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금배지 필패’징크스 살고 … ‘단일화 필승’법칙 깨졌다

산야초 2015. 7. 29. 12:14


‘금배지 필패’징크스 살고 … ‘단일화 필승’법칙 깨졌다

[중앙일보] 입력 2012.12.21 00:57 / 수정 2012.12.21 09:27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교부한 당선증을 참석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김형수 기자]
 
이번에도 안 깨진 대선 속설

대한민국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18대까지 6번의 대선을 치렀다. 그런 과정 속에서 다양한 속설과 법칙이 생겨났다. 승자들에게서만 엿볼 수 있었던 ‘필승 법칙’은 새누리당 박근혜 당선인에게도 그대로 통했다.

 ① 먼저 선출된 후보가 승리한다

박 당선인은 8월 20일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그보다 늦은 9월 16일 후보로 선출됐다. 87년 민정당 노태우 후보는 6월 10일 후보로 추대된다.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11월 8일),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11월 11일)보다 일렀다. 결과는 노태우 후보의 승리였다. 2002년 대선에서도 민주당 노무현 후보(4월 27일)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5월 9일)보다 보름여 앞서 대선 후보로 확정됐었다. 대선 후보로 활동 기간이 길면 그만큼 이미지를 부각시킬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이점 때문이란 지적이다.

 ② 의원직 유지한 채 당선 불가

박 당선인은 11월 25일 대선 후보 등록 직전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내놨다. 민주당 문 후보는 그러지 않았다. 앞서 대선에서도 92년 금배지를 달고 선거에 뛰어들었던 민주당 김대중, 통일국민당 정주영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반면 금배지를 포기하고 배수진을 쳤던 민자당 김영삼 후보는 최종 승자가 됐다.

 ③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 않는 여당 후보 승리

박 당선인은 선거 초반 “이명박 정부도 민생 살리기는 실패했다”고 비판했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야권의 ‘이명박근혜 심판론’에도 현 정부와 크게 각을 세우지 않았다. 2002년 16대 대선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의 차별화 요구에도 의리를 택했던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같았다.
 
반대의 경우는 모두 패했다. 97년 15대 대선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와 갈등을 벌이다 11월에 탈당했다. 김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당적을 유지하려고 버텼지만 이 후보 측이 ‘YS(김영삼) 인형 화형식’까지 치르면서 몰아붙이자 탈당했다. 이 후보는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에게 39만여 표차로 패했다. 2007년 대선에서도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열린우리당 후신)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과 결별했었다. 열린우리당의 존폐 여부를 둘러싼 갈등 때문이었다. 530만 표차 대패였다.

 ④ 미국 대선과 엇박자

앞서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은 재집권에 성공했다. 단지 이 사실만 놓고도 박근혜 당선인의 승리를 점치는 정치권 인사들이 적잖았다. 실제 미국에서 민주당 정권이 등장하면 한국은 새누리당 계열이, 공화당 정권이 등장하면 한국은 민주당 계열이 등장한다. 92년 14대 대선부터 통했다. 같은 해 미국은 민주당 빌 클린턴 정권이 출범했지만 한국은 민자당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 97년 반세기 만의 정권교체를 이루며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이 되자 미국은 2000년 공화당 부시 정권이 들어섰다. ‘2004년 공화당 부시, 2002년 민주당 노무현’ ‘2008년 민주당 오바마, 2007년 한나라당 이명박’과 같은 패턴이 되풀이됐다.

양원보 기자

이번엔 깨진 대선 속설

역대 대선에선 ‘참’이었지만 이번에는 ‘거짓’이 된 ‘대선 명제(命題)’들이 있다.

① 같은 지역 출신은 연이어 대권을 쥘 수 없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이래 한국정치에서 같은 지역 출신이 두 번 연속 정권을 쥔 적이 없었다. 노태우(대구·경북)-김영삼(부산·경남)-김대중(호남)-노무현(부산·경남)-이명박(대구·경북) 대통령 식으로 매번 출신 지역이 바뀌었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의 당선으로 대구·경북 출신이 연이어 대통령직을 맡게 됐다.

