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판과 아집에 갇힌 민주당, 대선뒤 687만표 집 나갔다 [위기의 민주당]
중앙일보
입력 2022.06.07 05:00
업데이트 2022.06.07 09:12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일인 1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마련된 더불어민주당 개표상황실에서 민주당 관계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출구조사 결과를 바라보고 있다. 맨 앞줄에 박지현 당시 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왼쪽부터)과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 윤호중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이 앉아 있다. 김성룡 기자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이 대거 이탈했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얻은 전국 17개 시·도 정당투표(광역의원) 득표수를 지난 대선과 비교한 성적표다. 민주당은 대선에서 1614만 표를 얻었지만, 이번엔 그 57.4%(927만 4784표)뿐이었다. 석 달 간 최소 687만 표(42.6%)가 사라졌다. 이재명 후보를 찍었던 유권자 절반 가까이가 투표를 포기했거나 다른 정당 지지로 돌아서는 ‘지지층 엑소더스(exodus·대탈출)’다.
반면, 국민의힘은 낮은 투표율에도 윤석열 대통령 득표수 1639만 표 가운데 70.7%(1159만여 표)를 다시 얻었다. 대선 땐 양 당이 0.73% 포인트 차였는데, 이번엔 10.48% 포인트 격차(민주당 41.88%, 국민의힘 52.36%)로 벌어졌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런데도 지방선거 패배 이후 민주당 내부엔 ‘더 강한 민주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대표적인 강경파인 김용민 의원은 지난 1일 지방선거 출구조사 발표 직후 “민주당은 개혁세력일 때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이를 잊지 않을 것이고, 쉬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고, 정청래 의원도 6일 “옥석을 구분해야 한다. 개혁파냐? 반개혁파냐?”고 썼다.
이런 흐름은 “강성 지지층에만 함몰돼 중도·부동층을 외면하거나 적대시하다 보니 선거 참패를 당했다”는 대다수 전문가 분석과는 정반대다. 그래서 ‘강경 일변도’ 전략으로 선거를 망친 민주당이, 패배 뒤에도 그에 화답하는 강성 지지층 목소리만 듣는 ‘반향실(에코 체임버·echo chamber)’에 갇혔다는 분석이 나왔다.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란
폐쇄된 커뮤니티에서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소통하면서 편향된 사고가 강화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으로부터 얻은 정보는 신뢰하고 전파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거부한다. 그 결과 같은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증폭한다.
‘중도층 연합’ 공식 잊은 민주…“핵심 지지층에 포획”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여 앞둔 1997년 11월 3일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좌)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대통령 후보 단일화에 대한 합의문에 서명한 후 합의각서를 교환하며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간 일대일 대결 선거에서 민주당 승리 공식은 ‘핵심 지지층과 무당층·중도층의 연합’이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DJP 연합으로 충청권을 묶어냈고, 2002년엔 노무현 대통령이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통해 중도층 우위를 확보했다.
지난 대선도 마찬가지였다. 이재명 후보는 찬반 대립이 심한 ‘검찰개혁’과 기본소득을 2선으로 물리고 성장론을 앞세워 윤석열 대통령과 접전을 벌였다. 김정(정치학)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대선 득표율은 민주당이 무당파 중도층을 최대로 동원한 수치”라며 “그 중 상당수가 이번엔 기권했다. 결국 민주당이 무당파층·중도층을 설득하지 못한 점이 패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민주당이 대선 패배 이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등 갈등지향적 이슈에 집중하면서, 대선 막판 고심 끝에 ‘기호 1번’에 투표했던 중도층이 등을 돌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은 “대선 출구조사를 보면 중도층에서 민주당이 이겼으나, 이후 ‘검수완박’ 같은 행보를 보이면서 이탈한 지지층을 복원하기는커녕 추가적인 이탈을 만들어냈다”며 “반면, 국민의힘은 5·18 기념식에 참석하는 등 중도 보수층에 뭔가 변한다는 신호를 줬다”고 말했다.
문제는 민주당이 이후에도 ‘강경 일변도’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신율(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전당대회를 앞둔 상태에서는 강성 지지층의 영향이 극대화된다”며 “내분이 격화될수록 강성층에 의존하는 모습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도 “민주당 강성 지지층은 진보적 가치에 입각한 정책보다, 상대방과 타협하지 않는 ‘적대적인 태도’ 자체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어 악순환 고리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며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식 대선 평가도 그런 맥락”이라고 말했다.
