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꼬박 걸어야 갈 수 있는 비밀의 땅… 문명 이전의 문명 볼 수 있어
콜롬비아 북쪽, 남위 10° 가량의 열대기후 지역의 밀림에 위치한 산타마르타의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 de Santa Marta 정글. 마약 산지를 점령하려는 반군 게릴라가 활동하는 곳이라 위험한 지역이다. 그곳에 타이로나Tayrona 원주민들이 신성한 의식을 지내던 장소로 스페인 점령 후 도시를 버리고 떠날 때까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살았던 도시가 있다. 타이로나인들이 8~14세기까지 거주했던 이 도시는 시우다드 페르디다Ciudad Perdida, 스페인어로 ‘잃어버린 도시’라는 뜻이다. 그곳엔 스페인의 침략으로 인디오 문명이 파괴된 후 산속으로 숨어둔 고대 타이로나 문명의 후손들이 고유의 언어와 전통을 유지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피했다. 그들에게 시에라 네바다는 삶의 은신처이자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의식주를 오로지 자연에 의지해 살아오고 있으며 외부인들의 방문도 제한하고 있다.
<론리 플래닛>에서는 잃어버린 도시를 찾아가는 시우다드 페르디다 트레킹을 남미 최고의 트레일로 선정했다. 길 위에 뿌려진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마체테에서 시작해서 약 50km의 정글을 걷는다. 습도가 높아서 비 오듯 땀을 흘리며 3일간 걸은 후 1,200여개의 좁고 울퉁불퉁한 계단들을 올라서야 비로소 잃어버린 도시를 만날 수 있다.
1일차 마체테Machete – 카사 알프레도Casa Alfredo, 10km
습하고 무더운 정글 속으로
잃어버린 도시를 찾아서 떠난다니 이 얼마나 설레고 낭만적인 트레킹인가!! 트레킹은 마체테라는 인디헤나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에서 시작한다. 꽤 많은 레스토랑에는 잃어버린 도시 트레킹에 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눈 씻고 찾아보아도 동양인은 나 한 사람, 대부분 유럽의 젊은이들이다. 산타마르타 인근 도시에서 투어를 온 트레커들은 이곳에서 스페인어팀과 영어팀으로 나뉜다.
남미의 다른 트레킹과는 달리 고산을 걷지는 않는다. 대신 정글 속의 좁은 길을 걸으며 30℃를 넘는 무더위 속에 엄청난 모기떼와 사투를 벌여야만 한다. 다녀온 이들의 다리를 보았는데 처참했다. 그것을 각오하고 길을 나선 것이다.
마테체에서 점심을 먹고서 드디어 길을 나섰다. 예상한대로 바람은 거의 없고 푹푹 찌는 한낮의 태양을 머리에 이고 길을 걷는다. 모두들 민소매에 반바지 차림으로 태양을 즐긴다. 더워서 숨쉬기조차 힘든데, 소풍가는 아이들 마냥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길을 걷는다.
걷다가 노새가 지나갈 때면 한쪽으로 비켜서야 한다. 이곳의 물류 이동은 노새가 하고 있다. 대부분의 길은 차량이 다닐 수 없다. 오직 오토바이와 노새만이 다닌다. 외부의 문물이 밀려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는 원주민들에겐 포장되지 않은 길은 천혜의 장벽이다. 좀더 빠르고 쉬운 길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그들이다.
경사도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조금씩 올라가는 길이지만 30℃가 넘는 무더위에선 쉽지 않다. 모두들 엄청나게 물을 마신다. 언덕을 넘고 넘어서 이젠 조금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때마침 수박이 우리를 반긴다. 가이드의 준비성에 환호성을 지르며 일제히 한 입씩 베어 문다. 달고 물 많은 수박으로 배를 채우고 한쪽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바람이 살짝 귓볼을 스친다. 느긋한 포만감에 행복이 밀려온다.
휴식도 잠시. 경사가 심한 황토흙길을 힘들게 오르니 꽃동네가 있다. 집 앞으론 강이 흐르고, 마치 무릉도원 같은 마을, 카사 아단Casa Adan이다. 그곳을 지나 조금 걸어 첫날 숙소인 카사 알프레도Casa Alfredo에 도착했다. 마치 군인 막사 같다. 일렬로 줄선 침대에는 모기장이 쳐 있다. 수도파이프만 달아놓은 샤워기에서 찬물이 콸콸 쏟아진다. 하루 종일 맞아야 했던 태양의 열기가 시원스레 씻겨 나간다. 저녁식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페스카도pescado, 생선요리다. 뼈 하나까지 쪽쪽 빨아가며 폭풍흡입. 정글 속에서 먹는 생선이라 그런지 정말 별미이다.
