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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고깃집서 샹송 들으며 전복삼합에 진양주를 마시다

산야초 2016. 8. 19. 23:26

명동 고깃집서 샹송 들으며 전복삼합에 진양주를 마시다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
서울 명동 <육미찬가>

낭만의 명동에 퍼진 사랑의 찬가, 육미찬가


토요일의 명동은 번잡했다. 젊은 날 1980년대 명동에서 많은 추억이 있었다. 87년 6월 항쟁의 함성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토요일이라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중국인 관광객 목소리가 유달리 많이 들린다. 얼마 전 명동 외진 곳에서 <육미찬가>라는 고깃집이 문을 열었다. 주인장의 고향이 광주여서 점포 콘셉트를 남도풍 고깃집으로 정했다고 한다. 육미찬가(肉味讚歌), 이 상호는 프랑스 국민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불멸의 명곡 '사랑의 찬가'에서 착안했다는 것이다. 50년대와 60년대 명동의 문인들은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유독 좋아했다. 당시 명동은 가난했지만 문화와 낭만이 넘쳤다.


우리 위의 푸른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무너진다고 해도
당신이 날 사랑한다면
무슨 상관있겠어요

아침마다 사랑이 넘쳐흐르고
당신 손길에 내 몸이 떨리는 한
아무런 문제없어요
내 사랑, 당신이 날 사랑하는 한
난 세상 끝까지라도 가겠어요

꼬디아르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 에디트 피아프가 연인인 마르셀 세르당이 비행기 사고로 죽고 나서 연인을 애도하는 곡으로 만들었던 노래다. ‘라비앙 로즈’는 격정의 여인 에디트 피아프의 생애를 다룬 2007년 작 영화다. 에디트 피아프역을 맡은 마리옹 꼬디아르는 외모도 되고 연기도 뛰어난 보석 같은 배우다.

점포 내 포스터를 보니 남도 음식 일색이었다. 전남 곡성에서 공수한 남도 김치, 돼지고기는 청정지역 지리산 흑돼지, 전남 완도산 전복, 여수 돌산 갓김치 등이 포진했다. 이 식당의 주력 메뉴는 전복삼합이라고 한다. 전복구이와 흑돼지 그리고 김치로 구성된 3중주 같은 먹을 거리다.

필자는 약간 무리해서 흑돼지삼겹살과 전복을 주문했다. 김치부터 나왔다. 김치는 남도김치답게 양념이 진했다. 전남 곡성산 김치인데 무슨 김치 콘테스트에서 상을 받았다고 한다. 갓김치도 톡 쏘는 제대로 된 갓을 썼다. 백김치도 있다. 남도김치, 백김치, 갓김치로 이어지는 김치 3총사다. 필자는 ‘돼지고기 브랜드육 육류아카데미’ 강연에서 “삼겹살집에서 김치가 맛있으면 30% 정도는 강점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풍미가 진한 남도김치를 갖췄기 때문에 우선 30점의 점수를 줬다.

술은 전통주인 진양주를 선택했다. 전남 해남의 가양주로 부드럽고 순한 맛이다. 1만원으로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이 딱 마음에 들었다. 요즘 손님의 식당 선택에서 가성비는 가장 중요한 화두이기 때문이다.

삼겹살과 전복

남도의 맛 전복삼합과 진양주

삼겹살과 전복을 불판에 올렸다. <육미찬가>는 삼겹살 등 구이를 직화구이로 제공한다. 흑돼지답게 쫄깃하고 진한 맛이 있다. 전복과 삼겹살이 동시에 익었다. 2011년 서울시에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약 2000명을 대상으로 한식 선호도를 조사했다. 그때 1등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의외의 결과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 이것은 충분히 논리적 근거가 있다. 우선 삼겹살을 판매하는 식당이 많기 때문이고 최근 급증하고 있는 중국인 관광객의 기호에 부합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명동에서 맛있는 삼겹살을 주력 메뉴로 정한 것은 현명한 판단이다.

