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북알프스’ 다테야마 알펜 루트 트레킹…각 현마다 풍성한 전통 문화 체험도
호쿠리쿠北陸는 ‘일본 북알프스’가 위치한 도야마현을 비롯해 동해에 접하는 니가타·이시카와·후쿠이 현을 일컫는 말로, ‘북알프스’의 이국적인 풍광과 더불어 오랫동안 전승된 전통 문화들이 곳곳에 잘 보존되어 있는 지방이다. 여기에 신에쓰信越 지방인 나가노현과 니가타현을 더해 호쿠리쿠신에쓰 지방으로 통틀어 부르기도 한다. 이는 옛 지방 구분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이 지방은 세계적으로도 눈이 많은 지역이다. 당장 올해 초 겨울에만 해도 1m가 넘는 폭설이 내리기도 했다. 이는 ‘북알프스’로 알려져 있는 히다산맥飛?山脈의 영향 때문이다. 히다산맥에서 서쪽에 위치한 산맥이 다테야마연봉立山連峰이며 이 연봉을 관통해 도야마현과 나가노현을 잇는 산악관광루트가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 루트’이다. 양옆에 거대한 설벽을 두고 걷는 길로 유명하다.
이번 호쿠리쿠 팸투어는 도야마현에서 다테야마 알펜 루트를 통해 나가노현으로 이동, 기후현을 경유하며 호쿠리쿠신에쓰 지방 곳곳의 자연 경관을 감상하고 문화를 체험하는 일정으로 구성됐다.
도야마공항에서 내려 버스로 이동해 우나즈키宇奈月에 첫 여장을 풀었다. 우나즈키는 구로베강이 흘러 내리는 다테야마의 굵직한 산 능선 사이 골짜기에 숨어 있는 마을이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온천 휴양지인 만큼 마을 곳곳에 족탕을 할 수 있는 노천온천이 샘솟고 있다. 알칼리성 온천으로 피부미용에 탁월하다.



도롯코 열차의 출발지, 우나즈키
우나즈키는 일본에서도 오지로 손꼽히는 곳이었으나 지난 2015년 3월 구로베우나즈키온센역으로 신칸센이 개통되며 접근성이 크게 개선돼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게 됐다.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구로베강과 철도의 모습이 이색적이다. 바로 이 철도를 통해 구로베협곡을 거슬러 오르는 도롯코 열차가 운행한다.
도롯코 열차는 1950년대 구로베댐을 건설할 때 건설자재 및 폐기물을 실어 나르던 광차를 댐 완공 후 관광열차로 개조한 것이다. 도롯코 열차가 처음 개시됐을 때는 난간 없는 실제 화물용 광차를 사용해 목숨포기각서를 써야 탑승할 수 있었다고 한다.
평균 시속 16km로 탐방하는 구로베협곡의 위용은 압도적이다. 위로는 깎아지를 듯한 절벽에 삼나무와 참나무가 짙은 녹음을 드리우고 있으며, 아래에는 구로베강의 수면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린다. 유럽의 한 고성을 통째 옮겨놓은 것 같은 신야나기가와라발전소나 높이 200m로 “고양이에게 쫓긴 쥐도 못 오른다”는 네즈미가에시 암벽, 수면으로부터 높이가 60m인 근방에서 가장 높은 아토비키다리 등 소소한 볼거리들이 풍부하다. 또한, 중간 정차역인 구로나기역과 가네쓰리역에는 온천도 위치하고 있다. 이 온천수들이 우나즈키온천의 원천이다.
도롯코 열차는 우나즈키역에서 종점인 게야키다이라역까지 총 20.1km를 운행하지만, 종점까지는 너무 길어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중간의 가네쓰리역에서 도로 내려온다. 느림을 즐기며 오지의 대협곡을 만끽할 수 있는 코스다.
