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매력이 돋보이는 정갈한 한옥의 정취
수원에 거주하는 건축주는 퇴직한 후 귀촌하고자 강릉에 집터를 마련했다.
상담할 때 첫 질문은“언제쯤 집을 지으면 좋을까요” 였다. 바깥주인은“퇴직하는 5년 뒤에나 집을 지으려고 했는데, 그때까지 기다리며 이렇게 풀만 뽑다 보니 세월이 다가요. 마음먹었을 때 집을 지어 하나씩 가꾸면서 적응해 나가는 게 좋겠지요”라고 말했다.
이말에 안주인이 손뼉을 치며 호응했다. 그렇게 해서 건축주 부부는 행인 흙건축에서 설계·시공한 2010년 용인시 양지면 집부터 2012년 김포시 대곶면 집까지 세세하게 둘러보고 집을 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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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개요
·위 치: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대지면적: 660.00㎡(199.64평) / 진입로 190.00㎡(57.47평)
·건축면적: 131.80㎡(39.86평)
·건축구조: 한식韓式목구조 사괘맞춤
·처마지붕: 팔작지붕 홑처마
·지 붕 재: 개량형 한식 기와
·외 장 재: 창틀 하단-전돌
창틀 상단-흙벽돌 위 황토 미장
- 황토벽돌 이중 쌓기(폭 20㎝+ 10㎝)
- 황토벽돌, 메탈 라스Metal Lath 망, 내·외벽 황토 미장
·천 장 재: 거실-오량 천장
방-평천장(열 반사 단열재 + 석고보드 + 황토보드 + 한지 벽지)
·내 벽 재: 한지 벽지 마감
거실 벽 하단 및 포인트 벽-라취Larch(낙엽송) 합판 가공 마감
·바 닥 재: 거실-우물 마루형 온돌마루
방-한지 장판
·창 호 재: 우드 새시 이중 창 + 세살 목창, 삼중 창호
·난방형태: 기름보일러, 구들방, 벽난로
·설계 및 시공 : 행인흙건축
[둥근 하늘과 완만한 산세의 흐름을 받아 안은 처마 선이 한옥의 미를 뽐낸다.]
한옥의 여백미와 실용 공간 현장을 방문하니 2310.0㎡(698.7평) 터에 석축공사를 비롯해 3단으로부지를 조성한 상태였다. 초입엔 주말에 내려와 가꾼 텃밭이 풍성했다.
도로에 접한 하단은 텃밭으로 하고, 계곡과 가까운 상단은 남겨두고, 중간 터 위쪽에 택지를 정했다.
평면은 거실을 중심으로 터 안쪽인 좌측에 황토 침대(침실), 안방(구들방), 드레스룸, 화장실 등을 갖춘 부부 공간을 배치하고, 그 우측에 주방과 다용도실을 배치했다.‘ ㄱ’자 전면 현관 옆으로 손님방과 툇마루를 배치하고, 주방과 손님방 사이에 간이식당을 배치했다. 간이식당은 안주인의 간곡한 요청으로 바닥을 낮춰 방바닥에 걸터앉는 일식日食집의 룸 형태를 취했다.
매력이 돋보이는 정갈한 한옥의 정취
무수히 많은 집을 지어왔음에도 매번 새롭고 경이로운 것은 하나의 집이 완성되기까지 과정이다.터에 착상하여 기둥이 서고, 지붕이 덮이는 과정. 살이 붙고, 창과 문이 나고, 동맥과 정맥이 흐르듯 배선이 깔리고, 천장이 생기고, 벽체에 곱게 분을 바른 후의 느낌. 색깔을 갈아입는 집의 변화는 한 인간의 성장 과정을 보는 듯하다. 그것은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건축주와 시공사가 조율하고, 시공사와 각 공정별 자재 시공 업체가 호흡을 맞추어야 하며, 각 공정은 책임자와 일꾼들이 손발을 맞추어야살림집으로 맞춤한 집이 태어나는 것이다. 집을 볼 땐 집만 보지 말고, 집을 짓는 사람이 보여야 한다.
건축가의 말
[현관문을 열면 처마 밑 두 개의 원기둥 사이로 전원 풍경이 펼쳐진다.]
