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서화

결혼 2번하고 남장까지 하며 왕 자리에 오른 그녀

산야초 2019. 3. 12. 21:59

...결혼 2번하고 남장까지 하며 왕 자리에 오른 그녀
































왕가의 계곡 근처에
이집트 18 왕조의 5번째 파라오 (Pharaoh)였던,여자 파라오의 기념 사원이 있다.

기원전 1478년에 왕좌에 오른 파라오로
여자 임을 감추기 위해
내내 수염을 붙이고 남장을 했던 왕,
핫셉수트, 하트셉수트(Hatshepsut)이다.
(입장 티켓에 나와있는 이.)

제목에서 처럼,
여행 중 가이드가 몇몇 사람을 불러내어 설명을 했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관계…

자, 이제부터 제가 그린 삐뚤삐뚤 가계도를 보면서 이해를 해 보는 것이 좋을 듯…
(power point 열 시간 없어,,, 걍 수제로... ㅠ.ㅜ)

1. 투트모세 1세(Thutmose I)와 아내 아모제 (Ahmose)는 딸 핫셉수트를 낳고
2. 투트모세 1세와 뭇노프레트(Mutnofret)는투트모세 2세를 낳고
3. 투트모세 2세와 핫셉수트는 네페루레 (Neferure)를 낳고
4. 투트모세 2세와 이셋 (Ist)은 투트모세 3세를 낳았다.
5. 투트모세 3세가 2살 때 왕이 되었을 때, 계모 핫셉수트는 수렴청정 왕권을 행사 시작.
7년 집권 후 왕 (파라오)가 됨.
그리고 투트모세 3세와 결혼..무려 20살 정도가 많았다고 한다. 핫셉수트가…

그때의 이집트는 왕권의 정통성을 높이기 위해,
이렇게 근친결혼이 성행되어졌다고 한다.
가이드에게 물었다…
“이렇게 근친결혼이면, 독일 합스부르그 가처럼, 문제가 없었었냐구요????…”
당연 선천 기형 등의 많은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녀의 치하에서 나라는,
제일 융성했던 람세스 2세의 치하만큼이나, 융성해지고 많이 강건해졌다고 한다.

이 여자 파라오 사후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념 사원 (장제전)
로마의 판테온 보다 무려 천년 전에 세워진, 좌우 대칭이 완벽한 기념물이라고 한다.
사원이 얼마나 큰지를
계단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크기를 보면, 갸늠할 수가 있다..

수 세기 동안 모래에 묻혀있다 발굴되어,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형태.

이 사원의 부조들에는,
이 여왕이 원정 시찰했었다는 푼트 지방 (지금의 에티오피아나 소말리아 북부 정도로 추정)에서 가져온 식물 등이 부조되어 있었다.
3천 몇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대로 남아있는 색조부조.
그 당시 파라오들이, 신 (태양의 신 아문 레, 머리에 깃털 2개 있는 부조)에게 바치는
제물 내역을 세세히 부조해 놓은 것이다.

이 여왕도
다른 파라오들처럼, 죽은 뒤, 심장과 뇌만 따로 숨기고,
다른 장기는 각 각 단지에 담고, 몸은 미이라화 하여 왕가의 계곡에 보관하였을 터인데….

무덤은 왕가의 계곡 60 번에서 찾았으나,
그 미이라는 찾지 못하다가,
어디서 찾은 미이라의 상태가,
즉 잇빨이 많이 빠진 상태의 미이라가, 그 여왕일 거라고 한다… 

이 신전 안 부조 중: 소, 파라오를 탄생시키고 지킨다는 신, Hathor에게서
수유를 받는 핫셉수트를 새긴 것으로
그녀의 신탁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소 머리 밑 부분에 그녀가 서서 수유 받고 있다는... 보이셔요???)

이 신전 테라스에는
오시리우스 팔 형태를 한 핫셉수트 (하트셉수트)의 형상이 쭈우욱 나열되어 있다.
(오시리우스 팔 형태는 다음에...)

그런데… 제대로 남아있는 형상이 없는 이유가…
계모이기도 했지만, 자기, 남자+파라오, 보다 더 치세가 높았던 핫셉수트를 원하지 않았던
투트모세 3세는, 기원전 1457년 이후부터,
이 이름을 제거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기념 사원뿐만 아니라많은 곳에서 그 기념 사실을 쪼아 내었다고 한다.
그래도 진실은 가릴 수가 없는 법.
이곳저곳에서 그 우세한 치세가 증명이 되어 나왔다고 한다.

“난 돌은 정 맞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