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애의 Hola Cuba] ⑩ 시간이 멈춘 도시, 뜨리니다드
중앙일보 입력 2016.04.05. 00:04 수정 2016.04.21. 09:34
예부터 쿠바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주인공은 사탕수수다. 쿠바는 사탕수수로 설탕과 럼(Rum)을 만들어 세계 각지로 수출했다. 사탕수수 농업이 가장 호황을 누리던 건 18~19세기다. 그 시절의 풍요로운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가 있다. 바로 해안도시 뜨리니다드(Trinidad)다. 수도 아바나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이곳에서는 밤마다 야외 공연장에 수백 명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음악과 춤을 즐긴다. 근사한 레스토랑, 아기자기한 골목길, 도심 외곽의 아름다운 자연과 공원 등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매력이 넘쳐난다.
19세기 사탕수수 농장의 흔적
뜨리니다드는 쿠바에서 자동차로 약 6시간 거리에 있다. 쌍끄띠 스삐리뚜스(Sancti Spíritus)주에 속한 작은 도시로, 쿠바 섬 중부에 위치하고 남쪽으로 카리브 해를 바라보고 있다. 1514년에 건설된 유서 깊은 도시다. 스페인에서 건너온 쿠바 초대 총독 ‘디에고 벨라스케스 데 께야르(Diego Velázquez de Cuéllar)’가 도시를 세웠다. 그리고 설탕 수출이 호황을 이루면서 뜨리니다드는 도시로서,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뜨리니다드의 골목은 앙증맞고 예쁘다. 색색의 식민지풍 주택이 울퉁불퉁한 길과 어우러진다. 한적한 길을 따라 박물관, 전망대, 레스토랑 그리고 갤러리가 늘어서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19세기를 걷는 느낌이 든다.
옛 사탕수수 농장 지대를 만나려면 도시 밖으로 나가야 한다. 바로 뜨리니다드 동쪽 8㎞ 거리에 있는 로스 잉헤니오스 계곡(Valle de los Ingenios) 지역이다. 1988년 뜨리니다드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오전 10시, 하루 한 번 운행하는 관광열차를 타고 잉헤니오스로 출발했다.
기차는 1시간 뒤 ‘마나까 이스나가(Manaca Iznaga)’에 멈춰섰다. 대부호 뻬드로 이스나가가 1795년에 지은 저택과 높은 탑이 보였다. 높이 44m에 달하는 탑에 올랐다. 좁고 낡은 나무 계단은 발을 옮길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만만하게 봤는데 계단을 오를수록 오금이 저렸다. 꼭대기에 올라 내려다본 풍경은 장관이었다. 지금은 푸른 벌판에 듬성듬성 주택이 들어서 있지만 오래 전에는 사탕수수가 빽빽히 들어선 농장지대였다고 한다.
이 높은 탑은 농장에서 일하던 노예를 감시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현재 탑 입구에는 기념품과 옷을 파는 노점이 줄지어 있다. 상인 대부분은 옛 농장 노예의 후손일 것이다.
매일 밤 파티가 열리는 언덕
여행자들이 뜨리니다드에서 반드시 경험해봐야 하는 것은 매일 밤 벌어지는 살사 파티다. 파티는 뜨리니다드 곳곳에서 펼쳐지지만 이왕이면 유명한 술집 ‘까사 데 라 뮤시카(Casa de La Musica)’를 찾아가보자. 까사 데 라 뮤시카는 스페인어로 ‘음악의 집’이란 뜻으로, 마요르 광장(Plaza Mayor) 북동쪽 언덕으로 조금만 오르면 된다. 매일 오후 8시부터 11시까지 라이브 음악과 룸바 공연(아프리칸 흑인 노예들의 전통 춤)이 펼쳐진다.
저녁식사를 마친 여행자들은 밤이면 이곳으로 모여 계단을 가득 메운다. 라이브 밴드의 음악과 함께 흥겨운 파티가 시작된다. 작은 무대에서 라이브 연주와 룸바 공연이 펼쳐지고 무대 앞 작은 공간에서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여행자들이 춤판을 벌인다.
뜨리니다드가 품은 또 하나의 매력은 아름다운 카리브해를 끼고 있다는 것이다. 도심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앙콘 해변(Playa Ancon)이 특히 아름답다.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택시 혹은 투어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시설이 좋거나 즐길 거리가 많은 것은 아니다. 그저 자연 그대로의 바다와 식당 한두개, 아담한 해양 레포츠숍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곳은 뜨리니다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행지다. 특히 가난한 여행자에겐 더욱 그렇다. 하루 종일 썬 베드를 빌려도 2페소(2달러)면 충분하다. 바다에 은비늘이 반짝이고 저무는 해가 바다를 물들이는 시간, 앙콘 해변은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빨간 태양이 바다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발길을 떼지 못했던 그날이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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