[자연과 이웃과 소통하는 현관 옆 툇마루.]
거실 전면에서 간이식당 옆을 거쳐 툇마루로 연결되도록 쪽마루를 설치했다. 거실 후면에도 한식韓式창을 내고, 그 뒤 에 쪽마루를 설치했다. 토방은 화강암 경계석과 판석으로 집의 안정감을 높이기로 했다. 건축비용을 조율하면서 겹처마에서 홑처마로, 계자난간 누마루에서 난간이 없는 툇마루로 사양을 조정했다.[거실은 천장을 오량으로 짜고 벽면 하단과 포인트 벽을 낙엽송으로 꾸몄다.]
양반가의 품격을 꿈꾸다 욕심을 조금 덜어낸 살림집으로 현대 한옥이 탄생했다.
이처럼 처음엔 보고 듣고 한 모든 것을 담아내고자 하지만, 진행하는 과정에서 집은 주인의 성정을 닮아가는 모양이다.[거실 앞에서 간이식당 앞까지 이어지는 쪽마루.]
건축주 부부는 이 집을 5년 후의 퇴직을 준비하며 지었기에, 당분간 주말주택으로 이용할 예정이다. 그래서 살림집을 기본 원칙으로 하면서주말주택으로 지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기능도 필요한 집이다.
터 안쪽으로 부부 공간을 마련하고 거실을 중심으로 출입구 전면에 손님방과툇마루를 둔 이유이다.
이 집의 특징 중 하나는 안주인이 손님을 치를 때 거실에 상을 차리는것이 아니라 마루에 걸터앉듯 음식과 차를 나누는 간이식당이다. 방바닥에서 의자 높이 정도 내려 바닥을 만들고 난방 시설을 갖춰 목재로마감했다. 손님이 많을 경우 가운데에 놓인 세 개의 탁자를 치우고 접이식 판재를 깔면 방으로 변한다
[전통미와 현대미를 접목한 주방/식당]
[주방과 손님방 사이에 배치한 간이식당.]
안주인의 요구에 맞춰 처음으로 시도한 이러한 공간은 시공 과정에서 시공 팀과의 조율에 애를 먹는다. 우선 기초공사를 할 때 번거롭고, 난방 배관공사에 세심한 주의와 배려가 필요하다. 6.6㎡(1.9평) 남짓한 공간 외벽에 채광과 전망을 위한 한식 창(앉을 때 손을 얹을 수 있는 높이로 새시 이중 창과 세살 목창으로 구성), 복도 쪽 손님방과 주방 쪽에서 출입하는 두 면 전체의 네 짝 미닫이문, 방바닥 아래로 내려간 부분의 벽과 바닥 마감, 등을 기댈 수 있는 벽면의 목재 마감 그리고 식탁, 좌탁, 침실로 이용하기 위한 덮개 등 그 비용과 과정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 작은 공간은 건축주 부부가 집을 지은 후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곳이자, 손님을 치르면서 더욱 빛을 발하는 곳이다.[창호는 삼중으로 우드 새시 이중 창호에다 세살 목창을 결합했다.]
만약 시공사가 과정의 어려움을 들어가며 못하겠다고 했으면, 건축주 부부의 아쉬움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이렇듯 보이는 집의 모습은 비슷비슷할지 모르나, 집 하나하나엔 건축주의 숨결이 살아 있고 시공사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숨어 있는 것이다.[황토 침대와 구들방으로 꾸민 안방]
[전면 현관 옆에 배치한 손님방.]
과정이 결과를 말한다
3월부터 시작한 공사는 5월 말 황토 미장공사와 토방공사까지 끝내고 중단했다가 8월 중순에 재개해 9월 초에 마감했다. 입주가 급하지 않았기에 행인흙건축에서 금산주택을 시공하기를 기다렸다가 마감했기 때문이다.
