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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국시는 양반들만 먹었을까

산야초 2016. 3. 3. 22:43

안동국시는 양반들만 먹었을까

입력 : 2015.03.23 09:00

[국수매니아 김윤정의 '국수를 쓰다'] 안동국시

예로부터 안동은 양반이 많다고 알려진 지역이다. 문중을 대표하는 종가가 귀이 여겨지고, 제사가 자주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안동의 고택이며 서원, 민속박물관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안동의 양반들이 호령했을 조선시대에는 밀은 귀한 곡식이었다. 밀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토양과 기후로, 그나마 재배하는 것도 많지 않았다. 안동 장씨가 쓴 「음식디미방」이라는 책에는 밀가루를 오죽 귀했으면 ‘진(眞)가루’라고 표기한다. 또한 146개 항의 조리법 중 국수를 만드는 법이 적지 않게 할애되어 있다. 참고로 「음식디미방」은 양반의 음식 조리서다.

어느 사회나 귀한 건 계급이 높은 사람들에게 먼저 돌아가는 법이다. 국수는 곡식을 수확해 빻아서 고운 가루를 내고 반죽하고 밀어내고 삶아내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만들어진다. 복잡하고 섬세한 음식은 일손을 두고 사는 양반들의 음식이었다. 그 국수의 재료가 한반도에서 귀한 밀이었다면 일상의 음식이 아니라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내는 음식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손님상은 정성스레 차려내는 법이니까.


	안동국시

안동국시의 맨얼굴 ‘누름국시’

“어릴 땐 어머니가 밀을 거두어 씻어놓고 마당에 말려놓았어. 물기가 마르면 방앗간에 가져가 분쇄를 했는데, 입자의 굵기 별로 세 가지로 갈아왔지. 그중 제일 고운 가루로 국시를 만들었는데, 날콩가루에서 한 바가지, 항아리에서 밀가루 한 바가지 이렇게 반반씩 섞어 반죽을 했어. 반죽의 숙성시간동안 보채는 동생을 달래가며 솥에 불을 지폈지. 솥에서 끓고 있었던 것은 맹물이었어. 살코기가 붙은 고기국물이 아닌 맹물에 손으로 썰어낸 국수가닥을 서로 붙지 않도록 흩트려 넣고 솥에 물이 넘쳐흐르면 맹물을 다시 부었어. 그러고 나서 밭에서 딴 어린 배추를 툭툭 던져 넣어 채소 맛이나마 우러나도록 가득 끓여 옹기에 담았지. 옹기를 들고 방으로 건너가면 동생들이 먼저 달려들었고 어머니는 옹기안의 뜨거운 국시를 차례대로 퍼주었어.” 여든을 바라보는 안동국시집의 주인장이 담담하게 말을 꺼내며 회상한다.

국수는 어떻게 끓여내느냐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이는 첫 번째 국수인 누름국수다. 국수 삶는 물에 면을 넣고 끓여 먹는 이 국수를 경상도에서는 누름국시라 불렀다. 전분을 씻어낼 틈도 없이 끓는 물속에 들어간 면들은 겉 표면이 까칠했을 것이며 국물이 탁했을 것이다. 그래서 주로 서민들의 음식이었다. 경상도 사람들을 그걸 안동국시라 부르지 않았다. 안동이라는 이름은 외지에 와서야 붙여진 이름일 터. 이 누름국시가 우리가 말하는 안동국시의 맨얼굴이다.

80년대 이후 서울에 진출한 안동국시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구호물자로 미국산 밀가루가 대량으로 들어오고서야 밀가루는 흔해졌다. 정부의 혼분식장려운동은 7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인의 입맛까지 바꿔놓았다.

경상북도에서는 국수를 국시라 불렀다. 국시는 국수의 사투리다. 사투리를 그대로 지니고 올라온 안동국시다. 서울에도 안동국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였다. 압구정, 송파, 마포에도 안동국시집이 생겼다. 몇 개 되지 않는 안동국시집은 그 국시를 기억하는 정재계인사들의 검은 차량들로 가득했다.


	안동국시
안동국시는 밀가루와 날콩가루를 섞어서 반죽하는 게 특징이다. 물론 서울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콩가루의 비율은 줄였다. 반죽한 뒤 넉넉하게는 3~4시간을 숙성시킨다. 숙성이 끝난 반죽은 넓게 편다. 두껍고 넓은 판에 반죽을 올린 후 기다란 홍두깨로 밀어낸다. 밀고 접고 또 밀어내는 과정을 반복하면 반죽은 한없이 얇아진다. 얇아진 반죽만큼 면은 실타래마냥 가늘게 나오게 마련이다.

밀가루만으로 반죽해낸 국수보다 확실히 고소함이 있다. 그 고소함과 비릿함의 경계에는 콩가루 냄새가 숨어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을 맛이다. 면발은 투명에 가까웠고 입안에서 너울거렸다. 그 고소함이 육수에서만 나는 건 아니었다. 콩가루로 반죽한 국시의 고소함이다. 육수는 꽤 심심하기 때문에 위에 얹어낸 얼갈이배추 향까지 확 퍼졌다.

현재 서울에서 유일한 논현동의 ‘건진국시’

건진국시는 말 그대로 면을 삶아 낸 후 찬물에 헹구어 건져내는 국수다. 국수를 끓여내는 방법에 따른 분류 중 두 번째에 해당된다. 국수 삶는 물에 면을 바로 넣고 끓여내는 누름국시보다는 면의 표면이 맨질맨질하다. 전분기가 싹 씻겨 내려가 깨끗함까지 더해준다. 같은 반죽에서 이렇게 다른 면발이 나오는 것이 신기하다. 주인장이 옆에서 거든다. “원래 건진국시는 더 가늘게 썰어냈어.” 그럼 이건 양반이 먹는 국수냐는 물음에 “양반? 더 손이 많이 가니까 그랬겠지”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여름철 손님이 오면 내었다는 건진국시는 차가운 국수다. 면을 한번 헹구는 절차를 거치고 고명도 신경 써서 낸 걸 보니 일상에서 먹었던 국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건진국시는 안동국시의 원형이었을 것이다. 건진국시의 육수는 여름국수답게 멸치국물을 기본으로 다시마, 양파, 대파를 넣고 끓인 후 차갑게 식힌다. 채반에서 건져낸 국수를 그릇에 담고 차가운 육수를 부은 후 노란 달걀지단, 파란호박 볶은 것, 양지 가늘게 찢은 것까지 웃기로 올라간다. 서민들의 누름국수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누름국시인 따뜻한 안동국시는 7000원이고, 손이 많이 가는 차가운 건진국시는 1만원이다. 국수는 귀한 음식이었다가 소박한 음식도 되었다가, 흔한 음식이었다가 이제는 별미로도 자리 잡고 있다. 이렇듯 국수는 변화무쌍한 얼굴을 지녔다.
<안동국시>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43길 18, (02)548-5871

글·사진 면전문 블로거 김윤정(blog.naver.com/yjkim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