2일차 카사 알프레도 – 카바나 파라이소Cabaña Paraiso, 13.5km
정글 속의 타잔과 제인들
남미에서 걸었던 대부분의 트레킹은 새벽 5시 전후로 시작한다. 모두들 헤드랜턴으로 어둠을 밝히고 트레킹 준비를 한다. 스웨덴에서 온 애니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모두들 놀라서 애니의 침대 앞으로 모였다. 애니의 침대 모기장 안쪽에 엄청나게 큰 거미가 있다. 거미와 애니가 밤새 동침을 한 것이다. 가이드는 거미 정도는 별거 아니라며 잡아서 밖으로 던졌다.
트레킹 이틀째인 오늘은 오전에 2시간 정도만 걷고 폭포에서 놀고 이른 점심을 먹는다고 한다. 소풍 길에 나선 아이들처럼 발걸음이 경쾌하다. 750년 됐다는 엄청나게 커다란 카라콜리Caracoli 나무는 한 장의 사진으로도 담아지지 않는다. 새벽부터 날씨는 푹푹 찐다. 열대지방임을 실감한다. 자청해서 이 더위를 즐기러 온 이들이다. 몇 사람은 발에 물집이 잡혀서 고통스러운데도 잘 걷는다. 아프단 말조차 사치인지 아무도 통증을 호소하지 않는다. 한바탕 비지땀을 흘리고 언덕에 올라서니 역시나 수박이 기다리고 있다. 더없이 즐거운 워터멜론 파티!
카바나 위와Cabaña Wiwa에 도착.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20여 분 걸어 오르니 시원하게 폭포가 쏟아지는 자연 수영장이 나타난다. 수영복 차림의 남녀들이 마치 정글 속의 타잔과 제인 같다.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물속으로 풍덩. 물은 생각보다 차가워서 30여 분도 있기가 어려웠다. 조금 전까지도 더워서 그늘을 찾았는데 이젠 햇살을 찾는다.
원주민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어서 가이드에게 이야기하고 카바나 위와로 먼저 내려왔다. 원주민 형제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형은 카우체라Cauchera라는 새총을 가지고 놀고 있다.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새총과 똑같다.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잠시 나눈다.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거의 묻는 말에 단답형으로 대답하는데 그것도 눈빛으로 보내는 것이 전부다. 다행히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눈을 깜박거려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보여 주었더니 해맑게 웃는다. 역시 웃는 모습이 더 예쁘다.
점심식사가 끝난 후 해먹에서 낮잠을 자는 30분은 솜사탕처럼 달콤하다. 잠든 모습들이 마치 뱃속의 아기처럼 평화롭다. 잉카 트레일에서도 낮잠을 즐기긴 했지만 해먹은 아니었다. 흔들거리는 해먹에서의 낮잠은 유년 시절 요람의 추억을 불러낸다.
우리네 초가집과 비슷한 10여 채의 집들이 모여 있는 원주민 커뮤니티에 도착했다. 이곳은 거주지가 아니라 회의나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원주민들이 모이는 장소라고 한다. 그곳을 지나 한참이나 오르막이 계속된다. 오르는 건 그리 힘들지 않은데 뜨거운 공기가 훅 하고 들어오니 숨이 턱턱 막힌다. 바로 그때 파인애플과 오렌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겨 준다. 새콤달콤하고 시원한 과즙이 온몸을 적시니 다시 힘이 솟는다.
트레킹 시작부터 우려했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온통 진흙인 길에 비가 내리면?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이다. 빗물이 카메라에 스미는 것도 걱정이지만 미끄러져서 카메라가 진흙바닥에 뒹굴기라도 한다면 더욱 끔찍하다. 배낭에 카메라를 넣고 배낭커버를 씌우고 걷다 보니 우리 팀과는 상당히 거리가 떨어졌다. 빗길은 질척거리고 힘들지만 정글의 무더위가 살짝 가시니 몸은 한결 시원하다.
종일 브리타카Buritaca강을 따라 걷다가 이젠 강을 건너야 하는 순간. 야트막한 곳을 찾아서 트레킹화를 벗고 강물에 발을 담그니 시원한 냉기가 온몸으로 퍼진다. 하늘로 솟을 만큼 몸이 가벼워진다. 20여 분이면 도착한다는 오늘의 숙소인 카바나 파라이소Cabaña Paraiso에 가는 길. 강 옆의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은 미끄러운데다 어찌나 험한지 모처럼 등산하는 기분이 든다. 빗길이고 바위구간이라 더 위험하다. 조심조심. 20여 분이 2시간처럼 느껴진다.
