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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화엄종 발상지’ 영주 부석사는 문화재 寶庫… 국보 5점 보물 6점 보유

산야초 2015. 8. 31. 17:37
‘해동화엄종 발상지’ 영주 부석사는 문화재 寶庫… 국보 5점 보물 6점 보유


     

소백산 자락길에서 만나는 영주 부석사가 어떤 사찰인가. 한국의 10대 사찰로 꼽힌다. 국보만 해도 5점이나 보유하고 있다. 첩첩산중에 터전을 잡아 웬만한 전란으로부터 피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해동화엄초조(海東華嚴初祖)’, 즉 한반도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의 선견지명 때문이라고 전한다. 의상이 전란을 미리 예견하고 변방에 부석사를 창건했다는 설명이다.


국보 5점과 보물 6점을 보유한 영주 부석사의 전경. 오른쪽에 있늩 탑이 신라 때 건립된 삼층석탑이다. 한국 10대 사찰에 꼽힌다.

의상은 당나라 종남산 지상사의 지엄 문하에서 화엄교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신라의 화엄도량으로 부석사를 창건했다. 그 때가 676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 왕명으로 부석사를 창건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같이 나온다. 의상이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이 신라를 침범할 계획을 듣고 즉시 귀국, 이를 왕에게 알렸다. 이에 왕은 의상이 닦은 교리로 국론을 통일하고 내외의 시련을 극복하게 하고자 부석사 창건을 지시했다고 전한다. 그게 화엄사상의 발원지가 된 것이다.

영주 부석사에서 내려다 본 소백산자락의 전경. 첩첩산중 쌓인 풍광이 외부에 쉽게 노출되지 않은 지역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영주 부석사에서 내려다 본 소백산자락의 전경. 첩첩산중 쌓인 풍광이 외부에 쉽게 노출되지 않은 지역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영주 부석사 연혁 안내판.

영주 부석사 연혁 안내판.

신라의 3대 승려인 원효와 자장도 화엄의 대가였다. 특히 자장은 중국 오대산의 문수보살상으로부터 감응을 받고 화엄의 진리를 깨달았으며, 귀국한 뒤에는 중국의 화엄 신앙을 한반도 오대산에 그대로 옮겨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부석은 무량수전 서쪽에 있는 바위다. 아래 위가 붙지 않고 떠 있다고 해서 뜬돌, 즉 부석(浮石)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사찰이름으로 따와서 사용하게 됐다.

부석사 뒤에 있는 부석이란 이름의 유래가 된 뜬 바위.

부석사 뒤에 있는 부석이란 이름의 유래가 된 뜬 바위.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불교 문화재 중 석조건축물은 대부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를 전후해서 축조됐으며, 목조 문화재는 고려 말기인 14세기 전후 축조됐다. 부석사도 마찬가지다. 대석단을 비롯해서 당간지주, 석등, 자인당 석불, 삼층석탑, 부석 등은 신라시대 유물이고, 무량수전을 비롯해서 조사당, 화엄경판, 조사당벽화 등은 고려시대 유물에 해당한다. 특히 무량수전은 현존하는 최고의 건축물로 꼽힌다. 길에서 만나는 문화재를 찬찬히 한 번 살펴보고 지나간다. 그냥 바라만 봐도 빛을 발하는 듯하고, 감격스러운 문화재들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인 부석사 무량수전. 국보 제18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인 부석사 무량수전. 국보 제18호.

웅장한 산세, 많은 계곡과 울창한 숲은 자연스레 시대를 흐르면서 많은 문화유적을 만들었다. 현재 주변에 남아 있는 국가지정 문화재만을 한 번 살펴보자. 특히 부석사에만 국보 5점, 보물 6점 등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 하나로 꼽힌다.

부석사 무량수전 바로 앞에 보물 부석사 석등이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 바로 앞에 보물 부석사 석등이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아미타여래불상을 주존불로 모시고 있으며, 배흘림기둥은 미학적으로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15호)과 더불어 국보 제18호로, 그 역사적 가치는 매우 크다.

건축한 지 1,000년이 더 된 건축물로 알려진 부석사 조사당. 국보 제19호.

건축한 지 1,000년이 더 된 건축물로 알려진 부석사 조사당. 국보 제19호.

국보 제17호인 무량수전 앞 석등은 전형적인 신라 석등의 형태를 띠고 있다. 1967년 학술조사단의 발굴을 통해 석등에서 무량수전까지 지면에서 약 2척의 깊이에 묻혀 있는 48척의 석룡의 일부를 확인했다. 이는 부석사의 창건설화와 연관된 선묘낭자가 석룡으로 변한 설화를 뒷받침하는 자료로 매우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국보 제19호인 부석사 조사당은 의상대사의 초상을 모신 목조건물이다. 고려시대 처음 지어져,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어, 그 역사적 자료적 가치는 매우 크다. 조사당 내부의 벽화는 사천왕과 제석천 범천을 6폭으로 나눠 그렸다. 고려시대 작품으로 국보 제46호. 후대에 덧칠한 부분이 많고 일제 강점기에 많이 훼손됐지만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에 모시고 있는 소조여래좌상은 국보 제45호다. 형태상으로는 고려 초기에 제작된 불상이다.

보물 제220호인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220호인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220호인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2구는 원래 부석사 동쪽 산 너머 절터에 있었던 것을 현재의 장소로 옮겨져 왔다. 통일신라 말기의 작품으로 부석사 자인당에 모셔져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 동쪽에 있는 3층석탑은 보물 제249호. 전형적인 신라 중대의 석탑 형식을 띠고 있다. 부석사 당간지주는 보물 제255호. 부석사 고려각판은 보물 제735호. 부석사 오불회괘불탱은 보물 제1562호.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은 보물 제1636호.

보물인 부석사 삼층석탑

보물인 부석사 삼층석탑

부석사 삼층석탑 옆으로 모자가 지나가고 있다.

부석사 삼층석탑 옆으로 모자가 지나가고 있다.

의상조사가 화엄의 도량을 창건하기 위해 영주 주변을 왔을 때 임시 거처로 있었다고 전하는 성혈사 나한전은 보물 제832호. 신라 화엄불교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인 비로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 및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보물 제996호.

부석사 무량수전 올라가는 길에서 내려다 본 소백산자락길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이 운치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 올라가는 길에서 내려다 본 소백산자락길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이 운치 있다.

소백산 주변에 문화유적들이 수두룩하다. 결국 소백산은 왕의 태를 묻은 명산으로, 또한 사람을 살리는 산으로 시대를 흐르면서 자리매김했다. 지금도 명산의 반열에 있지만 자료를 더욱 찾아보면 현재의 평가보다 더욱 가치 있는 산으로 평가받을 것으로 보인다.

부석사 입구엔 연못과 더불어 철쭉이 화려하게 피어 방문객을 화사하게 맞아준다. 5월이 절정이다.

부석사 입구엔 연못과 더불어 철쭉이 화려하게 피어 방문객을 화사하게 맞아준다. 5월이 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