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전쟁 첫 결실… ‘비정상의 정상화’ 박차
기사입력 2013-12-31 03:00:00 기사수정 2013-12-31 08:56:50
[철도파업 철회/공공기관 이대로는
안된다]
<1>힘 실린 朴정부 공공개혁
《 ‘공공기관 개혁’은 역대 정부가 새로 들어설 때마다 기치를 높였다가 노조의 반발
등에 부닥쳐 결국 구호로 끝난 해묵은 한국사회의 화두다. 박근혜 정부도 최근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내놓았지만 철도노조가 파업을 하며 내세운
‘민영화 프레임’에 걸려 고전해야 했다. 철도파업 종료를 계기로 공공기관 개혁을 강도 높게 밀어붙이려는 세력과 이에 저항하려는 세력 사이에
‘가치 전쟁(value war)’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동아일보는 공공기관 개혁이 왜 필요한지, 또 달성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3회
시리즈로 진단한다. 》
“새해에는 모든 비정상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30일 철도노조의 파업 철회 소식이 전해진 직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내년에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계속 추진할 것을 강조했다. 철도노조의 파업에 맞선 ‘가치 전쟁’에서 얻어낸 첫 결실을 이어 나가겠다는 자신감의 피력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한국이 지향해야 할 ‘일류국가’에 대한 언급과 함께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국격(國格)을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파업 초반에 정부의 미숙한 대응이 혼선을 초래했지만 청와대의 전반적인 기류는 “원칙의 승리”라는 반응이다.
○ 비정상의 정상화 첫 결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북한, 국회, 기업 등의 관계에 있어 기존의 불합리한 관행을 깨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5월 원자력발전소 부품 비리가 터지자 ‘비정상의 정상화’를 본격적인 모토로 삼았다.
박 대통령은 11월 국회 시정연설 때 4대 국정기조와 별도로 공공부문 개혁 의지를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때 ‘철도시설’을 원전, 방위사업, 문화재 분야와 함께 비정상의 정상화의 4가지 예 중 하나로 들면서 “각 분야의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비리를 반드시 척결하겠다. 공공부문 개혁으로 솔선수범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4가지 과제 중 원전과 방위산업, 문화재 분야는 큰 저항 없이 진행됐지만 철도 문제는 강력한 저항에 부닥쳤다. 파업사태 초기 “민영화는 아니다”라며 수세적인 방어에 집중했던 박근혜 정부는 노조가 대화를 거부하고 장기파업 태세에 들어가자 강력한 대응에 나섰다. 청와대 내에서는 타협 거부에 그치지 않고 부당한 기득권 세력과의 전면전도 불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었다.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개혁, 악성 부채와 적자 해소를 개혁의 양대 축으로 삼았다. 직원들의 자동 승진을 보장하는 등의 과도한 복지, 그러면서도 매년 5000억∼7000억 원의 적자를 내는 코레일은 ‘시범케이스’로 딱 적합한 사례였다. 명분에서 앞서 있다고 판단한 박근혜 정부는 본격적인 가치 전쟁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타협이 아닌 ‘국민’을 위해 원칙을 지켜야 할 문제라고 판단한 ‘가치 전쟁’에서는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이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위협했을 때 우리 근로자를 모두 철수시킨 것, 일본이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진전된 조치 없이 언론과 국제사회를 통해 정상회담의 압박을 가해 왔을 때 끝까지 버틴 사례도 이른바 ‘가치 전쟁’으로 볼 수 있는 사례다.
