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前 대통령 ‘쓱쓱’ 필력 위조자는 알지 못했다기사입력 2013-06-28 18:25:00 기사수정 2013-06-29 18:28:45 감정학 박사 1호 이동천의 ‘예술과 천기누설’
1 추정가 800만~1500만 원에 나온 가짜. 2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진짜 작품.
미술시장은 주변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박근혜 대통령 시대의 도래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예작품 가치와 가격 상승을 예고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지난 반년 동안 미술시장에서 박 전 대통령의 서예작품이 자취를 감췄다. 누구보다 박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 서예작품의 진위를 잘 안다고 생각해 몸을 사렸던 것으로 보인다. 미술시장은 박 대통령이 아버지의 가짜 서예작품을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을 리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잠시 주춤하던 박 전 대통령의 가짜 서예작품이 최근 봇물 터지듯 여기저기서 고개를 쳐들고 있다. 탐색기를 끝내고 이때다 싶은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서예작품에 관심을 가진 감정전문가라면 어느 때보다 주의할 시기다. 필자는 ‘주간동아’ 868호에서 2005년 제96회 서울옥션 미술품 경매에서 추정가 3000만~4000만 원에 출품된 박 전 대통령의 영인본과 2009년 6월 제114회 서울옥션 미술품 경매에서 2550만 원에 낙찰된 박 전 대통령의 가짜 ‘휘호’를 밝힌 바 있다. 필자가 ‘주간동아’ 868호에서 박 전 대통령의 가짜 서예작품을 다뤘던 이유는 분명하다. 박 대통령 재임 기간에 박 전 대통령의 가짜 서예작품이 미술시장에서 판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몇 년 전 필자는 미술품 경매장에서 박 전 대통령의 유물이라면 무조건 사려고 덤비는 이름 모를 컬렉터를 뒤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컬렉터들이 온갖 위조와 사기에 무방비로 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최근 유명 미술품 경매회사 두 곳의 6월 경매에 박 전 대통령의 서예작품이 출품됐다. 필자는 두 경매회사 프리뷰에서 작품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 가짜였다. 글자는 물론 서명조차 달라 6월 19일 K옥션 미술품 경매에 박 전 대통령의 ‘강물이 깊으면 물이 조용하다’(그림1)가 추정가 800만~1500만 원에 출품됐다. ‘그림1’은 1966년 박 전 대통령이 쓴 ‘그림2’를 참고해 위조한 가짜다. ‘그림1’을 ‘그림2’와 박 전 대통령이 70년에 쓴 ‘충혼불멸’ 등과 비교하면 글자는 물론 서명조차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조자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박정희’의 ‘정’ 자에서 ‘ㅣ’획을 다르게 쓴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ㅣ’획의 시작 부분을 반드시 왼쪽으로 향하게 썼다. 또한 위조자는 ‘박정희’의 ‘박’ 자에서 ‘ㅂ’을 ‘ㅁ’처럼 보이게 흘려 썼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6월 20일 마이아트옥션 미술품 경매에 박 전 대통령이 1964년에 썼다는 ‘순국충혼’(그림3)이 추정가 1500만~3000만 원에 출품됐다. 같은 해 박 전 대통령이 쓴 ‘조경야독’과 비교하면, 역시 서명조차 틀렸다. 위조자는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았던 박 전 대통령의 한자 서명 습관을 전혀 몰랐다. 첫째, 박 전 대통령은 ‘朴正熙’의 ‘正’ 자에서 네 번째 필획의 시작 부분을 반드시 왼쪽을 향하게 썼다(그림4). 둘째, 서명된 ‘朴正熙’ 글씨의 중심은 ‘朴’ 자의 ‘卜’의 ‘ㅣ’획에 맞춰졌다(그림5). ‘그림1’과 ‘그림3’은 언뜻 보면 자연스럽다. 박 전 대통령의 붓글씨를 배우고 익힌 위조자가 자신의 글씨를 쓰듯 자연스럽게 위조한 것이다. 하지만 위조자는 필력이 약했을 뿐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의 서명 습관조차 몰랐다. 박 전 대통령은 붓과 종이가 마찰해 ‘쓱쓱’ 소리가 나도록 힘 있게 글씨를 썼다. 옛사람이 말하는 강한 필력의 소유자로, “붓글씨를 쓸 때 봄누에가 뽕잎 먹는 소리(筆落春蠶食葉聲)”가 났다. 필자가 ‘주간동아’ 868호와 892호에서 다뤘던 ‘환등기를 이용한 가짜’도 여전히 모습을 드러낸다. 서울 소공동 롯데갤러리 본점이 기획한 ‘홍익인간 1919~2013’전(6월 13일~7월 7일)에 출품된 박 전 대통령의 ‘충성은 금석을 뚫는다’(그림6)는 1989년 민족중흥회가 발행한 ‘위대한 생애’에 실린 ‘그림7’을 위조한 가짜다. ‘그림6’은 최신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충성은 금석을 뚫는다’와 ‘1971년 11월 24일’ 사이 여백을 자르고 이어 붙였다. 공간 배치를 ‘그림7’과 최대한 비슷하게 맞춘 것이다. ‘그림6’과 ‘그림7’의 글자 크기를 같게 해 겹쳐 보면 바로 알 수 있다(그림8). 이처럼 ‘그림6’과 ‘그림7’은 글씨부터 여백까지 최대한 비슷하게 위조됐지만, 정작 찍힌 인장은 완전히 다르다. ‘그림6’엔 한글 인장 ‘정희’, ‘그림7’엔 한자 인장 ‘正熙’가 찍혔다. 계속해서 가짜가 판치는 현실 6 ‘홍익인간 1919~2013’전에 나온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가짜 작품. 7 ‘위대한 생애’에 실린 진짜 작품. 8 가짜와 진짜의 글자 크기를 같게 해 맞춰본 결과. 9 2150만 원에 낙찰된 가짜.
2009년 7월 제114회 서울옥션 미술품 경매에서 2150만 원에 낙찰된 박 전 대통령의 ‘충성은 금석을 뚫는다’(그림9)는 ‘그림7’을 참고해 위조한 가짜다. 날짜를 ‘1971년 11월 21일’로 하고 글씨도 다르게 썼다. ‘그림7’처럼 작품 글씨를 비스듬히 썼지만,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 ‘충성’을 ‘금석’보다 작게 썼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이 중요한 단어를 다른 글자보다 크게 썼다는 사실에 위배된다. 가짜는 얼마든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박 전 대통령의 가짜 글씨가 판치는 것은 한국 미술시장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미술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젠 수사기관이 나설 때다. 위조자와 일부 미술계 인사의 마피아적 결탁을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 이동천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빙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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