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가회동 소담떡방 vs 삼성동 자이소

산야초 2016. 3. 14. 19:07

[두 집안 젊은 형제들의 떡대결] 아버지의 비밀 레시피 삼형제가 훔치다

가회동 소담떡방 vs 삼성동 자이소 

김민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서울에 형제 떡카페 두 곳이 있다. 종로구 가회동의 ‘소담떡방’과 강남구 삼성동의 ‘자이소’이다. 주인들 나이? 젊다. 떡집 형제들의 평균 나이는 30세다. ‘소담떡방’이 예스러운 정취의 공간에서 전통 떡을 고집스레 선보인다면, ‘자이소’는 현대식 인테리어로 무장하고 퓨전 떡케이크 위주로 공략한다. 좋은 재료를 가지고 입에 착착 감기는 떡을 내놓는 젊은 형제들의 떡카페에 젊은층과 외국인 등 새로운 고객층이 몰리고 있다. 두 떡카페의 추석 준비 현장을 찾아갔다.
       
거친 나무 대문에 둥근 쇠 손잡이가 달린 ‘소담떡방’의 문은 잠겨 있었다. 지난 9월 9일 오전 10시 최대로(31) 대표는 약속시간보다 10여분 늦게 헐레벌떡 나타났다. 추석 대목이라 주문이 밀려서 늦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마포구 망원동에서 가족이 운영하는 떡집 ‘경기떡집’에서 갓 쪄내 가져온 따끈한 떡들을 차 트렁크에서 내리는 최 대표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떡카페 ‘소담떡방’에서 이날 손님들에게 판매할 제품들이었다. 떡집 형제들의 하루는 이미 전날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새벽 4시에 출근했는데 동생들은 어젯밤 11시에 출근했죠. 추석 전주부터 완전 비상이에요. 잠이요? 하루 2~3시간 정도? 다음주가 더 바빠요. 추석(19일)까지는 이 모드로 갈 것 같아요. 추석 때는 뭐니뭐니 해도 송편과 제사용 절편이 가장 많이 팔리죠. 추석 대목에는 하루 평균 4000~5000㎏ 정도의 떡을 만들어요.”
   
   망원동의 ‘경기떡집’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떡집 명소다. 1969년부터 떡을 만들어온 최길선·김영애 부부가 운영하는 집이다. 이들의 셋째 아들 최대한(26), 막내아들 최대웅(24)에 이어 2년 전 큰아들 최대로(31)까지 합류했다. 특히 최연소 떡명장 배출 떡집이 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작년에 경기도와 경기농림진흥재단이 주최하는 떡명장 선발대회에 셋째 최대한씨가 떡명장에 뽑혔다. 40~60대 일색이던 떡명장의 세계에 새롭게 탄생한 20대 떡명장에 업계는 흥분했다. 10대 때부터 일찌감치 아버지의 뒤를 잇기로 결심하고 손기술을 익힌 그의 우직함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많았다.
   
지난해 4월에 문을 연 떡카페 ‘소담떡방’은 아버지의 꿈을 아들 삼형제가 구현한 공간이다. 아버지의 비밀 레시피 노트를 발견한 큰아들 대로씨는 눈이 번쩍 뜨였다. 아버지가 만들고 싶은 떡을 하나하나 적어놓은 레시피. 비밀 레시피는 아버지의 소망이자 미래였다. 재료 선별에 대한 기준이 유독 까다로운 아버지의 떡에 대한 철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러나 대부분은 구현되지 못했다. 당시 경기떡집의 시스템으로 만들어봐야 적자가 불보듯 뻔하고 판매 루트도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떡카페였다.
   
   삼형제는 “아버지가 만들고 싶으신 떡, 저희가 제값 받고 팔아보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소담떡방은 그렇게 탄생했다. 단호박소담떡, 검은콩현미떡, 콩영양찰떡을 비롯해 소담떡방에서 파는 떡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최고급 재료만 쓴다고 한다. 최대로 대표는 “쌀은 ‘김포 금쌀’로 알려진 고시히카리, 밤은 공주밤, 잣은 가평잣, 검은콩은 영주 서리태만 쓴다”고 말했다. 쌀의 경우 여주 이천쌀, 철원 오대미 등도 시도해 봤으나 너무 차지지도 퍼석거리지도 않아야 하는 떡의 식감상 김포 고시히카리를 낙점했다고 한다.
   
   소담떡방 최고의 인기 떡은 최대한씨가 떡명장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단호박소담떡. 생단호박과 호두, 완두를 넣어 저온숙성해 만든다. 이 떡은 ‘맛의 균형’의 진수다. 너무 달지도 너무 밋밋하지도 않으면서, 너무 쫀득하지도 퍼석하지도 않다. 튀는 맛 없이 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북촌한옥마을을 찾는 외국인 중에는 입소문을 듣고 찾는 이들이 꽤 있다. 일본인과 중국인이 가장 많고 오스트리아·헝가리·폴란드·네덜란드인 등 많은 외국인이 다녀갔다. 외국인들은 꿀떡을 특히 좋아한다고 한다.
   
   떡집 삼형제의 역할 분담은 분명하다. 첫째 대로씨는 떡카페 소담떡방을 도맡아 운영하면서 경영과 마케팅을 담당하고, 아버지의 손맛을 이어받은 셋째 대한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기떡집의 떡맛을 우직하게 지켜내고, 막내 대웅씨는 대한씨가 놓치고 가는 세세한 일들을 담당한다. 대로씨는 “셋째는 걸음걸이까지 아버지와 똑같을 정도로 아버지 판박이이고, 막내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어머니를 꼭 빼닮았다”고 했다. 셋째와 막내는 일찌감치 아버지의 뒤를 이었지만, 첫째는 2년 전에 뒤늦게 합류했다. 큰아들 대로씨가 떡을 하겠다고 했을 때 온 가족이 반대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대로씨가 가업에 뛰어들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하나같이 말렸다. “떡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형은 의지가 약한 편이니 힘들 거다”라며 떡판 선배인 동생들이 특히 말렸다. 대로씨는 포기하지 않고 1년간 피땀어린 노력과 설득 끝에 가족의 동의를 받아냈다. “나도 떡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동생들 밑에서 설거지, 음식쓰레기 버리기, 청소, 배달 등 잡일을 1년간 묵묵히 해 낸 끝에 인정을 받았다. 대로씨는 “추석 때 일하다 쓰러진 적도 있다”며 웃는다. 형제 중 둘째는 떡과는 무관하게 대림산업에 근무한다.
   

   성격도, 역할도 제각각인 삼형제는 떡에 대한 철학에서는 일치한다. 전통을 복원하고 지키고 싶다는 것. 최대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떡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은 두 종류다. 생업을 위해 종사하시는 분과 연구하시는 분. 연구자들은 기술이 없고, 기술이 있는 분들은 연구를 안 한다. 우리는 기술이 있고 어리니까 대한민국의 사라져가는 전통 떡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전통 떡을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하는 게 아니라 100%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전통 떡 중에는 분명히 외국인과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꽤 있다. 최근에 우리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전통주 삼해주를 가지고 콜라보로 만든 ‘삼해인삼주악’이 한 예다. 남녀노소, 국적불문 다 좋아하셨다. 이런 것들을 발굴해서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 떡 한류를 만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