○ 노사정 대타협 행보 탄력 받나
박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에서 국민 세금을 줄이고 만성적 부채에서 벗어나서 경쟁력을 갖추려는 것까지 발목을 잡혀서는 안 된다. 이것은 국가경제를 볼모로 개인의 이득을 앞세우는 것으로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공공기관 정상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노조의 강력한 저항이었다. 하지만 이번 철도노조 파업 과정에서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이 적나라하게 공개됐고, 경쟁을 거부한 채 ‘철밥통’을 지키려는 구태가 드러나면서 노조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게다가 “국민의 불편을 볼모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노조의 태도에는 절대 타협은 없다”는 박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실천되면서 앞으로 노조가 정당한 명분 없는 파업에 나서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공공기관 개혁을 추진하는 강도와 속도에 한결 힘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청와대는 이번 해결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국회의 여야 합의를 수용하는 형태로 마무리를 지은 것도 좋은 선례를 남긴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시정연설에서 “국회가 여야로 합의를 해 온다면 국민의 뜻으로 알고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동안 정치 현안이 터지면 대통령만 쳐다보고 대통령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관행이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집권 2년차 ‘신뢰와 원칙’ 외에 국민 통합과 노사정 대타협 행보도 가속화할 예정이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많은 사람이 이렇게 강 대 강으로 부닥치면 향후 노사 문제를 풀기가 어려워질 거라고 우려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노조가 상식선에서 대화에 나선다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대화가 잘될 것”이라고 말했다.
:: 가치 전쟁(value war) ::
박근혜 정부는 철도 경쟁체제 도입을 둘러싼 사회적 혼란에 대해 현 정부와 철도노조 중 누가 국민을 위한 진짜 세력인지 끝까지 가려 보자는 결단을 내렸다. 주식 투자를 할 때 일시적 주가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기업의 ‘가치’를 내다보고 길게 투자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1>힘 실린 朴정부 공공개혁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30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정부의 초기 대응이 미숙했음을 인정하면서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새해에는 모든 비정상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30일 철도노조의 파업 철회 소식이 전해진 직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내년에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계속 추진할 것을 강조했다. 철도노조의 파업에 맞선 ‘가치 전쟁’에서 얻어낸 첫 결실을 이어 나가겠다는 자신감의 피력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한국이 지향해야 할 ‘일류국가’에 대한 언급과 함께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국격(國格)을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파업 초반에 정부의 미숙한 대응이 혼선을 초래했지만 청와대의 전반적인 기류는 “원칙의 승리”라는 반응이다.
○ 비정상의 정상화 첫 결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북한, 국회, 기업 등의 관계에 있어 기존의 불합리한 관행을 깨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5월 원자력발전소 부품 비리가 터지자 ‘비정상의 정상화’를 본격적인 모토로 삼았다.
박 대통령은 11월 국회 시정연설 때 4대 국정기조와 별도로 공공부문 개혁 의지를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때 ‘철도시설’을 원전, 방위사업, 문화재 분야와 함께 비정상의 정상화의 4가지 예 중 하나로 들면서 “각 분야의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비리를 반드시 척결하겠다. 공공부문 개혁으로 솔선수범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4가지 과제 중 원전과 방위산업, 문화재 분야는 큰 저항 없이 진행됐지만 철도 문제는 강력한 저항에 부닥쳤다. 파업사태 초기 “민영화는 아니다”라며 수세적인 방어에 집중했던 박근혜 정부는 노조가 대화를 거부하고 장기파업 태세에 들어가자 강력한 대응에 나섰다. 청와대 내에서는 타협 거부에 그치지 않고 부당한 기득권 세력과의 전면전도 불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었다.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개혁, 악성 부채와 적자 해소를 개혁의 양대 축으로 삼았다. 직원들의 자동 승진을 보장하는 등의 과도한 복지, 그러면서도 매년 5000억∼7000억 원의 적자를 내는 코레일은 ‘시범케이스’로 딱 적합한 사례였다. 명분에서 앞서 있다고 판단한 박근혜 정부는 본격적인 가치 전쟁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타협이 아닌 ‘국민’을 위해 원칙을 지켜야 할 문제라고 판단한 ‘가치 전쟁’에서는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이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위협했을 때 우리 근로자를 모두 철수시킨 것, 일본이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진전된 조치 없이 언론과 국제사회를 통해 정상회담의 압박을 가해 왔을 때 끝까지 버틴 사례도 이른바 ‘가치 전쟁’으로 볼 수 있는 사례다.