② 단일화에 성공한 진영의 후보가 이긴다= 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3당 합당과 97년의 김대중-김종필 연합, 2002년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등을 통해 ‘연대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는 말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안철수씨와의 단일화를 통해 야권 단일후보가 된 문재인 후보가 이번엔 낙선했다.

③ 서울 지역에서 패배한 후보가 패배 = 97년 이후 역대 대선에서 서울에서 패배한 후보는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었다. 15대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는 서울에서 44.87%를 얻어 40.89%를 얻은 이회창 후보에게 승리했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서울에서 51.30% 대 44.95%로 이회창 후보를 꺾었고, 17대 대선에서도 이명박 후보가 서울에서 53.23%를 얻어 24.50%에 그친 정동영 후보를 크게 앞섰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은 서울에서 48.18%를 얻어 51.42%를 득표한 문재인 후보에게 뒤지고도 승리했다.

④ 투표율이 높으면 보수진영 후보가 진다= 97년 대선 이후 투표율이 70%를 넘은 대선에선 모두 진보 후보가 승리했다. 투표율 80.7%였던 15대 대선에선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투표율이 70.8%였던 16대 대선에선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눌렀다.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에게 승리한 17대 대선의 투표율은 63.0%에 그쳤다. 18대 대선 투표율은 예상을 뛰어넘는 75.8%에 이르렀지만 박근혜 당선인이 승리했다.

⑤ 40대 에서 패하면 낙선한다= 방송3사 출구조사로 볼 때 40대 득표율에서 박 당선인은 44.1%로 문 후보(55.6%)에게 11.5%포인트나 뒤졌다. 추후 선관위 연령별 득표율이 집계되더라도 40대에선 문 후보가 승리했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하지만 이번엔 40대가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지 못한 선거로 기록될 것 같다.

류정화 기자

 
 [박근혜 대통령 당선] 50대 투표율 89.9%
 
초유의 5060 결집이 가른 '세대 선거'
 
  • 조선닷컴 인포그래픽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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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대 대선 지역별 득표율 '박근혜, 서울·호남 제외한 전 지역서 이겨'



    19일 오후 6시 발표된 KBS·MBC·SBS 등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선 50.1% 대 48.9%(1.2%포인트 차)로 박 당선인이 신승(辛勝)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제론 격차가 훨씬 커졌다. 결과적으로 출구조사에 잡히지 않았던 ‘박근혜 숨은 표’가 2.4%포인트 더 있었던 셈이다. 또 출구조사에선 박 당선인이 서울과 인천·경기 등 수도권 전역에서 뒤지는 것으로 발표됐지만 인천(51.9% 대 47.8%), 경기(50.4% 대 49.2%)에서 승리했다.



    "50대 투표율 무려 90%, 예상 못한 수치"

    여론조사전문가들 "사회 주류 분위기가 안정지향적"


    2012-12-20 09:43:41


    • T F M Y C

    75.8%라는 기록적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이 유리하다는 통설이 깨진 데 대한 여론조사전문가들의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20일 SBS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보면 출구조사를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자세한 것은 선관위에서 한두 달 후에 다시 나오는데, 50대에서의 투표율이 무려 89.9%. 90%에 달하는데 이것은 정말로 예상할 수 없는 수치"라고 말했다.

    그는 "2002년에도 마찬가지로 60세 이상보다는, 50세의 투표비율이 높은 것은 과거에도 나타나기도 했었는데 통상적으로 50대 유권자의 투표율을 80%정도 예상했었다"며 50대의 경이로운 투표율에 거듭 놀라움을 나타낸 뒤, "2030같은 경우는 과거에 비해서 상당히 늘기는 했지만..."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 사회의 유권자들 연령 구성비에 따라서 사회 전체적인 주류 분위기가 안정 지향적 분위기가 상당히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선거라고 할 수 있겠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다른 패인으로 "정권교체의 여론이 조사를 통해서 보면 55% 이상 항상 꾸준하게 안정되게 나왔었는데 문재인 후보의 지지도는 항상 그에 미치지 못한 10%P이하로 나왔다"며 "정권교체에 대한 대중들의 열망이라든가 기류를 문재인 후보가 충분하게 흡수하지 못했다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도 이날 트위터를 통해 "선거종반 여론조사의 흐름이 초박빙 상황으로 공표금지되면서 보수성향 표심이 총결집했고, TV토론 과정에서 이정희 전 후보의 토론 태도에 우려를 나타낸 5060 세대의 투표율이 예상보다 높았는데, 특히 50대의 투표율은 90%에 육박했습니다"라며 경이적인 50대 투표율을 주요인으로 꼽았다.

