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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 눈물고개? 얼큰한 짬뽕고개!

산야초 2017. 7. 13. 21:08

미아리 눈물고개? 얼큰한 짬뽕고개!

    입력 : 2017.06.16 08:00

    [맛난 집 맛난 얘기] 보배반점

    짬뽕 잘 하는 집들은 전국에 널렸다. 막상 가보면 대개는 소문만 못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수는 없다. 국민음식 반열에 드는 짬뽕의 특성 상 짬뽕 맛은 그릇 안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릇 안과 밖의 맛을 모두 접해야 비로소 온전한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서울 미아동 <보배반점>은 짬뽕 그 자체도 나무랄 데 없지만 주인장 김진혁(38) 씨의 맛있는 짬뽕에 대한 열정과 지난 삶은 짬뽕보다 더 매콤하고 얼얼하다.

    다리를 잃고 사랑과 짬뽕을 얻다

    김씨는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이모가 그를 맡아 키웠다. 그나마 김씨가 21살 되던 해에 유일한 보호막이었던 이모마저 폐암으로 세상을 떴다. 이모의 죽음과 함께 다니던 대학을 포기해야 했다.

    군대에서 전역한 그에겐 돌아갈 집도 복학할 대학도 없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숙식 제공하는 중국집에서 배달을 시작했다. 현실은 배달원이었지만 눈높이와 마음가짐은 늘 사장님이었다. 홀과 주방 가리지 않고 바쁜 곳이 있으면 달려가 내 일처럼 13역을 했다.

    진짜 사장님이 되기 위해선 종자돈이 필요했다. 먹고 자는 일 외엔 돈을 쓰지 않았다. 새벽 일찍 일어나 신문배달을 해 돈을 보탰다. 한편, 같은 식당 주방에는 여자 김진혁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김춘월. 재중동포 처녀였다. 그녀 또한 김씨 못지않게 성실하고 악착같이 살았다. 서로 열심히 사는 모습을 격려하다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다. 두 살 연상인 그녀와 결혼한 것은 김씨가 25살 때였다.

    두 사람은 옥탑 방을 얻어 알콩달콩 살았다. 2년 만에 무려 4000만원의 돈도 모았다. 곧 사장님이 될 것 같았다. 얼마 후 아이도 태어나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배달을 나갔다가 불법 유턴하던 차에 치여 다리에 큰 부상을 입었다.

    병상에서 김씨는 지금까지 모은 돈이 든 통장을 내밀었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부인에게 새 출발하라며 진심으로 권고했다. 그러나 부인은 듣지 않고 묵묵히 김씨의 대소변을 받아냈다. 그러길 10개월째, 김씨는 스스로 목발을 짚고 일어설 수 있었다. 드디어 31살 때 처음 배달전문 짬뽕 집을 시작했다. 그 뒤 2013년 미아사거리에 배달 없는 짬뽕 집 <보배짬뽕>을 열었다.

    연이어 짬뽕 외에 중국요리까지 즐길 수 있는 2호점 <보배반점>도 냈다. 자신의 이름인 보배 진()에서 따온 옥호다. 김씨는 그 동안 모았던 자료를 총동원해 대한민국 최고 짬뽕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다리에 보조기를 달고 직접 주방에 들어가 치열하게 새 짬뽕 개발에 돌입했던 것이다. 열 달 사이에 무려 네 번이나 메뉴판이 바뀌었다. 요즘 고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차돌짬뽕(8000)과 해물짬뽕(8000), 그리고 항아리짬뽕(2만원)이 그때 거둔 성과물들이다.

    차돌짬뽕
    신선재료 즉석에서 볶아내니 불향 솔솔

    다른 음식도 그렇지만 짬뽕 맛은 신선한 재료와 즉석 조리 여부에서 판가름 난다. 요즘 짬뽕 맛이 예전 짬뽕 맛만 못 하다는 어른들 말씀은 분명 일리가 있다. 예전 짬뽕 맛이 좋았던 건 그날 시장 봐온 재료로 바로 조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츰 효율과 원가를 따지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 됐고 식재료 저장설비도 발달했다.