카바나 파라이소의 저녁시간. 내일 잃어버린 도시로 향하는 모든 트레커들이 모였다. 대략 200명 이상은 되어보였다. 해외 트레킹을 다니면서 이렇게 많은 트레커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건 스웨덴 피엘라벤 클래식 트레킹 이후 처음이다. 가장 좋은 시즌인 12월엔 이 인원의 2배 이상이라고 하니 더욱 놀라울 뿐이다. 특히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유럽인들이다.
3일차 카바나 파라이소 – 잃어버린 도시- 카바나 위와Cabaña Wiwa, 14km
잃어버린 도시, 그러나 거기 그대로 살아 있는 도시
어둠 속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5시 40분에 숙소를 출발. 헤드랜턴은 켰지만 계곡 옆은 아주 좁은 바위구간이라 조심조심 한발 한발을 옮긴다. 가이드는 혹여 사고가 생길까봐 무척 염려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도강까지…. 새벽에 강물에 발을 담그니 발도 시리지만 돌을 밟으면 미끄러워서 중심을 잃고 첨벙할까봐 조심스럽다.
강을 건너고 나니 이젠 한없는 오르막이다. 경사도 가파르고 길도 험하고. 모두들 얼마나 남았는지 계속 묻는다. 날이 밝을 때쯤 마침내 잃어버린 도시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곳은 번영했던 옛 도시의 영화나 감탄을 자아내는 거대한 유적지는 아니었다. 찬란한 문명의 흔적은 없고 평화롭게 욕심 없이 살았을 옛사람들의 삶터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수많은 집터들은 그 옛날 이곳의 모습을 알려 주고 있다. 스페인 침략 전까지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집터에 사용된 돌은 모두 이곳 산의 돌을 이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돌을 이용해서 돌을 잘랐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산 정상에 서서 아래쪽을 바라보니 그 옛날 사람들의 수고로움이 그대로 느껴진다. 스페인의 침략 중에도 이곳만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첩첩산중이기에 그들만의 삶을 누릴 수 있었으리라.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코카 재배부터 마리화나, 금, 그리고 매장방식까지 참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잃어버린 도시에서 카바나 파라이소까지 돌아오는 길. 집 앞에서 몸을 반쯤 내밀고 지나가는 트레커들을 구경하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들의 눈은 그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심연이다. 낯선이들에 대한 경계심인지, 아니면 수줍음인지, 무관심인지 잘 모르겠다.
한참을 걷다가 인디헤나 어린 형제들을 만났다. 이스라엘 친구가 아주 적은 돈을 주었다. 아이들의 표정이 조금 좋아졌지만 웃지는 않는다. 이스라엘 친구가 장난을 치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니 아이들이 긴장을 풀고 다가왔다. 한참을 아이들과 놀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러나 사진 찍는 그 시간에 나의 다리는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숙소에 도착해서야 알았지만 모기의 집중공격을 받았는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상처였다.
이틀 전 트레일 시작할 때 집을 짓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있었는데 집이 제법 많이 세워져 있었다. 참 빠르기도 하다. 원주민들은 거의 모든 것을 자급자족한다. 자연의 숨결에 따라 살아가는 그들이 더욱 풍요로운 것은 아닐까? 집 밖에서 구경하다가 용기를 내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모두 6명. 대가족이다. 아빠와 장남이 집을 짓고 있다. 엄마에게 가족들의 사진을 찍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지그시 좋다는 표정이다. 작은 아이들과 큰딸, 엄마의 사진을 찍고서 집을 짓는 아빠에게 다가갔다. 사진을 극구 사양하더니 못 이기는 척 찍으라고 한다. 아빠와 아들까지 모두 8명의 식구가 함께 모였고 그들의 가족사진을 찍었다. 사진으로 담긴 모습을 보여 주니 이내 빙긋이 웃는다. 만족한 모습이다. 그러나 사진 속의 그들은 웃지 않는다. 마치 역사의 그 무엇이 이들의 웃음을 앗아간 듯하다.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했더니 괜찮다고 한다. 페이스북이나 왓츠앱으로 사진을 보내겠다고 한 내가 머쓱해졌다. 그들에게 스마트폰을 기대했다니! 가이드를 통해 내가 사진을 꼭 전해주고 싶다고 했더니 아빠는 아주 작은 크기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트레일에서 돌아와 사진을 인화해 가이드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들에게는 첫 가족사진.
저녁 식사후에는 콜롬비아의 대표특산물인 모칠라 가방을 만드는 방법부터 마리화나 가루를 만드는 방법, 코카 잎을 어떻게 이용하고 흡입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성교육방법까지 들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내용이었다. 우리네에겐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조차 불편한 내용인데 이들은 제대로 된 성생활을 위해서 부모가 선생님을 정해서 교육을 받게 해준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곳의 여인들은 길에서도 모칠라를 짠다. 딸이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가르쳐서 평생을 모칠라를 짠다. 모칠라에는 수백 년을 이어온 기술과 역사, 여인들의 한숨과 기쁨, 전통이 살아 숨 쉰다. 그 모칠라 가방을 짜는 실은 식물의 잎에서 추출한 섬유질이다. 마치 우리의 마와 흡사하다.
