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 재테크 > 박정희와 박태준
- 경제개발 밑천이 없어 애가 탄 박정희, 미국-일본-서독으로...2014.09.02 (화)
- 1961년 11월 11일, 요즘 한국 젊은이들이 ‘빼빼로 데이’라 부르는 그날, 박정희가 통치자로서 최초 해외 순방에 나선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을 방문하는 길에 도쿄에 들러 일본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총리와 만..이대환
-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14)]
- 박정희와 박태준, "아들 6명이 6-25 때 전사했다"는 사기꾼에 속아...2014.08.28 (목)
-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엔간히 안정 기반을 다진 1961년 7월, 서울은 무더위에 갇혀 있었다. 그 여름의 어느 날, 비서실장 박태준은 가슴 아픈 사연을 들어야 했다. 함경북도 출신의 김 아무개 노인이 국군에 들어간 아들..이대환
- 박정희와 박태준, "아들 6명이 6-25 때 전사했다"는 사기꾼에 속아...2014.08.28 (목)
-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13)]
- 한심했던 한국경제…박정희, 박태준을 경제 분야에 전진배치2014.08.25 (월)
- 박정희는 호랑이 등에 완전히 올라탔다. 박태준도 그 뒤에 앉았다. 전진을 멈출 수도 스스로 내릴 수도 없는, 험난한 앞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는 실력이었다. ‘절망과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이대환
- 한심했던 한국경제…박정희, 박태준을 경제 분야에 전진배치2014.08.25 (월)
-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12)]
- 박정희 "내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면 자네에게..."2014.08.21 (목)
- 1961년 5월 16일 새벽, 박태준은 전투복 차림으로 군화 끈을 졸라맸다. 그리고 대문까지 배웅을 나온 아내에게 묵직하게 말했다.“지금 나가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소. 그럴 때는 아이들을 잘 부탁하오.” ..이대환
- 박정희 "내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면 자네에게..."2014.08.21 (목)
-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11)]
- 박정희 따라 대구 간 박태준, 신성일 집에서 하숙2014.08.20 (수)
- 이철승은 유효한 줄이었다. 박정희는 ‘군복을 벗어야 하는 위기’를 벗어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곧 서울을 떠나야 했다. 그것은 거사의 공간에서 멀리 벗어나야 하는 괴로운 노릇이었다. 1961년 1월 박태준은 귀국..이대환
- 박정희 따라 대구 간 박태준, 신성일 집에서 하숙2014.08.20 (수)
-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10)]
- 강제전역 위기에 몰린 박정희가 붙잡은 구명줄2014.08.18 (월)
- “광주로 같이 가자. 참모장을 맡아줘.”대취에서 깨어난 박정희의 제안에 담긴 의미를 박태준은 금세 알아차렸다. 최소한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신을 깊이 신뢰하고 있다는 것, 또 하나는 좌천당한 울분과 과음의 후유증 ..이대환
- 강제전역 위기에 몰린 박정희가 붙잡은 구명줄2014.08.18 (월)
-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9)]
- 박정희, 송요찬 계엄사령관에게 "부정선거의 책임을 지시라"2014.08.14 (목)
- 4·19의 신선한 기풍이 군부에도 쇄신 바람을 일으켰다. 군부는 변해야 했다. 박정희는 박태준을 비롯한 핵심참모와 숙의하고 드디어 과감한 행동에 나선다. 그것은 1960년 5월 2일 송요찬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에..이대환
- 박정희, 송요찬 계엄사령관에게 "부정선거의 책임을 지시라"2014.08.14 (목)
-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8)]
- 박정희와 박태준이 부산 동백섬에서 한 사나이간 맹세2014.08.11 (월)
- 부산군수기지사령부 관사는 동래 온천장 동네였다. 이른 봄날에 박정희는 술집의 일차를 마치면 얼큰한 술기운 속에서 곧잘 자기 관사로 참모들을 몰고 갔다. 대화도 노래도 참으로 편한 장소였다. 관사로 가자, 나를 따르라..이대환
- 박정희와 박태준이 부산 동백섬에서 한 사나이간 맹세2014.08.11 (월)
-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7)]
- 박정희, 참모들에게 "박태준을 술로 뻗게 하라"2014.08.06 (수)
- 1958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시가행진 부대를 지휘하여 25사단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박태준은 1959년 3월 육군본부 인사처리과장으로 부임하여 그해 8월 미국 연수를 다녀온다. 9월 17일 귀국. 자리는 그대로..이대환
- 박정희, 참모들에게 "박태준을 술로 뻗게 하라"2014.08.06 (수)
-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6)]
- 박태준, 가짜 고추가루 납품업자 얼굴에 권총을 겨누다2014.08.05 (화)
- 단 한 번, 박정희는 군대경력에서 박태준의 후배라는 기록을 남겼다. 육군대학이 그것이다. 1953년 11월 준장 진급 후 미국 육군 포병학교 고등군사반을 유학하고 광주포병학교 교장을 거쳐 5사단장으로 있던 박정희가 ..이대환
- 박태준, 가짜 고추가루 납품업자 얼굴에 권총을 겨누다2014.08.05 (화)
-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5)]
- 박정희의 주목을 받은 박태준의 수학 실력2014.07.29 (화)
- “……견딜 수 없는 바를 견디고 참을 수 없는 바를 참아갑시다.” 일본 왕 히로히토의 저 목소리가 라디오 전파에 실린 것은 1945년 8월 15일 정오였다. 이른바 ‘무조건 항복’ 선언. 이것을 박태준은 일본 산골의..이대환
- 박정희의 주목을 받은 박태준의 수학 실력2014.07.29 (화)
-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4)]
- 박정희가 재임 내내 박태준에게만은 독대 특혜를 준 사연2014.07.25 (금)
- 1968년 4월 1일. 이 만우절에는 한국 현대사가 기록할 두 가지 ‘특별한 기념식’이 열렸다. 장소는 대전과 서울. 대전의 것은 거창하고, 서울의 것은 조촐했다. 다만 시작이 조촐하다 해서 미래도 그래야 한다는 ..이대환
- 박정희가 재임 내내 박태준에게만은 독대 특혜를 준 사연2014.07.25 (금)
-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3)]
- 박정희가 박태준에게 마패를 준 까닭2014.07.21 (월)
- <프롤로그> 왜 위대한 만남인가?(下) 1917년에 태어나 1979년에 생을 마친 박정희, 1927년에 태어나 2011년에 생을 마친 박태준. 십 년 차이로 이 험난한 땅에 태어나 공동의 운명을 짊어지고 ..이대환
- 박정희가 박태준에게 마패를 준 까닭2014.07.21 (월)
-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2)]
- 박정희 "고향에서 국회의원 출마하라", 박태준은...2014.07.15 (화)
- <프롤로그> 왜 위대한 만남인가?(中) 정치냐 경제냐, 이 갈림길이 박태준의 눈앞에 나타난 때는 1963년 9월이었다. 1948년 남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강의실에서 스승과 제자로 처음 만난 박정희..이대환
- 박정희 "고향에서 국회의원 출마하라", 박태준은...2014.07.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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