○ 노사정 대타협 행보 탄력 받나
박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에서 국민 세금을 줄이고 만성적 부채에서 벗어나서 경쟁력을 갖추려는 것까지 발목을 잡혀서는 안 된다. 이것은 국가경제를 볼모로 개인의 이득을 앞세우는 것으로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공공기관 정상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노조의 강력한 저항이었다. 하지만 이번 철도노조 파업 과정에서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이 적나라하게 공개됐고, 경쟁을 거부한 채 ‘철밥통’을 지키려는 구태가 드러나면서 노조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게다가 “국민의 불편을 볼모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노조의 태도에는 절대 타협은 없다”는 박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실천되면서 앞으로 노조가 정당한 명분 없는 파업에 나서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공공기관 개혁을 추진하는 강도와 속도에 한결 힘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청와대는 이번 해결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국회의 여야 합의를 수용하는 형태로 마무리를 지은 것도 좋은 선례를 남긴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시정연설에서 “국회가 여야로 합의를 해 온다면 국민의 뜻으로 알고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동안 정치 현안이 터지면 대통령만 쳐다보고 대통령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관행이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집권 2년차 ‘신뢰와 원칙’ 외에 국민 통합과 노사정 대타협 행보도 가속화할 예정이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많은 사람이 이렇게 강 대 강으로 부닥치면 향후 노사 문제를 풀기가 어려워질 거라고 우려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노조가 상식선에서 대화에 나선다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대화가 잘될 것”이라고 말했다.
:: 가치 전쟁(value war) ::
박근혜 정부는 철도 경쟁체제 도입을 둘러싼 사회적 혼란에 대해 현 정부와 철도노조 중 누가 국민을 위한 진짜 세력인지 끝까지 가려 보자는 결단을 내렸다. 주식 투자를 할 때 일시적 주가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기업의 ‘가치’를 내다보고 길게 투자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빚더미 公기관 국가경제 위협” 개혁고삐 바짝 죈다
기사입력 2013-12-31 03:00:00 기사수정 2013-12-31 08:51:29
[철도파업 철회/공공기관 이대로는 안된다]
시동 걸린 공공기관 개혁
철도노조가 파업 21일 만에 사실상 정부에 백기를 들면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부문 개혁 정책이 한층 탄력을 얻게 됐다. 정부로서는 공공 개혁의 최대 저항 세력이 될 수 있는 노조와의 첫 싸움에서 승리함으로써 앞으로 관련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하기 위한 동력을 얻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파업 초기에 ‘민영화 프레임’에 걸려 고전하던 정부가 공기업의 방만 경영과 과다 부채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강공책으로 전환해 노조와의 여론전에서 승기를 잡은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 있으면서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이런 문제를 개혁하려는 정부에 극단적 파업으로 맞서는 공기업 노조의 행태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정부가 공공부문 개혁의 주도권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국민은 물론, 정치권이나 공공기관 구성원들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꾸준히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공공기관 부채, 이미 국가 부채 추월
공공기관의 부실은 한국의 국민경제와 재정에 부담을 주는 수준을 넘어 장차 국가 신용도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큰 위협 요인으로 떠올랐다. 이번 코레일 파업 사태가 아니었더라도 정부로서는 공공 부문에 쌓인 부실을 털어 내고, 강도 높은 개혁을 하루빨리 실행에 옮겼어야 할 상황이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95개 전체 공공기관의 부채 총액은 지난해 기준 493조 원으로 4년 전인 2008년(290조 원)에 비해 200조 원 이상 급증했다. 지난해 국가채무(446조 원)를 넘는 규모다. 여기에 지방 공기업의 부채 72조 원까지 합치면 공공부문 부채는 순식간에 1000조 원이 넘어간다.
공공기관은 부채뿐 아니라 씀씀이에서도 중앙정부를 능가하기 시작했다. 이들 기관의 연간 예산 총액은 지난해 455조 원으로 같은 해 정부 예산(325조 원)보다 130조 원이 많았다. 이들 부채와 예산의 대부분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도로공사, 철도공사 등 10여 개 대형 공공기관이 차지한다.
