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이드

내 눈까지 붉게 물든다

산야초 2016. 4. 22. 20:29

    입력 : 2016.04.07 04:00

    축구장 140개 넓이
    여수 영취산 진달래 능선
    주말 막바지 '붉은 비명'

    소월(素月)이 이곳을 먼저 찾았다면 시(詩)를 달리 쓰지 않았을까.

    '여수 영취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라고.

    중턱부터 산머리까지 온통 붉은 바다였다. 여수 영취산이다. 우리 산천에서 진달래가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곳. 능선마다 붉은 꽃이 무더기로 눈앞에 달려온다. 축구장 140개 넓이라고 한다. 매년 4월 초 열리는 축제는 지난 주말 끝났다. 그러나 자연이 사람이 정한 기간에 따라 절정을 맞이할 리 없다. 영취산 진달래는 이번 주말까지 막바지 붉은 비명을 지른다. 몰려드는 사람이 적어지니 꽃을 즐기기엔 더 좋다.

    진달래 군락지로 오르는 코스는 세 가지. 돌고개 행사장, 흥국사, 상암초교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40분이면 오른다는 돌고개 길을 택했다. 짧은 대신 가파른 길이다. 숨이 턱턱 막히면서 산허리를 올랐다. 전날 굵은 비가 쏟아져 흙길은 개펄처럼 발이 빠진다. 돌길은 미끄럽다. 아마도 느린 걸음이었을 것이다. 군락지까지 1시간, 진달래 가득 핀 곳을 조망하는 전망대 가마봉까지는 30분 더 걸렸다.

    빨간 꽃은 관능적으로 느껴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조숙했나 보다, 이 계집/ 잎이나 피워 알몸 가리기 전에/ 붉은 꽃잎 내밀어 화사하구나/ 유혹할 사내도 없는 이 천부적 화냥기는/ 제 알몸 열기로 불태우는구나'(이길원 '진달래'). 오르는 길엔 진달래를 주제로 쓴 시가 이곳저곳 붙어 있었다.

    무더기로 핀 진달래를 본 뒤에야 같은 이름을 한 꽃도 다 같은 모습이 아니란 걸 비로소 알았다. 한없이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빛부터 불타는 듯 더 빨간 진홍빛까지 저마다 개성이 드러난다. 조금 더 가까이 꽃을 본다. 분홍빛 꽃잎 위에 검붉은 화인(火印)이 문신처럼 찍혀 있다. 꽃술 끝이 노란빛이란 것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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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취산에서 바라본 여수 산업단지 풍경

    첫 산행은 지난 4일. 전날 비가 내려 일정을 하루 미룬 뒤 이날 오전 산길을 걸었다. 산 중턱부터 안개비가 흩뿌렸다. 가마봉 정상에서 바라본 시계(視界)는 거의 '제로(0)'. "날만 좋으면 금상첨화인데…." "그러게, 열 가지 복(福)은 한 번에 안 주시는구먼…." 옆에 선 상춘객이 탄성을 지르면서도 아쉬운 탄식을 토했다. 이튿날 다시 산을 올랐다. 여전히 흐린 날씨지만 간간이 드러난 햇빛 사이로 드러낸 붉은 몸이 찬란했다. 시선을 돌려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여수 산업단지와 바다가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자아냈다.

    이번 주말 영취산 진달래꽃을 찾아갈 수 없더라도 낙담할 필요는 없다. 붉은 물결은 북쪽으로 달린다. 창녕 화왕산, 달성 비슬산도 진달래 명산으로 이름났다. 4월 중순부터는 수도권이 붉게 물든다. 강화 고려산은 정상(436m) 주변 능선과 비탈에 진달래가 만개한다. 고려산은 1986년 산불로 다 탔는데 생명력 강한 진달래가 새 주인이 됐다. 12일부터 26일까지 진달래 축제(032-933-8120)를 연다. 부천 원미산도 진달래 명소다. 축제(032-625-5762)는 11일부터 이틀간 열린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