    이 대표는 또한 "2012 총선과 대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과 SNS에서 진보성향 유권자들의 다소 과격한 표현방식이 보수,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위축되게 만들고, 그래서 그들 의견이 실제보다 소수의 의견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있었다는 것"이라며 보수중도층의 존재를 과소평가한 착시현상을 지적하기도 했다.

    김미현 <서울마케팅리서치> 소장 역시 이날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야당후보가 패한 원인과 관련, "평균 투표율보다는 세대별 투표율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50대이상의 인구구성비가 전체 유권자의 40% 를 차지하고 있다. 2002년 16대 대선에 견주면 20~30대(19살 포함) 유권자는 10%포인트가 줄은 반면, 50대 이상 유권자는 10%포인트 가량이 늘었다"며 "인구 구성은 바뀌었지만 연령대별 지지 성향은 별로 바뀌지 않은 상황인데, 통상적으로 50대이상의 튜표율은 전체투표율보다 10% 높은 반면 20,30대 투표율은 10%정도 낮다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이번 18대 대선에서 50대이상의 평균투표율은 80%를 상회한 반면, 20.30대 평균투표율은 60%후반대일 것 같다"고 추정했다.

    그는 박근혜 승리의 원인으로는 "박근혜라는 브랜드의 힘인 것 같다"며 "높은 인지도와 그동안 보여줬던 정치적 행보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보다는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준 것 같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에도 국민들은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하였다고 보여진다"고 분석했다.


    이번 대선의 숨은 표는 보수표였다


    12.12.20 14:35l최종 업데이트 12.12.20 14:41l


     제18대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둔 18일 오후 부산 동구 부산역광장에서 많은 지지자들이 모인 가운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유세가 열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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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와 진보의 총력 대결 양상을 띠었던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얻은 총 득표수는 1469만2632표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얻은 표(1201만4277만표)보다 약 260만 표 정도 많았다. 당시 권영길 후보가 득표했던 약 100만 표(95만7148표)를 감안해도 약 160만 표 정도 더 득표한 것이다.

    하지만 졌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2002년 이회창 후보와 2007년 이명박 후보가 얻은 표(약 1140만 표)보다 약 430만 표 정도 더 득표했기 때문이다(1577만3128표). 총 유권자수 증가와 높은 투표율에 따른 투표자수 증가를 감안하더라도 박 후보가 과거 보수 후보보다 추가로 얻는 표의 수는 매우 많다.

    그동안 정치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은 '숨은 표'를 이야기할 때는 야권 성향이 높다는 분석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으로 완전히 뒤바뀌게 됐다. 결과적으로 놓고 볼 때 이번 대선에서 숨은 표는 여권-보수표였다.

    '여론조사의 꽃'이라고 불리는 방송 3사 출구조사는 박 후보의 우세를 예측하기는 했지만 두 후보의 격차가 오차 범위 안인 1.2%p였다. 그러면 약 36만표 차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약 100만 표(3.5%p) 격차였다. 예상보다 박 후보가 더 많은 표를 얻은 것이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 mbc