부채가 너무 빠른 속도로 늘면서 빚 상환 능력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정부가 지정한 부채 중점 관리 기관 12곳 중 예금보험공사와 한국장학재단을 제외한 10개 공공기관의 영업이익 합계는 총 4조3000억 원으로 이자비용(7조3000억 원)에도 못 미친다. 이자를 갚기 위해 또 돈을 빌려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이 가운데 대한석탄공사, 철도공사, 한국전력은 아예 영업적자 상태로 해가 거듭될수록 부실만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공공기관들이 부실 해소를 위한 노력을 하기는커녕 방만 경영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한국거래소와 마사회 코스콤 수출입은행 직원들의 1인당 복리후생비는 1000만 원이 넘었고, 상당수의 공기업들은 과다한 경조금과 자녀 학자금, 휴가, 건강검진 혜택을 누리다가 정부의 개혁 대상에 올랐다. 특히 단체협약 등에 직원 가족에 대한 고용 세습 규정을 두고, 노조의 인사권 개입을 명문화하는 등 민간 기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과도한 경영권 침해 조항도 지적을 받아 왔다. 이번에 파업 사태를 겪은 코레일 역시 방만한 인력 구조와 강성 노조의 경영·인사권 개입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케이스다.
○ ‘박근혜식’ 공공개혁 성공할까
철도 경쟁 체제 도입이라는 개혁안을 관철한 정부는 공기업 개혁의 고삐를 더욱 바짝 죌 태세다. 우선 다음 달에 부채 및 방만 경영 중점 관리 대상에 오른 32개 공공기관으로부터 정상화를 위한 자구계획을 제출받아 심사하고, 3월까지 정보화, 중소기업, 고용·복지, 해외투자 등 4대 분야 공공기관의 기능 조정을 끝낼 방침이다. 또 내년 9월에는 중간평가를 통해 개선 실적이 미진한 기관장에 해임 조치를 내린다. 정부는 이미 공공부문 개혁을 향후 국정의 핵심 화두로 삼은 ‘비정상의 정상화’의 큰 줄기로 잡아 놨고, 신년 각 부처 업무보고에서도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역대 정권들이 줄줄이 실패한 공공부문 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정권 초 ‘공공기관 선진화’를 정책 과제로 들고 나왔지만 ‘민영화를 통한 개혁’에 대한 여론 잡기에 실패하고 기관장 ‘낙하산’ 인사 논란이 불거지며 정권 말에 급속히 개혁의 동력을 잃은 바 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단숨에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고용 세습 등 국민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가 드러난 만큼 정부는 앞으로 개혁의 추동력을 얻게 됐다”며 “공공기관의 부채와 경영 상태는 각 기업의 특성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개혁 방안을 정부와 공기업이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기업의 부채가 얼마, 또 방만 경영이 어떻다고만 얘기하지 말고 공기업 정상화를 통해 일반 국민이 얻는 효용이 무엇인지를 설득해 공감을 얻어야 한다”며 “정부 사업으로 인한 부채가 얼마인지도 소상히 밝혀서 정부가 책임지는 자세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시동 걸린 공공기관 개혁
철도노조가 파업 21일 만에 사실상 정부에 백기를 들면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부문 개혁 정책이 한층 탄력을 얻게 됐다. 정부로서는 공공 개혁의 최대 저항 세력이 될 수 있는 노조와의 첫 싸움에서 승리함으로써 앞으로 관련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하기 위한 동력을 얻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파업 초기에 ‘민영화 프레임’에 걸려 고전하던 정부가 공기업의 방만 경영과 과다 부채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강공책으로 전환해 노조와의 여론전에서 승기를 잡은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 있으면서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이런 문제를 개혁하려는 정부에 극단적 파업으로 맞서는 공기업 노조의 행태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정부가 공공부문 개혁의 주도권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국민은 물론, 정치권이나 공공기관 구성원들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꾸준히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공공기관 부채, 이미 국가 부채 추월
공공기관의 부실은 한국의 국민경제와 재정에 부담을 주는 수준을 넘어 장차 국가 신용도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큰 위협 요인으로 떠올랐다. 이번 코레일 파업 사태가 아니었더라도 정부로서는 공공 부문에 쌓인 부실을 털어 내고, 강도 높은 개혁을 하루빨리 실행에 옮겼어야 할 상황이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95개 전체 공공기관의 부채 총액은 지난해 기준 493조 원으로 4년 전인 2008년(290조 원)에 비해 200조 원 이상 급증했다. 지난해 국가채무(446조 원)를 넘는 규모다. 여기에 지방 공기업의 부채 72조 원까지 합치면 공공부문 부채는 순식간에 1000조 원이 넘어간다.
