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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물드는 속도로 여행을 탐하다

산야초 2015. 10. 18. 16:41

단풍이 물드는 속도로 여행을 탐하다

조선닷컴 미디어취재팀

10월 여행을 탐하다

단풍이 물드는 속도로 여행을 탐하다

 


지난 4월 당신도 떨어지는 벚꽃을 보았겠죠? 눈 깜짝할 사이 툭하고 지면에 닿는 동백과 달리, 벚꽃은 꽃잎이 얇아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뒤 허공에 머무는 동안을 우리가 잠시라도 바라볼 수 있지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는 얼마일까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만든 일본 애니메이션에 따르면 <초속 5cm>라고 하더군요. 벚나무는 꽃잎을 다 떨어뜨리고 나면 연둣빛 이파리를 냅니다. 그리곤 한 여름 내내 초록빛 그늘을 내리다가 10월이면 빨갛게 물이 들지요.

10월은 벚나무뿐만 아니라 단풍나무도, 은행나무도, 한반도의 수많은 활엽수들이 울긋불긋 물드는 계절입니다. 3개월 주기로 계절이 바뀌는 이 땅에서 10월은 가을의 절정기. 그래서 매년 기상청은 9월 중순이면 ‘산 정상에서부터 20%가 물든 시점’을 기준으로 한 ‘첫 단풍’ 예상시기를 발표하지요.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봄꽃과 반대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단풍. 대한민국에서 그 시작은 늘 설악산입니다. 대청, 중청, 소청, 공룡능선이 붉은 봉화대 마냥 타오른 후 온 산천으로 퍼져나가는 단풍의 물결. 근데 붉은 파도 같은 단풍이 퍼지는 속도는 얼마일까요?


단풍이 물드는 속도로 여행을 탐하다

 


단풍은 하루 20~25km씩 남하를 한다고 합니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시간당 약1km, 초로 환산하면 초당 약28cm씩 이동하는 셈이죠. 게다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동시에, 단풍은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산정에서 마을로 내려옵니다. 하루에 50m씩, 시간당 2m 씩 나뭇잎을 물들이지요. 그래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단풍이 물드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러나 온 나라가 황홀한 빛으로 물드는 10월에 한 자리에 앉아 그저 단풍이 오가는 모습을 바라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봄꽃과는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하는 이 땅의 가을을 보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이는데요.

봄이면 남도로 길을 떠나 광양의 매화, 산청의 산수유, 진해의 벚꽃과 조우한 후 ‘꽃 피는 속도’에 맞춰 봄을 따라 올라오곤 했습니다. 가을이 성큼 다가서니 이번엔 ‘단풍이 물드는 속도’에 맞춰 가을 따라 길을 떠나고 싶어집니다. 한 번에 너무 멀리는 말고, 하루에 딱 20~25킬로미터씩만. 며칠 전 설악산엔 이미 첫 단풍이 들었다죠? 이제 오대산, 치악산 거쳐 10월 중순 무렵이면 월악산까지 내려가겠군요. 그리고 다시 속리산, 계룡산, 내장산, 무등산 지나 한 달간의 긴 여정 끝에 10월 말이면 두륜산에 닿을 것입니다. 올해 기상청 발표를 보니 설악산에서 두륜산까지 단풍이 퍼지는 데는 정말 딱 한 달이 걸리더군요. 단풍을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따라갈 시간이 없다면 매주 단풍이 내려간 거리만큼 쫒아가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단풍이 물드는 속도로 여행을 탐하다

 


슬슬 단풍을 따라나설 채비를 해볼까요. 일단 설악산으로 길을 떠나야겠죠. 근데 설악산 단풍을 만나기 위해 전국에서 온 등산객들로 중청, 소청, 희운각, 양폭, 수렴동 대피소는 늘 만원이랍니다. 단풍으로 물든 숲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저녁놀에 물드는 모습까지 고스란히 다 보고픈데, 설악산 대피소 예약은 이미 다 끝나버렸으니 어쩌면 좋을까요. 물론 산 아래 펜션, 모텔, 민박 등등 숙박업소의 방들은 남아있을테죠.


그러나, 깊은 산속에서 단풍의 아침을 맞이하는 기분만 할까요? 그럴 때면 인제군 용대자연휴양림으로 갑니다. 설악산 자락 숙박지만 찾는 이들에겐 보이지 않는 맹점(盲點) 같은 곳입니다. 백담사주차장에서 5~6킬로미터, 차로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공식적으론 매봉산 소재 자연휴양림이기 때문이죠. 용대자연휴양림은 백담사에서 가장 가까운 자연휴양림이라 설악산 단풍구경의 베이스캠프로 삼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2013년 산림청이 엄선한 ‘단풍이 아름다운 자연휴양림 6곳’에 선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단풍이 물드는 속도로 여행을 탐하다

 


백담계곡에서 내려와 오대산으로 접어듭니다. 단풍 물든 산도 좋지만 단풍으로 물든 길을 달리는 것도 매혹적인 경험입니다. 번잡한 대로에서 빠져나와 부연동길로 들어섭니다. 굽이굽이 사람들 오가지 않는 외길 따라 ‘하늘 아래 첫 동네’ 부연동 마을로 가는 길은 정말 황홀, 그 자체입니다. 폭 넓지 않은 길을 따라 유화물감을 뿌려놓은 듯 강렬한 단풍이 터널을 이루며 끝없이 이어집니다. 빼곡히 물든 단풍 때문에 눈이 시릴 정도죠. 부연동 산촌체험마을 앞 야영장 앞을 흐르는 부연천, 물길 위로도 단풍 그림자 환하게 내려앉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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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소백산까지 물들일 때면 단양군 가곡면의 보발재를 지나갈 차례입니다. 단양 인근 사람 아니면 낯선 이름의 고갯길일지도 모르겠지만,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랍니다. 남천계곡에서 구인사 지나 향산리 삼층석탑에 이르는 보발재(고드너머재)를 넘다보면 자꾸만 속도를 늦추게 됩니다. 아름다운 단풍길을 몇 분이라도 더 보고 싶기 때문이죠. 단풍나무 가로수가 1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길에서 가을을 다시 만나려면 또 한 해를 기다려야 한다는 아쉬움 때문에, 같은 길을 한 번 더, 한번만 더, 그러다 세 번을 오가기도 했답니다.

단풍이 물드는 속도로 여행을 탐하다


 

소백산을 지날 무렵이면 남도에서 가장 먼저 단풍이 물드는 지리산이 붉은 치맛자락을 넓게 드리웠을 테죠? 천왕봉, 반야봉, 형제봉, 노고단에서 물밀듯이 아래로 내려오는 단풍. 나뭇잎도, 물에 비친 산색도,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얼굴도 빨갛게 변한다고 해서 삼홍소(三紅沼)라 불리는 피아골 계곡에 앉아 있노라면 내 살갗도 붉게 물들 테지요.

 


단풍이 물드는 속도로 여행을 탐하다

 


가을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단풍길을 미리 상상하다가 문득, 10월의 당신을 떠올립니다. 당신 생각에 나도 모르게 볼이 발갛게 물들고. 지리산에서 내려선 단풍이 수많은 능선과 마을, 강물과 개울을 지나 땅끝까지 퍼지듯 나도 발갛게 물든 이대로 당신에게 닿고 싶습니다. 초속 28cm.


여행작가 노동효

글·사진 제공 에스제이진 (http://www.sj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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