건축 기간 건축주 부부가 현장을 찾은 건 채 열 번이 넘지 않았다. 직장관계로 주말에만 방문할 수 있는 데다, 또한 주말에 일이 생기면 한 주를 건너뛰어야 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모든 일을 시공사에서 맡아 달라고 이야기했으며, 현장을 지켜볼 수 없기에 꼼꼼한 사전 조율을 거쳤다. 모든 것을 위임받은 시공사는 시공사로서만이 아니라 건축주의 몫까지 해내야 하는 책임이 따른다.일상적인 현장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니 먼저 시공한 일들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지곤 한다. 또한, 소소하게 장독대나 가마솥 걸이, 빨래대나 주변 정리 등 건축주가 살면서 할 일들까지 시공사에 요구되기도 한다. 그래서 마감은 언제나 지루하고 힘들기 마련이다. 누구에게 딱히 시키기도 어려운 일들이라 직접 감당할 수밖에 없다. 크게 돈을 들이지 않는 일이라면, 내 몸을 움직여 사는 집처럼 꾸미고 싶은 욕심 또한 작용하는 법이다. 공사 막바지, 외부 배관·배선공사와 주변 정리 기간 내내 비가 내렸다. 파헤쳐져 질퍽거리는 땅에 발이 빠졌다. 우수관, 오수관, 지중 전기매설은 연결과 고정을 잘해야 흙을 되메울 때 가라앉지 않는다. 맨발로삽을 들고 구덩이에 들어가 돌과 흙으로 고정하는데 건축주가 이 모습을 봤다.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믿고 맡기는 건축주의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한지 잘 안다. 그 책임을다해야 하는 시공사 또한 얼마나 노심초사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 서로의 마음이 통할 때 만족감은 배가 될 터이다.[편리성과 기능성이 돋보이는 처마 밑 쪽마루와 자갈]
터나 집이나 사람을 그냥 받아 주지 않바깥주인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폭우 때 계곡의 범람과 집 우측 산자락 경사면에서 흘러내리는 토사 문제이다. 몇 년 전 땅을 사들여 자연석 쌓기로 택지와 농토를 구획한 터라, 그 기반 위에 집터를 정하고 집을 짓자니 주변에 손 볼 일들이 생겨난 것이다. 경사면은 초봄에 망을 치고 개나리를 천여 그루 이식했는데, 일부 지반에서 물이 나오며 토사가 흘러내려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뒤 계곡은 물의 흐름을 트고 둑을 보완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걱정은 많은데 어찌 손을 쓸 수 없다.[거실 후면에도 한식 창을 내고, 그 뒤에 쪽마루를 설치했다.]
주말에 내려와 풀을 뽑고, 330.0㎡(99.8평) 텃밭을 가꾸는 일만으로도 벅차다. 밤에는 무섭기도 하다. 바쁠 때 한 주 건너뛰면 마음만 앞서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이놈의 집이 휴식처가 아니라 짐이 될 수도 있다. 마음은 떠날 것이고 결국 도시로 회귀할 것이다. 하지만 그 기간을 준비로, 일상으로,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퇴직할 무렵 집은 이미 오래 묵은 고향집처럼 친숙해질 것이다.[화강암 경계석과 판석으로 만든 토방 위에 정갈하게 앉힌 현대 한옥]
바깥주인의 휴가 기간에 맞춰 기자와 함께 취재를 간 날 한정식집 요리 저리 가라 하게 점심상이 나왔다. 직접 담은 고추장으로 텃밭에서 키운 채소들의 무침과 볶음 그리고 튀김으로 한 상을 이뤘다. 보통 집 짓고 나면 정원 가꾸기에 여념이 없는데, 건축주 부부는 텃밭 농사에 더 많은 애정과 노력을 쏟았다. 수원에서 강릉까지, 주말 농사로 풍성한 밭을 이루기가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그건 아마도 마음자리 집이 있으니 가능한 일일 게다.[계곡 옆 정자나무 그늘에서 바라본 현대 한옥]
한 마디 보탰다.“ 터나 집이나 사람을 그냥 받아주지 않는다”고.“ 사람의 손길과 발자국에 뭍짐승, 날짐승들과 경계가 생기고, 물길이 닦이며, 무서움이 사라지는 때가 온다”고. 한 해 한 해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텃밭의 풀을 뽑을 때 도시적 욕망을 내려놓고 세월에 얹혀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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