원주민들은 코카 잎이 태초에서부터 생겨났고, 우정과 교류, 행복의 상징이라고 믿는다. 그들에게 코카 잎은 환각성이 있는 식물이 아니라 신성한 식물이다. 길에서 만난 이웃들의 모칠라 가방에 자신의 코카 잎을 넣어 주는 것이 이들의 고유 인사법이다. 코카 잎을 다루는 것도 성년식을 치른 남자들만의 몫이다. 코카 잎이 들어 있는 모칠라 가방에 달궈진 돌을 넣었다 빼면 모락모락 뜨거운 김이 올라오고, 모칠라 가방에 얼굴을 넣고 훈증을 한다. 그들이 코카를 즐기는 방식이다. 코카 잎과 더블어 조롱박처럼 생긴 포포로는 성인남자에게만 허락되는 남자의 상징이다. 언제 어디서나 틈만 나면 포포로를 이용해 마리화나를 아주 소량으로 섭취한다. 원주민들에겐 코카 잎과 마리화나는 그저 일상일 뿐이다.
문명의 세계와 동떨어진 이런 삶의 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이 잃어버린 도시가 아니라 문명에 길들여진 우리의 삶이 잃어버린 그 무엇은 아닐지.
4일차 카바나 위와 – 마체테, 14.5km
인디아나 존스처럼 정글에서 돌아오다
이틀 전에 비가 많이 와서인지 트레일 첫날 분명 걸어갔던 길인데 그때와는 다르게 길이 낯설다. 질퍽거리고 미끄럽고 진흙 속으로 들어간 발은 신발이 벗겨지기 일쑤다. 마지막 날이라고 방심했던지 독일친구가 넘어졌고 발목에 부상을 입었다. 붕대를 감고서도 노새를 타지 않고 천천히 걷는다. 의지의 독일인이다.
천천히 사진을 찍으며 걷다가 원주민 소년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뜨였다. 부지런히 따라가서 말을 걸어보았지만 작은 아이는 대답이 없다. 소년들의 이름은 마리오와 안드레. 머리엔 모칠라 가방을 메고서 참 잘도 걷는다. 오늘 산타마르타까지 간다고 한다. 산속에 살다가 도시인 산타마르타에 가면 아이들은 얼마나 즐거울까?
안드레와 마리오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출발했던 마체테에 도착했다. 숙제를 일찍 끝낸 아이마냥 마음이 홀가분하다. 다리엔 온통 모기에 물린 상처투성인데 그래도 즐겁다. 부상 입은 독일친구까지 우리 팀은 모두 함께 완주를 했다. 정글도를 휘두르며 길을 헤쳐 나가는 인디아나 존스 같은 어드벤처는 아니었지만 잃어버린 도시를 찾아 우거진 밀림 속을 걷는 것은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다.
거미와 뱀, 모기가 우글거리는 열대 정글을 걷는 잃어버린 도시 트레킹은 생각보다 별로 힘들지 않았다. 거리도 고도도 적당했다. 콜롬비아 원주민의 역사와 독특한 문화를 공부하고,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잘 짜여 있고, 특히 원주민인 인디헤나의 삶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혹자는 잃어버린 도시를 페루의 마추픽추와 비교하기도 한다. 잃어버린 도시는 보존 규모면에서 마추픽추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작다. 그러나 정글로 뒤덮이고 찌는 듯한 열대의 더위 속에 꼬박 3일을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발견되었지만 아직도 감추어진 곳. 잃어버린 도시지만 그대로 거기에 살아 있는 곳. 오직 사람만이 두 발로 걸어서갈 수 있는 비밀의 땅. 그래서일까 문명에 길들여진 서구인들이 문명을 버리고 이 잃어버린 도시를 찾는 이유는.
폭염의 정글 속에서 먹었던 수박의 시원함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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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정보(2018년 2월 기준)
비용 95만 콜롬비아 페소 (원화 약 37만 원)
기간 3박 4일 또는 4박 5일 (4일차 트레킹 후에 비용 추가없이 마체테에서 1박을 더 할 수 있다.)
▶ 참고
매일 트레킹 후 찬물로 샤워가 가능하다.
벌레 퇴치용 약(콜롬비아의 Nopikex brand 가 효과가 가장 좋았음) 준비는 필수.
전기공급은 저녁시간에만 제한적으로 가능하므로 휴대폰이나 카메라를 위한 여분의 배터리가 필요하다.
아쿠아 슈즈 또는 발바닥이 편한 샌들, 수영복을 준비하면 트레킹을 100%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