    지역별로 보면 경기, 인천, 대전, 충남·세종에서 출구조사는 문 후보가 우세하다고 봤지만 결과는 박 후보가 앞섰다. 경기는 출구조사에서 박 48.8%-문 50.9%였지만, 결과는 박 50.4%-문 49.2%였다. 인천도 출구조사 박 49.0%-문 50.6%, 결과는 박 51.6%-문 48.0%였다. 대전 출구조사 박 49.5%-문 50.0%, 결과 박 50.0%-문 49.7%, 충남·세종 출구조사 박 45.8%-문 54.0%, 결과 박 56.2%-문 42.9%였다. 이런 현상은 당선자 예측이 빗나갔던 <오마이뉴스>와 YTN의 예측조사와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아직 선관위의 공식 집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로 추정하면 이번 대선에서 연령대별 투표율은 50대가 매우 높았다. 20대 65.2%, 30대 72.5%, 40대 78.7%, 50대 89.9%, 60대 이상 78.8%로 조사됐다. 전반적으로 투표율이 증가했지만, 50대 투표율 89.9%는 10명 중 9명이 투표했다는 놀라운 수치다. 지난 4월 총선 당시 50대 투표율은 62.4%로 60대 이상(68.6%)보다 낮았다. 50대의 박 후보 지지도는 62.5%로 문 후보 37.4%보다 크게 앞섰다.

    오차범위 안 박빙으로 자정 무렵까지 가봐야 알 것 같았던 당선자 윤곽은 오후 8~9시쯤 비교적 일찍 드러났다. 이제 여론조사를 실시하거나 해석할 때는 '숨은 야권표'가 아니라 '50대·수도권 숨은 여권-보수표'를 의식해야 하는 상황이다.


    박근혜 당선인, SNS 대첩 승리 이끈 주역은...

     

    카톡 플러스 친구맺기-트윗 관심도 등 문재인 압도
    김철균 SNS본부장, SNS 선거의 새 장 연 주역 우뚝
    서기원 객원기자 kibok22@hanmail.net | 2012.12.20 15:55:4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싸이월드공감 프린트하기 데일리안을 트위터에서 팔로우하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등 이른바 SNS는 일반적으로 야당과 좌파진영의 텃밭이자 전유물로 보수와 우파에겐 넘을 수 없는 벽처럼 여겨져왔다. 이들 공간은 20~30대 젊은층들의 소통공간이자 네크워킹 수단으로 간주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18대 대선은 그런 고정관념을 철저히 깼다. 박 당선인은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맺기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압도적으로 누르는 등 놀라운 선전을 펼친 것. 상대적으로 열세일 것으로 여겨진 SNS 대전에서 알찬 승전보를 울린 셈이다.

    사실 이번 대선은 'SNS 대선'이라고 불릴 만큼 SNS를 이용한 선거운동이 꽃을 피웠다.SNS 대전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카카오톡을 이용한 선거운동.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맺기의 경우 박 당선인이 68만5703명(19일 21시 30분기준)으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53만8574명)보다 크게 앞섰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김철균 중앙선대위 SNS본부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데일리안 DB


    또 트위터 대전에서도 박 당선인이 문 후보를 앞섰다. 비록 트위터 팔로어의 경우 박 당선인이 24만3000명)으로 문 후보(31만명)보다 뒤졌지만, 관심도에선 문 후보보다 앞섰다. 예컨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1월 27일부터 12월 19일 저녁 6시까지 박 당선인이 거론된 트윗은 178만2000여건으로 문 후보의 163만1000여건을 누른 것.

    카톡에선 무엇보다 가장 돋보인 것은 ‘이런 모습 처음이야’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진 박 당선인의 소탈하고 서민적인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메시지들. 초중고대학 시절의 흑백 사진들과 화장대 앞에서 수수하게 화장하는 모습, 도복을 입고 요가하는 모습 등은 많은 카톡 친구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소풍가서 친구와 찍은 사진, 대학 축제에서 공예품을 만드는 모습, 기타치는 모습 등 빛바랜 흑백사진들은 그의 수수하고 청순했던 청소년 시절을 보여줬다.

    또 각종 국민행복을 위한 중산층 재건 10가지 프로젝트 등 각종 정책메시지와 투표독려, 문재인 후보진영의 각종 흑색선전과 마타도어 전술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해명, 반박 등도 카카오톡을 통해 이뤄졌다. 특히 박 당선인이 사이비 기독교단체인 신천지와 관계가 있다거나, 에너지 공항 항공관련 공기업들을 민간에 매각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흑색선전이 창궐할 때 카카오톡과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신속히 반박하면서 루머를 잠재웠다.

