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
제주도 토평동 <동성식당>
착한 가격의 은갈치조림 백반으로 출발
이번 제주행은 업무가 아닌 순수한 여행이었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가능한 한 아내와 좀 더 많은 여행을 다니고 싶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집을 나섰다. 제주도 맛집과 일정을 미리 검색도 하고 수소문해야 했지만 일에 치여서 거의 조사를 못했다. 현지에서 즉흥적으로 찾아보기로 하고 떠났다.
요즘 제주도 음식점도 인터넷에 홍보성 콘텐츠가 워낙 많아 옥석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첫 일정으로 성산 일출봉에 갔는데 아내가 우선 밥부터 먹자고 했다.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각이었지만 성산읍 근처의 갈치조림이 괜찮다는 곳을 찾아갔다. 그러나 영업시간이 벌써 종료되어서 어쩔 수 없이 성산 일출봉 방향으로 가는데 식당 입간판이 하나 보였다. ‘칼치조림 7000원’이라는 문구가 눈에 쏙 들어왔다.
가격에 혹해서 식당으로 들어갔다. <부촌식당>(064-784-0149)이라는 곳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집을 선택하길 잘했다. 가격도 부담 없지만 갈치조림이 맛깔스럽고 반찬도 정갈했다. 여러 가지 메뉴가 있지만 일부러 가장 저렴한 7000원짜리 갈치조림을 먹었다. 제주도 은갈치로, 서울 남대문의 조미료 범벅 갈치조림보다 필자 입맛에는 훨씬 나았다. 이번 제주도 여행 2박 3일 중 가장 괜찮은 곳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다음날 서귀포항 근처에서 아침을 먹은 곳은 실패한 사례다. 원래 호텔 조식뷔페를 먹을 생각이었지만 제주도까지 왔으니 제주도다운 음식을 먹는 것이 정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서귀포항으로 차를 몰았다. 아침 일찍 문을 연 곳이 눈에 띠어 들어갔다.
단체 관광객이 식사를 끝내고 가게 문을 나섰다. 이 때 필자가 약간 방심했다. 이런 식당은 제주도 현지 사람보다 관광객을 중심으로 영업을 하는 곳이다. 사실 이 식당 음식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맛은 깔끔하고 양호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1만3000원짜리 성게미역국을 주문했다. 반찬 몇 가지와 미역국에 성게가 조금 들어간 정도였다. 시원하고 개운한 맛은 좋았지만 아내는 먹으면서 연신 투덜거렸다. 아내는 알뜰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매우 민감하다.
어느 30대 젊은 여성 두 명이 들어왔다. 3만 원짜리 갈치조림(작은 것)을 주문하면서 국물도 먹겠다고 성게 미역국까지 주문했다. 2인의 아침 한 끼 식대로는 너무 비싼 4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다. 전날 성산읍의 식당에서는 성게국 정식이 1인분 1만원으로, 성게국과 갈치조림을 같이 제공했다. 물론 성게와 갈치의 양과 질을 감안해야겠지만 절대 가격에서 두 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서귀포항 식당을 재방문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반대로 성산읍 <부촌식당>은 그 근처를 가면 재방문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10년 전 어느 탤런트가 운영하는 대박 고깃집을 취재한 적이 있다. 탤런트이자 식당주인의 운영방침은 ‘가격부담을 낮춰 고객이 자주 방문하는 식당’이다.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당시 그 고깃집은 영업이 잘 되었다. 지금도 운영을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요즘은 예전보다 영업이 덜 되는 걸로 소문이 들린다. 워낙 음식점 영업이 치열하다 보니 시대에 뒤떨어지는 경향도 있다.
가격도 맛도 부담 없는 제주도 생고기 두루치기집
제주도에 가기 전, 지인에게 미리 정보를 듣고 유일하게 방문한 곳이 있다. 서귀포 토평동 <동성식당>이다. 저녁 때 방문했는데 한적한 곳이지만 손님이 많았다. 원래 현지 제주도민이 많이 오는 곳인데 인터넷에 알려지고 나서 외지인 비중도 늘어났다. 여기를 소개해준 지인은 요리 전문가로 입맛이 아주 예리하다. 특히 조미료에 관해서는 귀신같은 감별력을 가졌다. 역으로 말하면 좀 덜 대중적인 입맛의 소유자다. 하지만 보통사람보다 훨씬 발달한 절대 미각이 있기 때문에 그의 추천은 믿음이 간다.
더욱 마음에 든 것은 가격(5000원)인데 메뉴판을 보니 인상되었다. 나중에 계산할 때 물어보니 올해 들어 1000원씩 인상했다고 한다. 5000원이었다면 정말 착한 가격이었을 텐데 좀 아쉬웠다. 우리 부부는 두루치기 2인분과 공깃밥, 고기국수(5000원)도 주문했다. 두루치기에는 당연히 밥이 맞지만 제주도 현지의 고기국수 맛도 보고 싶었다.
테이블 위 불판에 생고기 돼지고기와 감자, 고추, 마늘과 육수가 올라간다. 자박자박한 육수가 끓으면서 고기와 채소 등이 익기 시작한다. 마침 고기국수가 나왔다. 국수 위에 돼지고기가 듬성듬성 들어갔고 고춧가루를 잔뜩 뿌렸다. 약간은 투박한 모양새지만 양이 일단 푸짐했다. 국물이 지나치게 진하지 않고 적당히 맑은 맛이 났다.
그에 반해 이집 고기국수의 적당한 지방 농도가 우리 입맛에는 딱 맞았다. 두루치기 고기가 적당히 익었을 때 파와 콩나물, 무채 등을 따로 넣어서 가열하기 시작한다. 역시 양념 맛도 진하지 않다. 달지 않고 맵지 않고 짜지 않아서 좋다. 특히 파가 입맛을 돋운다. 돼지고기에는 역시 파가 잘 맞는 식재료다.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삼겹살 등을 판매하지만 손님들은 거의 두루치기를 주문해서 먹는다. 대체로 돼지고기 두루치기는 칼칼하고 진한 맛이지만 이 식당에서는 그런 진한 맛을 최소화했다. 은근한 양념 맛이 질리지 않아서 좋다. 제주도 돼지고기답게 육질이 쫀득하다. 삼겹살 등 선호 부위가 들어가진 않았지만 이런 두루치기에는 밥을 볶아서 먹는 것이 정답이다. 하지만 고기국수도 먹고 아내가 마련한 시장 주전부리로 배가 불러서 포기했다.
직업적 본능이 작동했다. 이 식당의 두루치기 메뉴를 점심 매출 부진 때문에 고민하는 돼지고기 전문점의 식사 메뉴로 적용하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다 마치고 계산을 하니 카운터 옆에 귤이 든 박스가 있었다. 손님이 디저트로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아내가 귤을 3개나 집었다. 이날 저녁 식사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지출 (2인 기준) 두루치기(6000원x2= 1만 2000원)+ 공기밥(1000원)+고기국수(5000원)+ 소주 3000원= 2만 1000원
<동성식당> 제주도 서귀포시 토평남로 109 064-733-6874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콘텐츠 개발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외식 기획자다.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는 저렴하면서 인심 훈훈한 서민 음식점을 사전 취재 없이 일상적인 형식으로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