이 집은 흑돼지 삼겹살을 참숯 직화로 굽는다. 불맛 나는 쫄깃한 흑돼지 삼겹살은 당연히 맛있다. 일반 백돼지와 달리 흑돼지는 맛의 차원이 다르다. 삼겹살은 원육이 좋으면 노릇노릇 구워지는 특성이 있다. 흑돼지 삼겹살도 역시 노릇노릇 구워졌다. 일반 돼지와 대비해 흑돼지는 육질 내 적색근섬유수 비율이 높다. 근섬유 조직이 더 발달했다. 그래서 흑돼지는 무엇보다 풍미가 고소하다.

구워진 삼겹살과 전복
삼겹살과 전복이 동시에 익었다. 불맛이 있는 쫄깃한 흑돼지 삼겹살은 전복구이를 곁들여서 백김치에 돌돌 말아서 먹었다. 이른바 이 식당에서 강조하는 ‘전복삼합’이다. 삼겹살과 전복을 갓김치에도 싸서 먹었다. 복합적인 맛이었다. 홍어삼합보다는 필자의 입맛에는 분명히 잘 맞는다. 둘 다 남도의 풍미였지만. 좀 더 도시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된 음식인 것 같다. 전복삼합에 진양주를 곁들이니 그야말로 남도음식의 완성체다. 진양주는 13도 내외의 순한 술인데 단맛과 부드러움이 있어 대부분 편안하게 마신다. 여러 번 마신 적이 있지만 부담이 없는 것이 강점이다. 전통주 중에서 대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드문 가양주다. <육미찬가>는 이 진양주의 가격이 헐해서 일부러 다시 올 것 같다.

퓨전 음식에 남도 정취 '징허게' 살려

김치와 전복 그리고 흑돼지 모두 남도의 식재료다. 실내에는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가 연속으로 흐른다. 고깃집에서 샹송이 흐르는 것도 명동다운 낭만이 있다. 한적한 곳이라 오붓해서 좋다. 마무리도 역시 전복냉면으로 선택했다. 양념 소스를 면과 전복에 부어서 먹는 것이다. 닭갈비집이나 보쌈집 등의 쟁반막국수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맛은 다르다. 전복을 넣었지만 새콤한 겨자 풍미의 퓨전냉면이다. 남도의 맛보다는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만든 메뉴인 것 같다. 그러나 맛은 산뜻하니 괜찮다. 후식으로도 좋지만 식사로도 양이 충분하다. 전복냉면은 여성들이 좀 더 좋아할 맛과 구성이다. 단 소스는 좀 더 흥건하게 부었으면 좋을 것 같다.

전복 냉면과 전복장
우리 일행의 진정한 마무리는 전복장이다. 두 마리를 주문해서 각각 한 마리를 한 입에 쓱 집어 먹었다. 전복구이보다 오히려 전복장이 더 전복 고유의 풍미를 잘 살리는 것 같다. 노년 부부가 다정하게 낙지전골을 먹고 있었다. 저 양반들은 이 명동에서 어떤 추억을 만들었고 간직했을까? 가을 노래 '세월이 가면'은 1950년대 명동의 주점 <은성>에서 탄생했다. 박인환의 시에 불문학자 이진섭이 즉흥적으로 선율을 붙인 노래다. 1970년대 불문학 전공자 박인희의 노래로 재탄생되었다. 명동이 번잡하고 철저히 상업화되었지만 그래도 이런 정서가 약간이라도 남아 있는 것 같아 반가웠다.

다음 약속이 있어서 진양주를 한 병으로 끝낸 것이 못내 아쉬웠다. 주당인 아닌 필자의 주량으로도 진양주는 마냥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이었다. 한가한 평일 날 방문해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들으면서 낮술로 진양주를 실컷 마시고 싶다. 라비앙 로즈나 박인환의 감성적 허무를 추억하는 것도 이곳이 명동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젊은 시절 명동에서 아련한 추억이 아직도 켜켜이 싸여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 시간이 있을까!
지출 (2인 기준) 흑돼지삼겹살 1인분 1만 2000원 × 2인분= 2만 4000원+ 전복 4마리 2만원+ 전복냉면(2인분) 1만원+ 진양주 1만원+ 전복장 2마리 1만원= 7만 4000원
<육미찬가> 서울 중구 명동 2가 1-21, 02-735-9292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콘텐츠 개발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외식콘셉트 기획자다.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는 저렴하면서 인심 훈훈한 서민스러운 음식점을 사전 취재 없이 일상적인 형식으로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