕은 중국 상고시대 왕으로서, 지금 역사로의 편입을 한창 시도하는 중이라고 한다. 또 다른 동북공정의 작업으로 여겨진다.
큰 바위에 붉은 글씨로 축융봉이라고 새긴 비석이 방문객을 맞는다. 역시 붉은색이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기념사진을 찍기 여념 없다.
마침내 정상 축융봉이다. 봉우리 위에 축융전이 있다. 남악의 신을 모신 사당이다. 사당에는 어김없이 옥황상제가 모셔져 있다. 옥황상제는 도교의 최고신이기도 하지만 민간신앙의 최고 신이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환웅에 해당되겠다.
그런데 남악 형산에도 우리 지리산에 있는 마고할미 같은 거인신화가 있다. 거인신화는 동서양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중국은 반고개천(盤古開天) 신화다. 세상이 처음 열릴 때 거대한 몸집을 가진 할망이 1만8,000년을 살면서 세상을 만들었다. 할망이 힘들어서 누웠던 자리가 오악을 형성했다고 전한다. 머리가 있던 자리가 동악, 배가 있던 자리는 중악, 왼쪽 팔이 있는 자리는 남악, 오른쪽 팔이 있던 자리는 북악, 양쪽 다리가 있는 자리가 서악이라고 한다.
또한 남악에는 남악부인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남악부인은 도가의 경서로 알려진 <황정경(黃庭經)>의 저자와 관련 있다. <황정경>은 도가의 양생(養生)과 수련(修練)의 원리를 담고 있는 선도 수련의 주요 경전이다. <황정경>은 내경과 외경으로 나뉜다. 외경은 상부경·중부경·하부경으로 구성돼 있으며, 내경은 모두 36장으로 돼 있다. 이 내경의 저자가 위부인(魏夫人) 또는 남악부인으로 불리는 위화존(魏華存·252~334)으로 알려져 있다. 황정경은 인체 곳곳을 지키고 있는 존사(存思)와 존신(存神)사상을 특징으로 한다. 인체를 상·중·하 세 부분으로 구분하고 사람 몸의 모든 기관에 있는 신(神)을 잘 섬겨 정(精)·기(氣)·신(神)을 잘 닦아 황정에 응집시켜야 한다는 양생의 원리를 담고 있다.
축융봉 꼭대기 위에 있는 축융전에 남악부인이 있고, 하늘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옥황상제를 모시고 있다. 이 모습이 남악이고, 남악의 신의 모습이다.

형산 정보
중국 중남부 후난성(湖南省) 형산시에 있다. 장사공항에서 버스로 약 5시간 걸리며, 인천공항에서 직항이 운행한다. 위도는 27도 정도에 위치하고, 아열대 계절풍 기후에 속해 겨울은 건조하고 차고 비와 눈이 많으며, 봄과 가을은 따뜻하지만 역시 비가 많이 내린다. 연간 강수량이 1,600~2,000mm 정도 되지만 4~9월에만 전체의 60% 이상인 900mm를 뿌린다. 계절은 좋지만 비와 안개 때문에 경관을 못 볼 수 있다. 2008년 중국 정부가 공식 집계한 결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10대 명승지’에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