공공기관은 부채뿐 아니라 씀씀이에서도 중앙정부를 능가하기 시작했다. 이들 기관의 연간 예산 총액은 지난해 455조 원으로 같은 해 정부 예산(325조 원)보다 130조 원이 많았다. 이들 부채와 예산의 대부분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도로공사, 철도공사 등 10여 개 대형 공공기관이 차지한다.
부채가 너무 빠른 속도로 늘면서 빚 상환 능력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정부가 지정한 부채 중점 관리 기관 12곳 중 예금보험공사와 한국장학재단을 제외한 10개 공공기관의 영업이익 합계는 총 4조3000억 원으로 이자비용(7조3000억 원)에도 못 미친다. 이자를 갚기 위해 또 돈을 빌려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이 가운데 대한석탄공사, 철도공사, 한국전력은 아예 영업적자 상태로 해가 거듭될수록 부실만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공공기관들이 부실 해소를 위한 노력을 하기는커녕 방만 경영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한국거래소와 마사회 코스콤 수출입은행 직원들의 1인당 복리후생비는 1000만 원이 넘었고, 상당수의 공기업들은 과다한 경조금과 자녀 학자금, 휴가, 건강검진 혜택을 누리다가 정부의 개혁 대상에 올랐다. 특히 단체협약 등에 직원 가족에 대한 고용 세습 규정을 두고, 노조의 인사권 개입을 명문화하는 등 민간 기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과도한 경영권 침해 조항도 지적을 받아 왔다. 이번에 파업 사태를 겪은 코레일 역시 방만한 인력 구조와 강성 노조의 경영·인사권 개입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케이스다.
○ ‘박근혜식’ 공공개혁 성공할까
철도 경쟁 체제 도입이라는 개혁안을 관철한 정부는 공기업 개혁의 고삐를 더욱 바짝 죌 태세다. 우선 다음 달에 부채 및 방만 경영 중점 관리 대상에 오른 32개 공공기관으로부터 정상화를 위한 자구계획을 제출받아 심사하고, 3월까지 정보화, 중소기업, 고용·복지, 해외투자 등 4대 분야 공공기관의 기능 조정을 끝낼 방침이다. 또 내년 9월에는 중간평가를 통해 개선 실적이 미진한 기관장에 해임 조치를 내린다. 정부는 이미 공공부문 개혁을 향후 국정의 핵심 화두로 삼은 ‘비정상의 정상화’의 큰 줄기로 잡아 놨고, 신년 각 부처 업무보고에서도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역대 정권들이 줄줄이 실패한 공공부문 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정권 초 ‘공공기관 선진화’를 정책 과제로 들고 나왔지만 ‘민영화를 통한 개혁’에 대한 여론 잡기에 실패하고 기관장 ‘낙하산’ 인사 논란이 불거지며 정권 말에 급속히 개혁의 동력을 잃은 바 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단숨에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고용 세습 등 국민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가 드러난 만큼 정부는 앞으로 개혁의 추동력을 얻게 됐다”며 “공공기관의 부채와 경영 상태는 각 기업의 특성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개혁 방안을 정부와 공기업이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기업의 부채가 얼마, 또 방만 경영이 어떻다고만 얘기하지 말고 공기업 정상화를 통해 일반 국민이 얻는 효용이 무엇인지를 설득해 공감을 얻어야 한다”며 “정부 사업으로 인한 부채가 얼마인지도 소상히 밝혀서 정부가 책임지는 자세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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