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은 남쪽 바다에는 맛난 게 많이 납니다. 앞으로 몇 주에 걸쳐 남도(南道)의 봄맛을 찾아갑니다.
첫 회는 경남 통영입니다.
입력 : 2016.04.23 07:00
[南道 봄맛 여행] (1) 통영
여객선 하나가 통영여객터미널에 정박했다. 섬에서 온 할매들이 쏟아져 내렸다. 할매들은 양손에 들고 온 검정 비닐봉지를 서호시장 '마산상회' 주인 노차순(80)씨 앞에서 열어 보였다. 싱싱한 두릅·취나물 따위 햇나물과 멍게·해삼·소라 같은 해산물로 가득했다. 노씨는 휙 보더니 "2000원" "2500원" 가격을 불렀다. 섬 할매들은 흥정도 없이 내어준 돈을 손에 쥐고는 필요한 물건을 장 보러 시장 속으로 총총 사라졌다.
◇한려수도 해산물·나물 모두 모이는 서호시장
마산상회는 겉보기엔 작고 누추하지만 서호시장을 대표하는 큰 가게다. 향토음식연구가 겸 사진가 이상희씨는 "통영 주변 섬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는 모두 어머니(노차순씨)를 통해 유통된다"고 했다. "어머니가 항상 가격을 잘 쳐주는 데다 물건이 좋건 나쁘건 항상 사줘요. 그러니 두말 않고 주는 대로 받는 거죠."
노씨는 "마산에서 태어나 열아홉에 시집와 한 달 만에 먹을 게 싹 다 떨어져 장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61년이나 했으니 철철이 통영과 주변에서 나는 식재료에 해박할 수밖에 없다.
그는 "요새 나물은 두릅과 방풍, 산취나물이 한창"이라고 했다. "두릅은 짧고 통통해야 좋지. 방풍도 요즘 향긋하지. 산취나물은 대가 붉고, 잘 보면 이파리가 사각형이야."
해산물 중에서는 해삼과 멍게가 많았다. "해삼은 보들보들하고, 멍게는 살이 통통하지. 향이 좋은 건 말할 필요 없고. 참소라, 고둥도 껍데기 끝까지 살이 들어찼지. 털게도 알이 꽉 찼어." 요새 제철인 멍게는 흔히 '꽃멍게'라고 하는 양식산을 말한다. 방풍나물은 1단에 3000원, 두릅은 1㎏에 1만5000원, 해삼 1㎏ 1만원, 까놓은 꽃멍게 1㎏ 1만원쯤 하지만 매일 시세가 다르다. (055)645-2447
◇'건어물 박사'의'마른 멸치 감별법'
"멸치는 국내에선 지리멸, 소멸, 중멸, 대멸 넷으로 크게 나눠요. 그런데 이기(이게) 다가 아니고 지리멸과 중멸 중간 크기도 있고, 소멸과 중멸 중간 사이즈도 있어요. 우리말로 딱히 없는데 '중중멸'이라고 해야 할까? 어디서 잡히느냐, 어느 철에 잡히느냐에 따라서 맛도 모양도 쓰임도 다 다릅니다."
서호시장 '팔도건어물' 사장 박무상(63)씨는 건어물 박사다. 취급하는 멸치만 50가지가 넘는다. 그가 쏟아내는 멸치 정보를 받아 적다 지쳐서 "그냥 좋은 멸치 구분하는 법만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장님도 구분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손으로 잡아보면 알아요. 좋은 멸치는 크더라도 움켜쥐면 부드럽습니다. 눈으로 봐서 빛깔이 맑고 윤기가 흘러야 선도(鮮度)가 좋아요. 이쪽 멸치를 보면 투명한 은빛으로 반짝거리죠? 반면 저쪽 멸치는 노르스름한 색이 납니다. 멸치를 잡고 한참 지나 선도가 나쁠 때 삶거나 제대로 말리지 못해 멸치 몸속 기름기가 겉으로 배 나왔다는 증거예요. 하지만 밤에 불을 피워 잡은 멸치는 원래 노란빛을 띠기도 하니 하나로 설명할 수가 없어요. 멸치만 갖고도 한 시간 넘게 강의할 수 있는데…."
멸치 말고는 건홍합과 말린 꼴뚜기, 풀치가 눈에 띄었다. 건홍합(300g 1만원, 700g 2만원)은 '홍합밥'을 지어 먹으면 맛있다. 냄비에 쌀을 씻어서 앉히고 다 익으면 홍합 몇 알 올리고 뜸 들이면 맛있는 홍합밥이 쉽게 만들어진다. 새끼손가락 크기의 꼴뚜기(300g 1만원)는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워 그냥 먹으면 술안주로 좋고, 간장에 졸이면 훌륭한 밥반찬이다. '갈치 새끼'인 풀치(1상자 2만원)도 강추 쇼핑 아이템이다. 감칠맛이 풍부하고 부드러워 맥주 안주로 이만한 게 없지 싶다. (055)644-6710
◇이렇게 맛있는 반건조 생선이 있었나 '삐죽이'
말린 생선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란 건 서호시장 '경수상회'에서 만든 반건조 '삐죽이'를 먹어 보고 알게 됐다. 삐죽이는 민어의 일종. 하지만 서해에서 나는 민어와는 많이 달랐다. 크기가 남자 어른 팔뚝 정도로 서해 민어보다 훨씬 작고 몸통도 통통하기보다 날렵한 편. 결정적으로 아래턱이 턱주가리 모양으로 삐죽 튀어나왔다고 삐죽이다.