도롯코 열차를 시승한 후 해발 475m에 위치한 다테야마역으로 이동했다. 다테야마역에서는 산 위의 기상정보를 CCTV로 직접 보여 준다. 여기서 해발 977m의 비조다이라美女平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7분 만에 오른다. 공중에 매달려 가지 않고 지상에 설치된 철도를 따라 케이블로 열차를 끌어 올리는 방식이다.
비조다이라역에서 다시 고원버스로 갈아타고 해발 1,9 30m의 미다가하라?陀ヶ原로 이동한다. 약 30분이 소요되며 버스 양 옆으로 수령이 자그마치 각각 300년, 200년 된 삼나무와 너도밤나무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우거진 숲을 통과한다. 일본의 폭포 100선에 뽑힌 수직낙차 350m의 쇼묘다키폭포도 지나지만 안개가 짙게 끼어 그 위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

미다가하라, 천상의 습지
미다가하라는 천상의 습지다. 지난 2012년 7월 람사르협약에 등록될 만큼 아름다운 경관과 생태적 가치를 자랑한다. 몇 만 년 전 다테야마화산이 대폭발을 일으켰을 때 흘러내린 용암이 굳어 생긴 고원이다.
나무가 깔린 산책코스 길을 따라 미다가하라습지를 한 바퀴 돌았다. 짙게 깔려 있는 구름이 조금씩 걷히며 동해바다로 흘러내리는 다테야마연봉의 험준한 능선들이 신비롭게 드러난다. 목도 위로 수많은 여치가 폴짝거린다. 길 옆 곳곳에 작은 못들이 있다. 미다가하라는 봄에는 설원이, 여름이면 황새풀과 원추리 꽃이 만개해 화원이 되고, 특히 가을의 단풍은 다테야마 최고의 명소로 꼽힌다.
삐걱거리는 목도를 따라 걷는다. 운무에 싸인 미다가하라습지의 광대한 초원은 황홀했다. 안내판을 보니 트레킹 코스는 총 2km 길이에 2시간이 소요된다고 적혀 있다. 평지길인데 2시간이나 걸린다니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순간 화폭에 미다가하라를 담는 화가들이 보였다. 이들은 그림이 완성될 때 까지 2시간이건 8시간이건 2km 코스를 ‘걷고’ 있는 상태라는 생각에 닿았다. 그동안 ‘소요시간’의 개념을 ‘주파 시간’으로 여겨왔지만, 이곳의 소요시간은 ‘감상시간’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즉, 2km를 오롯이 즐기기 위한 적정 시간이 2시간이라는 의미다.
의식적으로 보폭을 줄이자 불쑥 땅거미가 진다. 짙게 깔린 구름 뒤로 석양이 진다. 멀리 도야마만灣과 도야마 시내의 불빛들이 자아내는 석양과 야경 위로 명멸하는 별빛을 바라보며 미다가하라산장에서 하루를 마친다.




다테야마 신이 빚은 환상의 정원 무로도
다음날, 다시 고원버스를 타고 해발 2,450m의 무로도로 올랐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위압적으로 솟아 있는 다테야마연봉 주능선을 마주친다. 주봉인 오야마雄山(3,003m) 위의 신사가 구름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모습을 드러내며, 그 옆에 다테야마 최고봉 오난지야마大汝山(3,015m), 벳산別山(2,880m)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찔하다.
눈을 돌리면 다테야마 산신이 빚어 놓은 무로도 정원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다테야마는 후지산과 하쿠산과 더불어 일본의 3대 영산으로 예로부터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들어 숭배했다고 한다.
산정호수인 미쿠리가이케 뒤 지옥골에서는 연신 유황 증기가 치솟는다. 미쿠리가이케는 화산 분화로 생긴 산정 호수로 바람이 잔잔한 날이면 코발트블루 색 호면에 주봉인 오야마가 비친다고 한다.
여기서 다테야마 정상까지는 고작 2.5km거리로 왕복 4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다. 일본의 3,000m대 산 중에서 가장 빨리,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이 때문인지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객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런데 중국인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작년에 한국에서만 3만5,000명이 다테야마를 찾은 반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중국인은 거의 이곳에 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북알프스 관광을 더욱 선호하는 관광객도 있다.