    식재료를 대량으로 들여와 한 번에 조리하는 게 일반화됐다. 간편하고 비용은 줄였지만 맛은 아무래도 즉석조리 음식을 따라갈 수 없다. 짬뽕 역시 마찬가지. 주인장 김씨는 어렸을 적 먹어봤던 옛날 화상(華商)짬뽕 맛을 재현하려는 노력 끝에 지금의 짬뽕을 완성했다. 그가 찾아낸 옛날 짬뽕 맛도 결국 싱싱한 재료로 그때그때 웍에 볶아 내는 데서 나온다. 그래서 <보배반점> 인테리어는 카페처럼 최신 스타일인데 짬뽕은 고전 스타일이다.

    구리농수산물시장에서 경매 끝나자마자 보낸 최상품의 식재료를 쓴다. 식재료 신선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싱싱한 배추와 양파를 웍에 볶아 배추의 시원한 맛과 양파의 단맛을 최대한 빼낸다. 여기에 곱게 채 썬 돼지고기인 유슬을 볶아 맛을 블랜딩한다. 시원하고 달콤한 채소 맛에 고소한 돼지 지방이 만난다. 짬뽕 맛이 없을 수 없다.
    김씨는 맛은 타이밍이라고 했다. 시원한 해물 맛이 일품인 해물짬뽕과 진한 국물 맛이 월등한 차돌짬뽕을 맛보며 그 말에 동의했다. 해물짬뽕엔 수북한 홍합 아래 주꾸미, 꼴뚜기, 오징어가 골고루 들었다. 적당히 숙성시켜 뽑은 면발도 최적의 탄성과 쫄깃함을 지녔다. 일반 짬뽕보다 약간 가늘어 먹기 좋다.

    차돌짬뽕은 구수한 매운 맛과 불향이 옛날 짬뽕의 그것을 빼 닮았다. 이름처럼 차돌박이 지방의 풍미가 일품인데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진한 국물 맛은 조선팔도 어느 짬뽕보다 뛰어나다. 해물짬뽕이나 차돌짬뽕을 2인분 이상 주문하면 고르곤졸라 피자를 서비스로 준다. 매운 입 안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조가비 모양의 아이스크림(500) 역시 같은 구실을 한다.
    해물짬뽕
    또 다른 김진혁들돕고 싶어

    김씨는 서울 성신여대 앞에 곧 3호점을 낼 예정이다. 이제 외식업자로서는 성공한 셈이다. 앞으로 자신의 성공모델을 기반으로 프랜차이즈 사업도 벌일 생각이다. 그러나 사업의 목표는 돈이 전부가 아니다. 충분히 성공할 자질을 갖췄으면서도 예전의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객관화할 수 있을까? 특히 자신의 상처와 일정거리를 유지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김씨는 누구보다 해맑고 온화한 얼굴의 소유자다. 얼굴만 놓고 보면 고아’ ‘장애’ ‘자수성가라는 단어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지나온 날들을 남 얘기 하듯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에게 어떻게 그렇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고생한 건 맞다. 하지만 아픔은 각자 개별적이다. 평온해 보이는 저 길거리의 사람들도 다 그들만의 아픔이 있다. 그들의 아픔이 결코 내 아픔보다 가볍다고 할 수는 없다.

    이건 달관한 사람의 말이다. 아니 현자의 음성이다. 짬뽕 맛보러 갔다가 현자를 만나고 온 느낌이다. 배추와 양파는 뜨거운 불 속에서 치댈수록 맛과 향이 좋아진다. 사람도 그런 것인가? 김진혁 씨의 선한 뜻이 알찬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
    서울 강북구 솔샘로 293 승은빌딩02-980-0293

    글 사진 이정훈 음식문화연구자(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