    박 당선인이 카톡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사용하지 않는 속칭 ‘꼰대들’인 50대들을 대거 친구로 맺어 소통했기 때문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경우 야당이 기선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50대 이상을 끌어들여 우군으로 활용할 수 있는 카톡에 주목한 것이 대박을 터뜨리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이같은 아이디어는 박 당선인 캠프의 SNS본부를 이끈 김철균 본부장이 주도적으로 제안해서 이루어졌다. 인터넷 포털 다음 부사장을 거쳐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에서 뉴미디어 비서관을 지낸 김 본부장은 SNS전쟁을 승리로 이끌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박 캠프의 고민을 해결해줄 최적임자로 꼽혀왔다. 그는 인터넷과 SNS공간의 커뮤니케이션과 소통의 최고전문가로 평가 받아왔다. 교과부 산하기관인 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으로 있던 그가 지난 10월에 박근혜 대통령후보 중앙선대위 SNS본부장으로 긴급 차출된 것도 가장 열세부문으로 꼽힌 SNS 전쟁을 승리로 이끌 유능한 장수를 찾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그가 차출될 당시 SNS조직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조직이나 인원도 보잘 것 없었다. 그런 허허벌판에서 조직과 인원을 갖춰나가고, 박 당선인을 국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메시지 작성과 효율적인 네트워킹 소통방안을 마련하는 데 부심했다.

    물론 새누리당의 SNS용 앱이 있긴 했다. 하지만 이것은 국민과의 소통이 거의 없는 불통형 앱에 불과했다. 이용자가 너무 적었다. 당에도 인터넷 전문가들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인터넷사업자나 기술자들이 주류를 차지했다. 이들은 국민들과의 소통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야당의 전문가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사이버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김 본부장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새누리당의 SNS앱 사용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대신 카카오톡 등 새누리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을 끌어들이고, 보다 많은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개방형 SNS에 주목하게 됐다.

    김 본부장은 SNS 뿐만 아니라 모바일, 블로그 등 다양한 채널 특성에 맞는 콘텐츠를 바탕으로 박 당선인과 유권자들을 소통시키는 데 전력투구했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트위터에선 박 당선인의 정책과 공약을 알기쉽게 설명하는 데 힘썼다. 또 ‘그네가 있는 놀이터’와 같은 네티즌 참여형 공간을 만들어 일방적 전달과 홍보방식을 지양한 점도 돋보인다.

    김 본부장은 “박 당선인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그의 휴먼스토리를 공유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말했다. 사실 박 당선인은 바쁜 유세일정으로 인해 많은 메시지를 직접 작성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솔하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메시지를 남겨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예컨대 페이스북에선 “오늘 말씀드린 가계부채 대책을 꼭 실천해서 국민 여러분의 고통을 덜어드리겠습니다”라는 친필 메시지와 격려 영상 등을 올려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소통하려 했다.

    김 본부장은 “박 당선인은 SNS를 통해 전달하는 콘텐츠의 양보다는 모든 글과 메시지에 진정성을 담아 소통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면서 “국민의 말씀을 경청하고 공감대를 넓혀 나가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이 박근혜 캠프의 공식적인 SNS책임자를 처음 맡았을 때도 SNS문제를 둘러싸고 일부 인사들이 공치사하는 언론플레이를 하고, 그를 폄하하기도 했다. 일부 인사는 당의 수 많은 외곽조직에 불과한 한 곳에서 SNS본부장 타이틀을 달고 마치 박근혜 켐프의 SNS를 총괄하는 것처럼 호가호위하다가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모 인사는 자신이 새누리당 SNS본부장이라고 주장하며, 일부 인터넷매체를 통해 민주당 SNS본부장과 맞짱 인터뷰를 하는 황당한 일도 벌였다. 어느 인사는 김 본부장의 SNS 대응에 문제가 있다며 당 인사들을 만나 헐뜯고, 언론인들을 만나 비방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저런 인사들이 너저분한 감투욕심에 눈 멀어 흔들어댄 것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는 “박 당선인의 승리를 위해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일만 했을 뿐”이라며 “무슨 자리나 감투를 바라고 SNS본부를 이끌지는 않았다”고 몸을 낮추었다.[데일리안 = 서기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