잘못 끼운 첫 단추…0.73%p도 패배인데 “졌잘싸”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3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우리는 정말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송영길 전 대표, 3월 10일 선대위 해단식)는 말로 대표되는 아전인수식 대선 평가는 지지층 이탈의 또 다른 이유로 거론된다. 박원호(정치학) 서울대 교수는 “대선에서 졌다면 최대한 대선과는 분리를 시키고 새로운 느낌과 어젠다를 갖고 선거를 치렀어야 하는데, 이번에도 대선과 똑같이 치렀다”고 지적했다.
실제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송 전 대표와 이재명 의원을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핵심 포스트에 세웠다. 대선 슬로건인 ‘유능한 일꾼론’도 재활용됐다. 이와 관련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민주당이 2007년 대선에서 패배했을 땐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친노는 폐족’이라고 할 정도로 자세를 낮췄는데, 이번엔 패배를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전면에 나섰다”며 “국민이 자연스럽게 응징한 것”이라고 말했다.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맞은편에 스스로를 '개딸(개혁의 딸)'로 지칭하는 이재명 의원 지지자들이 보내온 화환이 놓여있다. 김경록 기자
민주당이 대선 막판 자신들에 투표한 2030 여성층을 ‘개딸(개혁의 딸)’로 부르며 강성 지지층과 동일시 한 것도 오판(誤判)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 대선에서 2030 여성들의 투표 성향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반(反)페미니즘’ 캠페인에 맞선 비판적 지지 성격이 강했는데, 민주당이 이를 자신들에 대한 ‘묻지마 지지’로 잘못 간주했다는 것이다.
신진욱(사회학) 중앙대 교수는 “자신을 ‘개딸’로 지칭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검·언 개혁’만 외쳤을 뿐, 그간 2030 여성 진보층이 무게를 뒀던 젠더·인권·노동·복지 이슈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며 “두 그룹은 성격이 다른데, 민주당 주류는 외려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의 ‘단호한 성비위 대처’나 ‘민생 집중’ 요구에 반발하는 등 2030 여성층 요구에 역행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6·1 지방선거에서 20대 여성과 30대 여성의 지상파 3사(KBS·MBC·SBS) 출구조사 예측 투표율은 각각 35.8%와 41.9%로 대선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호남·제주 제외 완패…盧의 숙원 ‘동진’도 16년 만에 끝
한때 ‘20년 집권 전국정당’을 꿈꿨던 민주당 입장에선 호남과 제주를 제외한 13개 시·도 정당투표(광역의원)에서 패한 점이 뼈 아프다. 김동연 경기지사 당선인이 신승한 경기도에서도 민주당 정당득표율은 45.42%로 국민의힘(50.12%) 보다 5% 포인트가량 낮았다. 인천은 7.29%포인트, 서울은 13.01%포인트 국민의힘에 뒤졌다.
송철호 더불어민주당 울산시장 후보(왼쪽에서 세번째)가 지난 1일 오후 울산 중구 태화동 선거사무소에서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에 어두운 표정을 보이고 있다. PK지역 유일한 현직 광역단체장이던 송 후보가 낙선하면서 PK지역 광역단체장은 4년 만에 모두 국민의힘 소속으로 바뀌었다. 뉴스1
민주당 입장에선 노무현 대통령의 꿈이었던 ‘지역구도 타파’의 교두보였던 PK 지역에서 완패를 당한 점도 문제다. 민주당은 2018년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3명의 광역단체장을 배출했지만, 이번에 모두 크게 패했다. 이 지역 39곳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남해군수 1명만 당선됐다. 25명의 기초단체장을 배출했던 4년 전과는 정반대였다. 2010년 이후 한 번도 지지 않았던 김해시장 선거도 이번엔 14.59%포인트 차 대패를 당했다.
‘도로 호남당’이란 비아냥이 나왔지만, 호남마저도 안심할 수 없는 곳이 됐다. 국민의힘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약진했고, 기초단체장 선거에선 무소속 후보들이 곳곳에서 민주당과 박빙승부를 펼쳤다. 최병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부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생긴 부채의식에 근거한 ‘진보 결집’ 에너지가 소진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부·울·경 지역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부산에서 당선된 2012년 이전으로 되돌아갔다”고 분석했다.
오현석·윤지원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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