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서화

하와이 진주만의 1941년 12월 7일

산야초 2018. 11. 4. 23:48








































하와이 관광을 하면서 75년전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한 사건을 생각하며
진주만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설치되어있는 유물전시관과 기록영화를
관람하며 적지 않은 충격과 슬픔에 잠겼었기에 그 곳에서 촬영한 사진들과
참고자료가 될 만한 자료들을 수집하여 첨가하였습니다.


진주만 공습은 1941년 12월 7일 미국 하와이 오아후섬 진주만(Pearl Harbor)에
정박해 있던 미 태평양함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일본이 선전포고 없이 진주만을
선제 기습공격한 사건입니다. 그 당시 총 450대의 항공기를 실은 6척의 일본
항공모함이 하와이 근해에 접근해 진주만을 공습하였고 진주만에 정박해 있던
7척의 미국전함 가운데 5척이 격침되고, 200여대의 항공기가 파괴되었으며
2,000명 이상이 사망한 처참한 사건이었습니다.

침몰한 아리조나함 기념관(사진)에는 공격 당시 현장의 전사자들의 명단이 적혀
있었으며 수면 위에 보이는 커다란 둥근통은 연료저장탱크(?)로서 아직도 기름이
새고 있다고 합니다.


B29 전폭기에 실린 U-235 원자폭탄이 1945년 8월 6일 오전 9시 15분,
히로시마(사진)에 떨어졌으며 6만여 명이 즉사하고 폭탄이 떨어진 지점에서 반경
2킬로미터까지는 풀 한 포기 남지 않고 모든 것이 불에 타 없어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사흘 뒤, 나가사키에 또 다시 원폭이 투하되어 3만 6천명이 목숨을 잃었고 8월 15일,
일본 천황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습니다.

일본의 항복 조인식은 1945년 9월 2일, 도쿄만에 정박한 BB-63 USS Missouri(사진)함상에서
열렸습니다. 미주리함상에 도착한 일본 대표단이 참여한 가운데 9시 2분에 맥아더 장군이
짤막한 연설을 했고 9시 4분에 시게미츠 마모루 외무상이, 9시 6분에는 요시지로 우메즈
장군이 각각 일본 정부와 군을 대표해서 항복문서에 서명했습니다. 9시 8분엔 맥아더
장군이 연합군 최고사령부 대표로 서명하였음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