미다가하라가 생명을 품은 초원이라면 무로도는 환상적으로 조성된 한 폭의 일본식 정원과 같았다. 그렇기에 산행보다는 산책에 가까웠다.
일정이 촉박해 무로도를 뒤로하고 이번엔 트롤리버스에 탑승했다. 트롤리버스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지역을 통과하는 ‘전차’다. 1964년부터 무려 6,000만 명을 수송했다. 올해로 퇴역해, 54년의 역사를 갈무리하고 내년부터는 전기버스가 동일 구간에서 운행된다.
트롤리버스는 다테야마산 아래 지하터널을 따라 운행된다. 10분쯤 지나면 다이칸보(2,316m)에 닿으며 여기서 다테야마 로프웨이를 타고 구로베다이라(1,828m)로, 다시 또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구로베댐으로 내려선다. 3대 영산으로 추앙받는 산에 터널을 뚫고, 로프웨이를 설치한 데다 댐까지 건설한 것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곳은 워낙 오지여서 지역 주민들이 거의 없다시피 해 반대가 없었다고 한다. 정부의 국책사업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 일본 특유의 국민성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구로베댐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경제부흥 시기 전기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1963년 건설됐다. 무려 7년에 걸쳐 건설했으며 171명의 순직자가 나올 만큼 난공사였다. 댐의 높이는 186m로 일본에서 가장 높다. 구로베댐으로 조성된 구로베호수의 평화로운 수면과 댐 아래 방류 현장에 뜬 쌍무지개가 아름답다. 거대한 자연과 장엄한 문명이 조화롭게 어울린 모습이 경이롭다.
구로베댐에서 트롤리버스를 타고 간덴터널을 지나면 나가노현의 오오기사와에 닿는다. 다테야마 알펜루트 산악관광의 종점이다. 감탄만 나오는 자연경관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이를 관광 상품으로 적극 개발한 점이 이채로웠다.
일본 전통 문화 살아 숨 쉬는 거리들
다테야마 알펜루트 관광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일본 전통 문화 탐방에 나섰다. 먼저 옛 일본의 모습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는 멋스러운 거리들을 찾았다. 기후현 다카야마의 산마치 거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장악해 에도막부를 운영한 에도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거리다. 산마치는 ‘3개의 거리’라는 뜻으로 미야카와 강을 중심으로 뻗어 있는 이치노마치, 니노마치, 산노마치를 가리킨다. 이 거리의 건물들은 일본 정부가 전통 가옥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작고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많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또한, 도야마현 난토시의 이나미도 색다른 볼거리다. 이곳은 목공예사들의 거리로, 100개가 넘는 공방에 200여 명의 목공예사들이 작업하고 있으며, 공정과정을 가까이서 직접 볼 수도 있다. 또한 기모노와 유카타 대여소도 있어 일본 전통 복장을 착용하고 마을을 돌아다닐 수 있다.
이나미마을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 마을로 꼽힌다. 이나미 목조각의 발상지는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한 사찰인 즈이센지瑞泉寺다. 1390년에 창건된 즈이센지는 호쿠리쿠 지방 최대의 사원 중 하나로, 큰 화재를 당할 때마다 재건된 바 있다.
마지막으로 화재로 산문이 소실된 것은 1700년대였다. 이때 절의 재건을 위해 교토에서 조각가 미야다이쿠가 와서 200여 명의 주민에게 목공을 가르치며 절을 다시 지었다. 당시 전수한 목공기술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발전, 계승해 일본 최고의 목공예품을 생산하는 마을로 거듭날 수 있었다.