반건조 생선을 만들 때는 보통 소금물에 담근다. 이 가게에선 굵은 소금을 생선에 바로 친다. 주인은 "소금물에 오래 담가두면 생선 맛이 빠지고 소금의 씁쓰름한 맛이 배어든다"며 "우리는 굵은 소금을 좀 많다 싶게 생선 전체에 뿌리고 10분 정도로 짧게 절인 다음 털고 씻어내 말린다"고 했다.
삐죽이를 사다가 쪄먹어 봤다. 보통 반건조 생선은 꾸득꾸득한데, 삐죽이는 촉촉하고 보들보들했다. 주인은 "통영에선 생선 3마리를 1손이라고 한다"며 "삐죽이 1손은 7만5000원, 1마리는 2만~2만5000원"이라고 했다. (055)644-0137
◇제철 맞은 꽃멍게 맛보려면 멍게비빔밥
제철 멍게로 만든 멍게비빔밥을 맛보러 항남동 '멍게가'로 갔다. 통영에 멍게 요리 전문점은 이곳이 유일하다. 비빔밥부터 물회, 된장찌개, 냉면, 튀김, 탕수 등 멍게로 상상 가능한 음식을 모두 망라했다.
통영과 거제에서 멍게비빔밥을 시키면 대개 잘게 다져 살짝 절인 멍게 젓갈이 나온다. 이 식당에서는 잘게 썬 멍게에 살짝 간을 해서 곱게 썬 달걀지단과 오이채, 톳, 미역, 김과 함께 따뜻한 밥에 올려 놋그릇에 담아 낸다. 놋그릇만큼이나 고급스럽고 기품 있는 맛이다. 멍게 특유의 싱싱한 바닷내가 살아있지만 양념이 역하지 않게 잡아준다.
'멍게비빔밥 세트'(1만3000원)나 '멍게요리 세트'(2만3000원), '해물뚝배기 세트'(1만7000원)를 주문하면 멍게전·회무침과 함께 충무김밥·꿀빵이 딸려 나온다. (055)644-7774
◇통영 다찌의 진수 맛보는 '강변실비'
다찌는 통영 특유의 술문화다. 일정량의 술을 주문하면 여기에 각종 안주가 딸려나오는 시스템이다. 이상희씨가 안내한 다찌집은 정량동 '강변실비'. 그는 "통영 다찌집 고유의 맛과 분위기를 지키는 집"이라고 했다.
처음 나온 도미찜을 맛보니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요즘 철인 새끼 도미를 쪄서 간장과 참깨·다진 쪽파·고춧가루만 살짝 뿌렸다. 등뼈는 덜 익어 투명하면서, 살은 완전히 하지만 너무 익지 않아 퍽퍽하지 않고 촉촉했다. 양념도 과하지 않게, 도미 맛을 살릴 정도로 맞췄다. 굵고 싱싱한 새우를 간장에 살짝 담근 새우장, 멸치 회무침, 알과 살에 달콤한 감칠맛이 배어있는 털게찜, 구웠다고 믿기 힘들 만큼 속살이 촉촉한 볼락구이 등 버릴 게 없었다. 재료와 요리 수준이 한정식집과 비교해도 뛰어났다. 이상희씨는 "요즘 관광객들에게 다찌가 인기를 끌면서, 맛없는 쓰끼다시로 가짓수만 채우는 다찌집이 많다"고 아쉬워했다.
2인분이 최하 주문 단위로 6만원 받는다. 소주를 주문하면 2병, 맥주는 4병이며 여기에 안주가 딸려나온다. 맥주 1병 추가 6000원, 소주 1만원이다. 가격은 다찌집마다 다르다. "다찌 문화를 잘 모르는 관광객들은 술을 추가 주문했다가 따지 않으면 계산할 때 빼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술 주문했을 때 추가로 나온 안주가 술값에 포함됐다는 점을 감안해주셨으면 합니다." (055)641-3225
◇통영 무정동 '꼼장어골목'
흔히 '꼼장어'라고 부르는 먹장어 구이는 부산 자갈치시장이 유명하다. 그런데 통영 먹장어 구이도 자갈치시장 못잖았다. 무전동 안개로 현대통영주유소 맞은편에 다섯 집이 모여 있다. '야간열차'가 가장 오래됐다는데, 솜씨는 비슷하다. 주문하면 수족관 안에 있는 먹장어를 잡아서 반으로 갈라 뼈를 발라내고 한입 크기로 토막 쳐 가게 앞 연탄불에 굽는다. 양념구이(3만·4만·5만원)와 소금구이(4만·5만원)가 있다. 삼수갑산 (055)644-4339, 안동역 (055)646-9808, 야간열차 (055)54-9808, 유람선 (055)643-1325, 향산곰장어 (055)645-1441
◇직접 팥소 만드는 '통영제과' 꿀빵
멍게가에서 후식으로 내는 꿀빵은 서호시장 뒤 '통영제과' 제품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동피랑 주변으로 꿀빵집이 수십 개나 생겼다. 대부분 공장에서 생산한 팥소를 쓴다. 통영제과는 팥소를 매일 직접 만든다. 단맛이 과하지 않아 팥 본래의 구수한 맛을 가리지 않고 살려준다. 1개 1000원. (055)645-5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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