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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즙 팡팡 터지는 복서의 갈빗집

산야초 2017. 3. 2. 23:40

육즙 팡팡 터지는 복서의 갈빗집  

[맛난 집 맛난 얘기] 호천생갈비

‘생’이라는 접두어가 들어간 낱말들은 모두 살아서 꿈틀거린다.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이 파닥거린다. 생맥주가 그렇고 생음악이 그렇다. 생고생 시키고 생사람 잡아 생이별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생’에는 풋풋한 신선함이 생생하다. 양념갈비에 비하면 생갈비가 그렇다. 경기 광명시 <호천생갈비>는 주인장이 공들여 맛을 낸 생갈비를 맛볼 수 있다.

주인장은 복서 출신 순박한 ‘프로 갈비쟁이’

이 집 주인장 김성용(46) 씨의 고향은 전남 신안군 지도(智島)다. 그의 어린 시절 소원은 육지로 나가서 살아보는 것이었다. 육지와 다리로 연결돼 섬 같지 않은 섬이었지만 김씨는 고교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칠 때까지 지도에서 살았다. 적지 않은 식구들이 좁은 농토에 의지해 살아가다 보니 집안은 늘 궁핍했다. 어린 그에게 육지는 궁핍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1988년, 섬을 벗어난 20대 중반의 청년은 권투를 시작했다. 그가 맨주먹으로 서울에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안 가운데 가장 유력한 선택지였다. 하지만 프로선수 생활로 받는 대전료는 생계비도 되지 못했다. 낮에는 권투 연습을 하고 밤에는 식당에서 일하는 생활을 지속했다. 오히려 밤에 식당에서 버는 돈이 더 짭짤했다. 결국 몇 년 뒤 챔피언의 꿈을 접고 지인의 추천으로 대형 갈빗집에 들어갔다.

생갈비
천성이 순박하고 성실한 탓에 금방 고기 다루는 법과 냉면 조리법 등을 익혔다. 업주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김씨는 난생 처음 안정적인 생활을 오래 누렸다. 프로복서보다 ‘프로 갈비쟁이’가 그의 체질에 맞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부인 김봉옥(46) 씨를 이 집에서 만난 건 큰 행운이었다. 두 사람은 옥탑방을 얻어 함께 알콩달콩 생활하면서 언젠가는 마련할 자신들의 갈빗집을 꿈꿨다.

‘내 손님에게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보고 싶다’는 부부의 소박한 꿈은 10여년이 흐른 뒤 이뤄졌다.

육즙 흥건한 생갈비에 대파김치 곁들여

<호천생갈비>는 김씨 부부가 우여곡절 끝에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문을 연 고깃집이다. 흑돼지소금구이와 양념 수제돼지갈비도 있지만 이 집 간판 메뉴는 생갈비다. 국내산 유명 돈육 메이커의 뼈삼겹 부위를 숙성실에서 약한 냉동과 해동을 2회 반복하면서 맛을 냈다. 김씨가 갈빗집에서 배운 생갈비 숙성 노하우다. 숙성이 끝난 고기는 주인장의 고향인 신안 소금과 소량의 와인으로 염지를 해 잡내를 말끔하게 제거한다.

생갈비
이런 과정을 거친 생갈비(180g 1만3000원)를 원통형 참숯에 굽는다. 잘 익은 생갈비는 육즙이 풍부하다. 물커덩하고 씹히는 순간 육즙 터져 나오고 만다. 곰소산 순태젓에 생갈비를 찍어먹으면 짭조름하고 뒷맛이 개운하다. 대파김치와 먹으면 남도의 풍미를 더 ‘징허게’ 느낄 수 있다. 갈치액젓을 충분히 넣고 주인장 고향에서 가져온 고춧가루로 담근 대파김치는 억세지 않고 파 향이 제대로 난다. 파의 향이 육향과 어울리면 느끼하지도 않아 생갈비를 무진장 먹을 수 있다. 앞으로는 진도산 대파를 사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찬으로 나온 콩나물 무침과 참나물도 먹음직스럽다. 특히 참나물은 고소한 참기름으로 무쳐 참나물 향과 고소한 참기름 향이 입 안을 향긋하게 해주면서 식욕을 돋운다. 중간에 입이 느끼해지면 먹는 물김치는 보기보다 매콤하다.

야끼오니기리
숯불에 구워먹는 주먹밥 ‘야끼오니기리’

고기가 바닥이 났는데 술이 남았을 때 돼지껍데기(200g 7000원)는 유용한 안주다. 이 집은 특이하게도 돼지 껍데기(껍질로 표기해야 맞는데 모두 껍데기로 쓰고 있다)를 콩가루에 찍어먹는다. 고소한 콩가루와 돼지껍데기의 맛이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고기를 먹고 난 뒤 후식으로는 후식김치전골(4000원)과 야끼오니기리(3000원)가 있다. 김치전골은 돼지고기를 넉넉히 넣어 국물 맛이 좋다. 얼큰한 김치 국물에 밥 말아서 먹거나 안주로 먹기도 한다. 밥을 냄비에 말아 숯불 위에 끓이듯이 놓아두었다가 먹으면 더 밥맛이 난다. 

야끼오니기리는 밥에 날치알, 참깨, 김가루를 골고루 섞어 넣고 주먹밥 형태로 성형해 숯불에 구워먹는다. 무엇이든 구우면 맛이 더 좋아지는데 주먹밥 역시 그렇다. 마치 물수제비 뜨기 좋은 조약돌 모양이다. 소설 ‘소나기’의 소녀가 소년에게 개울가에서 던졌던 조약돌이 바로 요런 모양이었을 것이다.

각자 개성대로 주물러서 모양을 만들어 구워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기 구운 불판에 굽는데 구울 때 불판에 돼지기름이 남아 있으면 맛이 더 고소하다. 익히지 않고 그냥 먹어도 괜찮고 입에 싱거우면 젓갈에 찍어먹는다. 식사대용으로도 먹지만 고기 먹듯 순태젓에 찍어 안주로 먹는 주당들도 있다.

돼지껍데기
그런가 하면 주먹밥에 순태젓을 올리고 돼지껍데기로 싸서 먹기도 한다. 일명 ‘돈피스시’다. 야끼오니기리는 밥 한 공기 분량으로 양이 적지 않아 다 먹으면 배가 부르다. 만일 일행이 세 명이라면 3인 세트메뉴(4만8000원)가 경제적이다. 생갈비 3인분, 껍데기 1인분, 김치전골 1인분, 음료수 1병으로 구성됐다.
<호천생갈비> 경기 광명시 오리로 999, 02-2060-8212

글 이정훈(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사진 변귀섭(월간외식경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