판매용인 조각품 외에도 다양한 조각품들을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지붕 위나 기둥 사이 등 마을 곳곳에 숨겨진 13마리의 고양이 조각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물 공예와 조동종의 마을, 다카오카
도야마현 다카오카高岡시는 400여 년 전부터 일본 최고의 주물 생산지였다. 현재는 수요가 줄어 규모가 다소 축소됐지만 여전히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1916년에 창업돼 4대째 내려오고 있는 주물 회사 노사쿠能作는 현대적 기법을 접목해 주물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을 받는다.
노사쿠에서는 주물 제작 체험을 할 수 있다. 견본에 원하는 모양과 이니셜 스티커를 붙여 넣고 염료한 석회가루와 조개가루를 이용해 틀을 잡은 뒤, 틀에 녹인 주석을 부어 넣고 말리면 자기만의 주물이 탄생한다.
또한, 다카오카에는 조동종曹洞宗 불교사원인 국보 즈이류지瑞龍寺가 있다. 즈이류지는 가가번(현 도야마현과 이시카와현 일대) 3대 번주인 마에다 도시쓰네前田利常가 1614년 창건한 절로, 2대 번주인 마에다 도시나가前田利長의 위패를 모셨다. 인체의 형상을 본떠 총문, 산문, 불전, 법당을 일직선으로 배열하고 좌우에 선당과 대고리를 배치했으며, 이를 ㅁ자 형태의 회랑으로 연결했다. 근세 목공 장인 중 일류로 평가받는 명장 야마가미 젠에몬 요시히로가 건축했다.
단청 없이 고색창연하고 웅장하다. 정확한 좌우대칭을 이루는 가람배치와 눈이 많은 지역 특성상 납으로 만든 기와가 특징이다.


아름다운 수변 공원 간스이, 해변 공원 카이오마루
“도야마현은 주부취업률과 주택보급률이 전국 1위인 지방입니다. 주부취업률이 높은 건 3세대 가구가 많기 때문이에요. 할머니들이 주로 손자를 봐주십니다. 주택보급률이 1위인 건 부지가 넓고 사람이 적은 탓입니다. 정말로 살기 좋은 도시죠.”
투어 마지막 날은 도야마현 미술관과 도야마 시내에 위치한 공원들을 돌아봤다. 도야마현 미술관은 간스이공원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마침 수요일이 휴관일이어서 내부를 들어가지 못했다.
다만 옥상의 오노마토피아는 휴관일에도 관람할 수 있다. 오노마토피아는 어린이들을 위한 작은 놀이터로, 트램펄린이나 시소 등 아기자기한 시설물들이 설치돼 있다. 미술관이 근처에서 유일하게 높은 건물이라 이곳에서 간스이공원 너머 도야마 시내와 다테야마 연봉의 마루금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간스이공원은 기존에 운용되던 후간운하를 일부 개조해 조성한 공원이다. 봄에 수면 위로 벚꽃을 떨어뜨리는 벚꽃 명소다. 또한, 간스이공원 스타벅스 매장은 2008년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 지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카이오마루공원은 공원 자체의 경관보다 신미나토대교를 배경으로 당당하게 정박해 있는 세계 최대 크기의 카이오마루 범선을 보기 위해 찾는 곳이다. 1930년 진수해 1989년 은퇴한 카이오마루는 총 길이 100m, 높이 46m, 전체 2,200t 규모로 일본 항해훈련소 소속의 교육 훈련용 범선이다. 국내에는 2012 여수엑스포에 입항하면서 한 차례 알려진 바 있다. ‘바다의 귀부인’이라는 이칭이 있을 정도로 유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카이오마루를 끝으로 호쿠리쿠 팸투어를 마무리했다. 경이로운 자연경관과 일본 고유의 전통 문화를 동시에 향유할 수 있어 즐거웠다.
특히, 일본인들이 이러한 자연과 전통 문화를 보존하고, 활용하는 방식은 외경심이 들 정도로 탁월했다. 무엇보다 감탄한 것은 일관성이다. 적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자연과 문화를 지켜오는 자세가 신비롭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광정책이 요동치는 한국의 실정이 사뭇 아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